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몸과 마음을 다루던 자들. 원장의 모계들은 ‘휴지인’으로 불렸다. 코를 풀 때 쓰는 그 휴지가 아니고 휴지인(休知人), 쉼을 아는 사람들이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치유자, 힐러였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휴지인이라는 말은 ‘쉼을 아는 자만이 고통을 치유할 수 있다’는 뜻을 품었다. 천 년간 휴지인을 찾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었다. ‘기인’들이다. 특별한 능력을 갖고 인간 무리에 섞여 사는 종족들. 방귀쟁이 며느리, 재주 많은 삼 형제, 우렁이 각시 등등. 현대 사람들이 전래 동화나 설화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인들은 사실 죄다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원장의 모계 어른들이 그런 기인들을 치료, 치유해 왔던 것이다. 비범한 인물들의 심신을 다루는 일이었기에 휴지인들에게는 그에 맞는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었다. 아니, 특별한 운명이 요구되어 왔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태어나기를 휴지인 집안의 여자로 태어나야만 기인들을 다룰 수 있었다. 한마디로 운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그저 운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 「이중생활」 중에서
“작가님, 그게 어떤 책인데요?”
“선비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이어 온 비법이 적힌 책이란다.”
“뭐죠? 과거 시험 족집게 비법, 뭐 이런 건가요?”
나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구탁 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구탁 씨는 굴하지 않고 설명했다.
“아니, 그런 비법이 아니라 도술이지. 그 책 안에 바로 너를 잠들게 한 그 졸귀가 갇혀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내 옆에 있는 용이를 바라보았다.
‘너희 아버지, 왜 이러시냐?’
하지만 용이는 내 눈빛에 담긴 의미를 읽지 못하는 듯했다.
“아빠, 그 졸귀가 잠을 불러와서 졸귀는 아닌 거죠?”
“그래,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니. 가장 하찮은 병졸, 그 병졸을 뜻하는 졸귀란다. 힘이 없고 형태도 없어서 현실에선 인간을 괴롭히지도 못하고 겨우 꿈속으로 스며 들어가 졸음과 악몽으로 괴롭히는 하찮은 놈이지. 그 꿈에서 인간의 정수를 빨아 먹는 기생충처럼 살아간단다.”
구탁 씨는 한 서가 앞에 멈추었다. 거기서 검붉은색 표지의 작은 소책자를 꺼냈다. 책에서 큼큼한 냄새가 났다.
“이 책의 이름은 육포책. 이 책은 종이로 만든 것이 아니야. 괴물이나 귀신을 천도하는 스님들의 살가죽을 얇게 포를 떠, 스님들의 핏물을 적셔 만들었단 소문이 도는 책이지.”
구탁 씨가 내게 육포책을 건넸다. 헌책 냄새에 피 냄새까지 섞여 구역질이 났다.
“우웩!”
--- 「몽신체」 중에서
방으로 돌아와 전신 거울 앞에 섰다. 다이어트에 돌입한 지 꼭 일주일이 지나는 시점이었다. 거울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속옷만 걸친 내 몸은 어쩐지 야생적으로 보였다. 단 한 군데도 맘에 드는 구석이 없는 나의 몸!
그때 어디선가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본다. 이제 하다 하다 환청까지 들리나? 정말이지 난감한 열다섯 살 인생이다. 눈을 질끈 감고 체중계에 올라섰다. 쿵! 계기판의 숫자를 확인한 순간, 발끝으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져 내렸다. 말할 수 없이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뭐가 그렇게 억울해?”
삼색 고양이의 목소리는 명쾌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뭐야, 너? 어디에 숨어서 날 지켜보는 거야?”
주변은 고요하고 적막했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악악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뱃속 깊은 곳에서 연달아 꼬르륵 소리가 났다.
미적으로도 그렇지만 눈치라곤 전혀 없는 나의 몸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몸의 주인은 나라고!
식욕에 지지 않기 위해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 「알로그루밍」 중에서
“인류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라고 생각해다오.”
말을 마친 성명진 박사가 기계를 조작하자, 기계톱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성시아는 몸에 주입된 약품 때문인지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성명진 박사의 말을 들었다.
“그래도 넌 내 딸이니까 어떻게 될지 알려주마. 헤드가 절단된 채 생존한다면 너는 노아 1호에 실릴 거다. 실험용 우주선으로 헤드들이 프록시마 b로 무사히 갈 수 있는지를 입증하겠지. 물론 나는 자신 있어. 그러니까 나를 믿어라, 딸아.”
마지막 남은 희미한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복잡한 기계음과 레이저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몸통과 분리된 성시아의 헤드는 유리관에 담겨 연구실의 한쪽 벽에 진열되었다. 놀랍게도 의식이 남아 있었고, 눈으로 주변을 볼 수도 있었다. 끔찍하게도 바로 옆에 놓인 유리관 안에는 권보라 중사의 헤드가 들어 있었다. 성시아는 눈을 깜빡거리는 것으로 모스 부호를 보냈다.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이에 권보라 중사의 헤드는 괜찮다는 눈 깜빡거림으로 모스 부호를 표시했다. 그 후로도 계속 헤드들이 유리관 안에 들어간 채 쌓여 갔다.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보였다. 헤드들은 생명 유지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생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헤드가 든 유리관들은 계속 교체되었다. 나중에는 둘을 포함해서 열 개 정도만 남게 되었다. 둘은 그 와중에도 눈을 깜빡거리는 것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헤드」 중에서
‘어떻게 운동을 시작하게 됐지?’
처음에는 그냥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왜소한 자신의 체격을 바꾸고 싶었고, 남들 앞에서 자신의 몸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얻은 결과가 마음에 들었고, 남들도 인정해 주기에 계속 열심히 했었다. 그뿐이었다.
“저는…… 그냥 몸도 바꾸고 싶고, 더 건강해지고 싶어서요.”
모자 캡 아래로 그늘이 드리워진 트레이너의 눈매가 살짝 올라갔다.
“그래요? 그럼 왜 숫자에 신경 쓰세요? 맨몸으로도 충분히 그런 몸 만들 수 있는데.”
“어……. 처음에 배울 때부터 아령을 들면서 운동했고……. 또 무게가 점점 늘어야 힘도 세지니까요.”
“힘이 세져야 해요? 힘이 세지는 거랑 건강해지는 건 연결되어 있긴 해도 같은 뜻은 아닌데요?”
“…….”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트레이너의 물음에 승민은 점차 할 말을 잃어갔다. 어린 그의 머리로도 트레이너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었다. 왜 하고 싶으냐. 무엇을 얻고 싶으냐. 승민은 결국 고개를 떨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턱대고 운동을 해 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나 싶어 절망감이 들었다.
--- 「일단 가즈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