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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너의 모든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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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 너의 모든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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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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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4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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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
파일/용량 EPUB(DRM) | 29.38MB ?
ISBN13 9791169838689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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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참으로 이상한 밤이다. 선명했던 파란색 하늘이, 드넓게 펼쳐진 수평선이 저해상도로 보이면서 픽셀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
---「첫 문장」중에서

“타오이, 나는 살 만큼 살았어. 너는 내 삶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 빛나던 신호등 같은 존재였단다. 그걸로도 나는 충분해.”
타오이는 창문을 통해 단지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더위에 영향을 받지 않는 로봇 정원사 하나가 전기 카트와 인공 손수레 사이를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완벽한 동심원 모양의 인공 꽃 덤불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타오이는 갑자기 주먹으로 그 유리창을 뚫고, 한바탕 몰아치는 뜨거운 열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엄마, 제가 엄마 없이도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견딜 수 있어. 우리 모두 할 수 있는 일이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이야. 이 지구에 생명체가 생겨났을 때부터 쭉 그래왔던 거고.”
--- p.220

타오이는 이사야의 마음에 되살아났으나 이번에는 멀리 떨어져 시뮬레이션을 통해 그를 바라봤다. 열아홉 살의 타오이는 그에게 다시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 생각을 혼자 간직했다. 살면서 그 누구도 마치 보호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처럼 그녀를 그렇게 사려 깊은 눈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때보다 나이가 든 타오이는 어린 이사야의 표정을 통해 어떤 사랑이 있었음을 본다.
--- p.263

하지만 타오이는 자신이 무엇을 상상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따금 신이는 자기 삶의 끝이 우울증은 아니었으면 한다고 강렬하고도 분명하게 말했다. 자신의 엄마가 돌아가셨던 것처럼 죽는 것을 하지 않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살아있는 게 낫다는 믿음, 그 모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 p.302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둘은 자연스레 그 아파트에 마음을 주게 되었다. 세기말 장식, 주방까지 통합된 디스플레이, 가상 현실 전용 방, 당신의 삶에 맞추겠다는 인공지능 써니의 약속.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등을 토닥여 주고, 스스로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를 알려주는 공간이었다.
타오이는 오븐 도어를 쾅 닫았다. 과거를 자꾸 떠올리는 짓 따위는 그만해야 했다.
“써니, 메모리 드라이브 지우고 너도 꺼진 상태로 있어 줘.”
잠시 정적.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공장 초기화하고 너도 잠시 꺼져 있으라고.”
--- p.323

타오이는 침을 한번 삼키고 울음을 참았다. 갈비뼈가 삐걱거리며 꽉 조여왔다. “뉴로네티카가 현실 세계 사람들을 죽였어요.”
카티카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타오이는 그녀가 답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카티카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잖아요.”
온몸이 오싹했다.
--- p.359

“있죠. 그 사람이 영원히 가이아에 가버리겠다고 했을 때, 꼭 온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펐어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 전부터 이미 그 사람을 여러 번 잃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매년 바뀌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과거의 둘’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던 거죠. 그 사람, 지금 살아있어요.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살아있죠. 죽은 것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것이기도 해요. 변형을 거쳐서 불멸의 존재가 되었으니까요.” 타오이는 침을 삼켰다. “근데 생각해보면 어떤 면에서는 우리 모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 p.366

카티카는 호박잎을 하나 뜯어 눈앞에 들고는 거미처럼 뻗어 있는 얇고 가느다란 선들을 관찰했다. “있잖아, 나는 여기가 불모지라고 생각하지 않아. 그냥 다 써버려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근데 이제는 인간 대부분이 사이버 공간으로 사라졌으니까 지구는 쉬면서 회복할 수 있을 거야.”
타오이는 땅을 다시 내려다보며, 카티카의 진심 어린 마음과 희망을 본다. 타오이는 카티카가 하는 말을 믿고 싶지만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기온상승이 멈춰 초목이 뿌리를 내리고, 공기가 다시 자동으로 정화되는 모습을. 하물며 모든 인간이 죽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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