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부모들이 아이들을 훈육할 때 흔하게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doe maar gewoon(두 마르 허분)’이라는 말이다. ‘그냥 평범하게 행동하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아이를 훈육할 때뿐만 아니라 중요한 시험이나 시합 전에 아이를 응원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들이 말하는 평범함에 정해진 기준은 없으며, 본인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행동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자신이 평소 하던 대로 평범하게 행동하되, 여기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의 평범함이다.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면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존중해 준다는 생각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 pp.6~7 「프롤로그」중에서
그런데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 내게 꽃을 내밀고, 큼지막한 지도를 펼쳐 든 채 열띤 목소리로 동네를 소개해 주는 은빛 머리색의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왠지 마음속에 뭉클한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때까지 이 낯선 동네에서 좀 주눅이 들어 있었나 보다. 잔뜩 경계심을 갖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할머니의 부드러운 듯 강한 목소리에 살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자고 있어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는 것에 양해를 구하며 할머니에게 집 안으로 들어와 차를 함께 마실 것을 권했지만, 그녀는 “다음 기회에”라는 말을 하면서도 차를 권해 줘서 고맙다고 말한 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자리를 떠났다.
--- pp.16~17 「나의 요스튼에게」중에서
임신을 했으니, 영양이 골고루 갖춰진 몸에 좋은 음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어야 된다는 생각에, 그 남편이든 아내든 퇴근 후 조바심을 내며 요리를 하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려고 했다면, 저렇게 둘이서 초저녁 아직 남아 있는 햇살을 받으며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함께 걷고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냉동 피자면 어떤가, 둘이 행복하게 맛있게 먹으면 되는 거 아닐까. 만약 저 커플이 냉동 피자를 먹으며 영양분을 걱정한다면, 필히 손에 들고 간 샐러드와 함께 치즈든 당근이든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곁들여 먹을 것이다.
--- p.47 「임신한 아내와 냉동 피자를 먹어도 행복해」중에서
매년 여름휴가 때마다 똑같은 장소의 똑같은 숙소로 찾아드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꽤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곳에 자신들의 여름 별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똑같은 숲의 똑같은 호수의 똑같은 호텔을 여름휴가마다 간다고 하니, 처음에는 속으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도시의 똑같은 여름 해변의 똑같은 민박집을 찾는 그들의 속마음은 무엇일지 궁금해질 때도 있다. 매년 여름마다 친구들과 혹은 가족들과 그렇게 같은 곳을 찾아가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어차피 여름휴가 장소를 바꾸든 안 바꾸든 쓰게 되는 비용은 별로 차이가 없으니, 비용 때문에 같은 장소를 가는 건 아닐 듯했다. 그냥 그게 편해서, 그곳이 익숙해서, 그곳이 그리워서, 그렇게 매년 같은 곳으로 여름휴가를 간다고 했다.
--- p.63 「할머니 집을 바꿀 수는 없으니」중에서
네덜란드에서는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서 그 집에 간 게 아니라면, 그 집에 들른 시간이 거의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된 때일지라도 그곳에서 저녁을 함께 먹는 일은 일반적인 경우로 여기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인의 집에 오후 다섯 시 즈음에 갑자기 방문을 했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그 지인이 이제 대화를 마치기를 원하는 듯한 표현을 해 오면, 그 집을 눈치껏 나와야 한다. 조금 더 눈치 없이 그 집에서 뭉그적거리다가는, 직접적으로 이제 곧 우리 가족의 저녁 식사 시간이니 우리 집을 떠나달라…는 식의 말을 듣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p.103 「음식을 당신에게 나눠 준다는 의미」중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파트타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부모들도 모두 번듯한 직업을 갖고 있고, 좋은 집에서 평범하게 사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파트타임 일을 하는 것을 단순히 돈을 버는 목적 외에, 독립해 갈 연습을 하며 독립 자금을 마련하고 삶을 배울 기회로 생각한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슈퍼마켓에서 일을 하고 피자 가게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니, 혼자만 파트타임 경험이 없는 것도 친구들 사이에서 이상해 보이게 되는 것이다.
--- p.134 「아이를 독립시킬 최적의 시기」중에서
네덜란드에서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아이들은 학교 가방에 두 개의 플라스틱 박스를 담아 등교를 한다. 하나는 스낵 박스고, 다른 하나는 런치 박스다. …… 등교 후 대략 두 시간 정도 후에 간식 시간이 있는데, 간식을 먹고 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들은 무조건 밖에 나가서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보내야 한다. 비에 아이들이 쫄딱 젖더라도 그렇게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건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점심 휴식 시간은 보통 더 긴데, 날씨 상태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무조건 밖에 나가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극한의 날씨가 휘몰아치지 않는 이상 거의 예외는 없다.
--- pp.159~160 「스낵 박스, 런치 박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