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예술, 순수하게 프랑스적이라 할 샹파뉴 지방과 일드프랑스 지방의 예술이 낳은 고딕식 장미 모양 창문(rosace)이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것이 이성을 특징으로 하고 상상을 특징으로 하지 않는, 상식을 특징으로 하고 변덕을 특징으로 하지 않는, 그림을 특징으로 하되 채색화를 특징으로 하지 않는 프랑스인이로구나!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이 신비로운 동방의 장미를 지어낸 것이로구나!
--- p.12, 「들어가는 글 _ ‘역사 전체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자리'」중에서
예술 사이의 경계는 이론가들이 많은 사람에게 주장하듯 그렇게 엄격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끊임없이 하나가 또 하나의 영역을 침범한다. 한 예술은 다른 예술로 이어지고 또 다른 예술 안에서 완성된다. 같은 정신의 욕구가 하나의 예술 형식으로 요란하게 표출된 다음, 다른 예술에서 완벽한 표현을 찾고 또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니 음악사를 아는 것은 조형 예술사를 아는 데 필요한 경우가 많다.
--- p.13, 「같은 글」중에서
이처럼 음악은 여기서 겉으로는 죽은 것 같아도 삶은 연속된다는 것을, 세상이 폐허가 되더라도 영원히 새로 싹이 튼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만약 사람들이 음악의 핵심적 특징 중 어느 것 하나를 무시한다면 이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쓸 것인가? 만약 그 내밀한 진짜 힘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이해할 것인가? 그리고 이 원초적 오류로 말미암아 역사의 한순간뿐 아니라 역사 전체의 면모까지도 잘못될지 누가 아는가? 우리가 세계의 어떤 시대에 갖다 붙이는 르네상스나 데카당스라는 말들이 앞에 든 예처럼 사물의 한 측면만 보는 시각을 가진 데서 오는지 누가 아는가? 예술은 쇠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이 아주 죽기도 하는가? 예술은 변하고 상황에 적응한다.
--- p.18, 「같은 글」중에서
하지만 물질적 조건이 더 힘들어질 때, 삶이 척박하고 가난하고 근심에 들볶일 때, 밖으로 활짝 피어나는 것이 금지되어 있을 때, 삶은 스스로의 안으로 잦아들며 영원한 행복 갈구로 인해 다른 예술적 길을 찾게 된다. 미美도 변하고 좀 더 내적인 성격을 갖게 되며, 심오한 예술, 즉 시와 음악으로 피신하게 된다. 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필자는 정말 믿는다. 인류의 죽음도 없고 다시 태어남도 없다. 빛은 끊임없이 타오르지만, 단지 이동하며 타오를 뿐이다. 이 예술에서 저 예술로 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한 예술만을 연구한다면 당연히 역사 속에서 심장이 멎는 멈춤, 가사假死 상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예술을 한꺼번에 보는 시각을 갖는 대신 삶의 영원성이 가라앉아버린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모든 역사 일반의 기초가 되는, 모든 예술 형식을 서로 비교하는 일종의 ‘비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만 빠뜨려도 전체 그림을 이루는 나머지가 전부 틀릴 위험이 있다. 역사의 대상은 인간 정신의 생생한 단일성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역사는 그 모든 생각이 합쳐진 것을 간직해야 한다.
--- p.18~19, 「같은 글」중에서
예술은 인류의 꿈이다. 우리는 빛을, 자유를, 차분한 힘을 꿈꾸는 것이다. 이 꿈은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걱정이나 자만심으로 우리가 예술의 정점에 도달해 있고 쇠퇴하기 직전이라고 확신하기 쉽다. 태초부터 그랬다. 어느 세기에나 사람들은 신음했다. “모든 것은 말해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너무 늦게 온다.” 어쩌면 모든 것은 말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말할 것도 많이 있다. 예술은 삶처럼 마르지 않는다. 마르지 않는다는 이 속성보다 수 세기를 채우며 넘실대는 대양 같은 이 음악을 더 잘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다.
