스위스엔 있고 대한민국에는 없는 것
손민규
2024-07-04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 표지를 보자. 제목은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이고 부제는 '커플, 육아, 공동체로 보는 다정한 풍경들'이다. 띠지에 적힌 추천사에서 프리스턴대학교 유혜영 교수가 이렇게 썼다.
"인구절벽을 향해 너무 빨리 달려가고 있는 한국에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온 답은 무엇일까. 뒤표지를 보자. 신성미 저자가 말하는 건 바로 '사랑'이다. 그렇다. 스위스에는 있고, 대한민국에 없는 건 바로 사랑이다.
부모가 아이에게 보여 줘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 아빠가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모습, 그리고 함께 행복한 모습이 아닐까. 그런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는 심리적으로 안정된 것은 물론, 사랑이 많고 행복한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커 갈 것이다. (55쪽)
해마다 세계 기록을 갱신하는 대한민국의 출산율. 재생산을 포기한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렇다 보니 제목도 무시무시하다. 『자살하는 대한민국』, 『환자명 : 대한민국』, 『갈수록 살기 힘든 나라』 등등. 논자마다 강조하는 게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한민국은 결혼하기 힘들다는 데는 동의한다. 결혼 비용이 너무 비싸다. 집값이 비싸니까. 결혼하고 나서도 양육 비용도 너무 비싸다. 『자살하는 대한민국』에서 표현한 대로, 대한민국에서 사교육은 준조세 성격이기 때문이다. 안 하는 집이 없다. 그렇다면 스위스는?
?그런데 스위스에선 적어도 집과 돈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형편에 맞게 결혼식을 올린다. 남의 시선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29쪽)
이 커플의 결혼식을 지켜보면서 하객들의 진심 어린 축하와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한국의 천편일률적인 결혼식과 축의금 문화, 청첩장 받는 것을 기쁨보다는 부담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구조, 남의 결혼식 참석을 즐거워하기보다는 사회생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주말을 반납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마음... (46쪽)
결혼하면 아파트 자가나 전세가 당연한 선택인 양 여겨지는 대한민국. 그렇다 보니 부모의 재정적 도움 없이 결혼을 꿈꾸기가 쉽지 않다. 스위스는 그렇지 않다. 일단 전세라는 제도 자체가 없다.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을 읽으면서, 새삼 대한민국의 전세 제도가 얼마나 기묘한지, 오히려 청년들을 옭아매고 있는지 깨달았다. 게다가 최근에는 한창 뻗어나가야 할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대규모 사기가 벌어진 게 바로 전세라는 판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이를 낳고 나서 풍경도 사뭇 다르다. 스위스는 잘 사는 나라다. 소득 높다. 내 소득만 높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 소득도 높다. 즉슨, 외식을 비롯한 다양한 서비스 가격도 비싸다는 의미. 돌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스위스에서는 조리원 문화도 없고, 아이가 어릴 때는 가정 보육 중심이다.?
아이가 조금 자라서 교육을 받을 때도 대한민국과 다르다. 스위스에서는 스포츠를 강조한단다. 동네 놀이터에서 놀리기보다는 영어 유치원 보내는 게 더 긴요한 대한민국과 역시 다르다. 어릴 때부터 자립심이 높은 것도 큰 차이다. 요즘 대한민국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웬만해선 아이 혼자 안 간다. 그런데 스위스에서는 그보다 더 어릴 때부터 혼자 등하원 한다고 하니, 이건 사회 전반에 관한 신뢰 문제다. 대한민국은 높은 치안 수준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향한 신뢰가 너무 낮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초등학교 입학 유예에 대해 관대하다는 사실. 경계성 지능, 학습 장애 등을 겪는 아이들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학교를 1년 늦게 보내는 건,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절차가 굉장히 까다롭다. 내야 할 서류도 많고, 자격을 갖췄다고 해서 늦출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역시 대한민국 사회가 그간 고수해온 장애를 향한 편협한 시선, 경직된 교육의 단면이 아닐까 생각했다.
?덧붙여, 스위스는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마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사회다. 대한민국에는 노키즈존이 있다. 술집 이런 데가 노키즈가 아니라, 카페나 식당이 노키즈존이다. 대중교통도 상당히 불편하다. 그나마 지하철은 낫지, 버스는 유아차 끌고 타려면 상당히 불편하다.
스위스 부모들은 육아를 혼자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라고 여긴다. 그 배경에는 어린이를 존중하는 사회가 있다. 스위스도 고령 사회라 아이들이 귀해서이기도 하지만 다음 세대를 키운다는 보람으로 모두가 노력하는 것도 크다. 아이들은 어딜 가나 그 존재만으로도 예쁨을 받는다. (80쪽)
학생 중 일부만 공부를 계속하고, 대다수는 직업 교육을 받아 사회 각계에서 활약하는 시스템도 돋보인다. 스위스는 실업율이 낮고 소득은 높다. 반면 대한민국은 대졸자가 다수임에도 개인 생산성은 그다지 높지 않고, 청년 실업도 낮지 않은 편.
뭣보다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사랑'이다. 사랑은 혼자 하나? 다른 사람과 한다. 기본은 가족이다. 가족을 향한 사랑이 이 책에 넘쳤고, 저자가 소개하는 에피소드에 따르면 스위스에도 충만하다. 대한민국은 부부 간 사랑도, 가족 간 사랑도 부족하다. 그래서 참 각박한 사회가 아닐까 싶기도.
보통 서양인들은 개인주의적이고 동양인들은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런데 스위스에 살면서 놀라운 건 오히려 서울에서보다 훨씬 빈번하게 이웃과 친지 간에 돕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찌만 서비스 물가가 비싼 탓도 크다. 많은 스위스인은 도움이 필요할 때 서비스업체에 맡기기보다 친지들과 서로 품앗이하면서 돕고 사는 쪽을 택한다. (323쪽)
스위스와 비교하다 보니 대한민국 사회가 참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깨끗한 자연 환경, 알프스, 고소득, 발달된 생활 체육, 교육 시스템, 다양한 정체성의 공존, 휴가, 연금 등 스위스에 부러워할 요소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늙을 때까지 사랑을 멈추지 않는 게 가장 멋지다.
거의 400쪽에 육박하는 분량인데 잘 읽힌다. 기자 출신답게 군더더기 없는 문장, 적확한 비유, 스위스와 대한민국 간 대조 등 읽는 내내 무릎을 탁 치며 읽었다. 임신 중 물냉면이 먹고 싶어 겪은 에피소드처럼, 적재적소에 유쾌한 장면도 심어놨다. 스위스를 좋아하거나, 대한민국 사회가 왜 이렇게 힘든지 궁금하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