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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384쪽 | 400g | 128*188*20mm
ISBN13 9791193149171
ISBN10 119314917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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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겠다. 이제는 정말 못해 먹겠다. 그 말만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내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나. 왜. 대체 왜 나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 첫 문장에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고를 멈췄다.
말하자면 나는 아내의 ‘수족’이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수족은 사고 같은 걸 하지 않는다.
--- p.16

바로 대답할 수는 없었다. 불임 치료를 받으면서까지 아이를 가지고 싶지는 않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아이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오랫동안 노력을 지속해 온 부부가 마지막에 가서 의논해서 내릴 결론 아닐까. 이제 막 시작하려는 시점에 그런 걸 정하는 건.
--- p.45

사실 요지 외에도 딱 한 명 다른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물론 아직은 전혀 그런 관계가 아니고 그저 일로 만난 사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쪽에서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건 처음 만날 때부터 느꼈다. 지금껏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도 아니라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도 어느 정도 그를 의식하고 있다는 증거 아닐까.
--- p.75

일 마치면 술집에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잔을 기울이며 일상의 우울함을 떨치고, 귀가하면 바로 침대에 누워서 잠들 수 있다. 매일 밤 세 시간 간격으로 일어나 아내의 자세를 바꿔 줄 필요가 없고, 한겨울 늦은 밤에 실금으로 더러워진 아내의 속옷을 난방도 안 되는 욕실에서 덜덜 떨며 빨래할 필요도 없다. 가끔 숨 돌릴 틈도 있어야 한다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 허락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말을 입 밖에 꺼낼 수는 없었다.
--- p.122

아내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나랑 당신밖에.
잘못 들은 게 아니다.
그러니 부탁해.
아내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중에 자신이 부탁할 때 고민 없이 그렇게 해 달라고.
고민 없이.
그렇다. 고민은 머리의 역할이다.
수족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
평생 당신의 수족이 되겠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나는 그렇게 맹세했으니까.
아내가 사고를 당했던, 바로 그때.
--- p.141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타고난 신중함 때문일까.
아무리 쾌락에 젖어도 이성을 잃지 않는다.
아니, 단지 겁이 많을 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우스웠다. 우리는 서로 닮았기 때문에 서로에게 끌린 것이다.
--- p.173

“이야. 간신히 들키지는 않았네요.”
유타가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정말 들키지 않았을까. 일말의 불안이 남았지만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렇게 착한 아이를 계속 속이는 건 역시 죄책감이.”
유타가 농담처럼 던진 말이 도시하루의 가슴 깊숙이 박혔다.
--- p.218

“나더러 왜 고맙다는 말을 한마디도 안 하냐고 썼지?”
침착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내가 그 말을 하지 않은 덕분에 당신은 날 미워할 수 있었어. 그리고 이제는 날 버릴 수도 있게 됐어. 안 그래?”
나는 말없이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p.268

‘뇌성마비 환자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왜 살해되어야만 하는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비참한 상태로 계속 사는 것보다
는 죽는 게 더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왜일까.
--- p.337

그리고 그 입술에…….
도시하루는 이것이 꿈인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꿈은 언젠가 깨어난다.
그것 역시 도시하루는 알고 있었다.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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