--- p.33, 「같은 글」중에서
학문 중에서도 가장 편파적인 것이 사학史學이다. 일단 어떤 사람이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면, 다른 사람은 젖혀놓고 오직 그 사람만 좋아한다. 남들의 말도 소용없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위대성이 인정받자 동시대의 위인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바흐 못지않은 천재였고 그보다 훨씬 성공했던 헨델조차도 바흐보다 조명받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먼지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작곡가가 텔레만이다. 텔레만은 생전에 J. S. 바흐보다 유명했지만, 후세에 가서 그 경솔한 승리의 대가를 치러야 했던─즉 후세엔 잊힌─음악가다. 유럽 각국─프랑스부터 러시아까지─사람들이 다 좋아했고 슈바르트로부터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거장”이라 불렸고, 그 엄격한 마테존으로부터도 “상찬할 말이 부족한 유일한 음악가”라는 칭찬(“륄리는 칭송받았고 코렐리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상찬할 말이 부족한 사람은 오직 텔레만뿐이다.”)을 받았던 텔레만이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 잊히고 무시받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는 풍문이나 입소문으로만 판단되고 있을 뿐, 정작 그의 음악의 의미를 굳이 이해해보려는 이는 없다.
--- p.156~157, 「제1부 지난날의 음악가 _ ‘텔레만’」중에서
정념으로 들끓지 않고 매우 예민하고 유연하면서 평온한 마음속에 우월한 의지가 지배하는 완벽히 건강하고 사려 깊은 영혼, 그것이 모차르트다. 이런 사람이 창작자가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객관적으로 삶을 표현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모든 것을 스스로 채워야 한다는 열정적 영혼의 강한 필요 때문에 전혀 제약을 받지 않는다.
--- p.325, 「제1부 지난날의 음악가 _ ‘모차르트’」중에서
바로 그것이 불행이다. 사람들이 쉽게 그를 안다 생각하는 것, 이것이 불행이라는 말이다. 위대한 예술가에게는 너무 밝은 빛보다는 차라리 어두움이 덜 해로운 법이다. 그는 베일에 싸여 있는 편이 차라리 낫다. 왜냐하면 만약 그가 오랫동안 이해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남들 때문이라면, 사람들이 그를 이해하고자 할 때 최소한 스스로 그 생각의 비밀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라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뚜렷하게 그려져 굴곡이 강한 작품, 그렇다, 심지어 때로는 르네상스 시대 위대한 이탈리아인의 명료한 천재성 속에도 황혼빛 같은 북구의 침침함과 렘브란트 같은 화가의 무한하고 흔들리는 영혼에 담긴 만큼의 깊이와 복잡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모른다.
--- p.346, 「제2부 오늘날의 음악가 _ ‘베를리오즈’」중에서
바그너는 베버의 무덤에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은 그대가 옳았다고 본다. 프랑스는 그대를 숭배한다. 하지만 오직 독일만이 그대를 사랑할 수 있다. 그대는 독일의 것이며, 독일의 실존과 함께하고, 독일의 더운 피 한 방울이며, 심장의 한 부분이다….” 나는 바그너가 했던 이 말을 여기서 그대로 베를리오즈에게 다시 적용하겠다.
--- p.350, 「같은 글」중에서
지금까지 나는 댕디 씨의 특징을 밝히려 노력했으며, 그것이 믿음과 행동이었음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유의 에세이에 피치 못할 오류가 있다는 걸 나는 숨기지 않겠다. 특히 지금 살아서 한창 발전하고 있는 인물에 관해 판단하기란 너무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수수께끼다. 남들에게만 수수께끼인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렇다. 자기 자신도 완전히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커다란 오만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살려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한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어느 누구도, 우리가 알거나 안다고 말하는 어느 누구도, 우리 친구 어느 누구도 밖으로 보이는 모습과 같지는 않고 우리가 그에 대해 갖는 이미지와는 전혀 딴판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마음이 지어낸 환영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무기력에 빠지지 않으려면 판단을 해야 하고, 뭔가를 세워야 하며, 창작을 해야 한다.
--- p.475, 「제2부 오늘날의 음악가 _ ‘뱅상 댕디’」중에서
〈영웅의 생애〉는 6장으로 나뉜다. 영웅, 영웅의 적, 영웅의 반려자, 전장, 영웅의 평화적 작업, 영웅의 은퇴, 영웅의 영혼의 이상적 종말, 이렇게 총 6장이다. 이 곡은 특별하고 영웅주의에 도취한 대작이며, 바로크적이고 사소하면서도 숭고한 작품이다. 호메로스적인 영웅이 어리석은 군중, 꽥꽥대고 절뚝거리는 거위 떼 같은 군중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바이올린 독주는 일종의 협주곡처럼 여자의 유혹, 애교, 퇴폐적인 변태성을 표현한다. 날카로운 트럼펫 소리는 전투를 알리는데, 땅이 우지끈 흔들리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기사의 이 무서운 짐을, 철통같은 의지가 이끄는 이 폭풍의 소용돌이와 도시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들의 모습과 이 요동치는 늪을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이는 일찍이 사람이 음악으로 그려낸, 더없이 감탄스러운 전투이다! 독일에서 이 곡이 초연되었을 때 나는 청중이 이 곡을 듣고 떨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무의식적이고 격렬한 동작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나 자신이 기이한 도취, 성난 이 대양 앞에서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고, 30년 만에 처음 독일인들은 승리를 구가하는 시인을 드디어 찾았구나 생각했다. 〈영웅의 생애〉는 모든 면에서 음악의 걸작 중 하나일 것이다.
--- p.497, 「제2부 오늘날의 음악가 _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중에서
위대한 예술가들이 살아온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볼수록 그들의 삶에 많은 고통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남달리 예민한 감수성을 더 잔인하게 건드리는 공통된 시련과 실망을 겪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대 사람들에 비해 20, 30, 50년 이상씩 성공을 미리 보장해준─수백 년 동안 그런 일이 많았다─그 천재성 때문에 주변이 삭막해져 승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 p.505, 「제2부 오늘날의 음악가 _ ‘후고 볼프’」중에서
27세에야 창작다운 창작을 시작했고 1890년부터 1895년까지 5년간은 침묵을 지켜야 했던 볼프라는 사람이 실제로 사는 것처럼 산 기간은 겨우 3-4년뿐이었다. 하지만 그 3-4년 동안 그는 예술가들 대부분이 오래 예술을 한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살았고, 그를 일단 알면 누구도 잊을 수 없는 흔적을 작품에 남겼다.
--- p.530, 「같은 글」중에서
볼프가 고른 시 중에는 한 편도 범작이 없다. 이런 말을 슈베르트나 슈만의 가곡의 경우에는 할 수 없다. 그리고 동시대 시인의 시는 한 편도 없다. 동시대 시인 중 릴리엔크론 같은 몇몇 사람에게는 볼프가 공감을 느꼈지만 그랬다. 릴리엔크론은 볼프가 자기 시에 곡을 붙여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볼프는 그러지 않았다. 위대한 시인들의 작품 중에서 그에게 너무 친숙해져 자기 시처럼 느껴지는 시에만 곡을 붙였다.
--- p.532, 「같은 글」중에서
끝으로 나는 독일 음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을 말하고자 한다. ‘독일에는 음악이 너무 많다.’ 이건 역설이 아니다. 내 생각에 예술에 닥친 가장 큰 불행은, 예술이 함부로 넘쳐흐른다는 것이다. 음악이 음악가들을 익사시킨다. 축제가 계속 이어진다. 이 스트라스부르 축제가 끝나면 바로 바흐 축제가 아이제나흐에서 시작되고 주말에는 본에서 베토벤 축제가 열린다. 연주회, 연극, 합창 협회, 실내악 협회 등의 일이 음악가의 생활을 잠식해버린다. 언제 예술가가 홀로 있으면서 자기의 내적 음악을 들어볼 시간이 나겠는가? 이렇게 봇물처럼 쏟아지는 신중치 못한 음악은 영혼의 마지막 피신처에까지 스며들어, 그 힘을 희석하고 그 거룩한 고독, 그리고 은밀한 생각이라는 보물을 파괴한다.
--- p.568, 「제3부 프랑스 음악과 독일 음악 _ ‘프랑스 음악과 독일 음악’」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