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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본능

김기홍 | 북랩 | 2024년 04월 26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9.0 리뷰 10건 | 판매지수 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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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604쪽 | 500g | 152*225*29mm
ISBN13 9791172240714
ISBN10 117224071X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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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모는 다짜고짜 어린 달기의 멱을 감아쥐었다.
“이년이 지 에미년을 닮아가지고…….”
달기의 여린 볼이 계모의 우악스러운 힘으로 눌리자, 입이 벌어진다. 계모는 색 바랜 파리채 살에서 허연 창자를 드러낸 파리 한 마리를 뜯어 달기의 입으로 가져갔다.
“아나 퍼먹어라. 아나 퍼먹어!”
달기가 발버둥을 쳤지만, 계모의 악지는 뭉개진 파리를 달기의 입안으로 밀어 넣는 데 성공했다.
“맛있지? 맛있냐고? 동네 망신시키더니 이젠 집구석 물건까지 손을 대?”
분이 풀리지 않은 계모는 또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려 달기의 입속으로 처넣을 곤충을 찾았다. 멋모르고 세상을 염탐하던 곤충들은 여지없이 달기의 입속에서 사라졌다. 달기는 곤충이 목을 넘어갈 때 꾸꿈스럽다고만 생각했다. 배고픈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참 거추장스러운 생존이다. 이 생존에는 공식도 방식도 없다. 두뇌는 시각 정보나 인지적 판단을 거부하고 단지 인체가 작동할 수 있는 에너지만 조른 탓이다. 이로부터 그녀의 인체는 모든 공감각(synesthesia)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날 이후 달기는 귀뚜라미도 먹고 여치도 먹었다. 배를 채울 수 있다는 행복은 달기를 진화시켰다. 개구리, 쥐, 뱀과 같은 파충류들로…….
--- p.60

그녀는 일반사람과 다르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들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있었다. 마치 토끼가 풀만을 먹고도 부드럽고 예쁜 털을 가지듯, 공작새가 벌레를 먹고도 그 화려함을 유지하듯, 호랑이가 짐승 내장만 먹고도 그처럼 우아한 털을 뽐내듯 그녀의 유전자 프로그램(program)은 남달랐다. 신은 오랫동안 그녀의 미를 감춰 두었으나 더 이상 인내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목적으로 감춰 두었는지 추론할 근거조차 없다. 감추어진 미에는 독이 있다. 그녀의 이성이 그 독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본능은 그녀를 악녀로 놓아둘 참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는 무섭다. 아직 그 아름다움은 남겨 두었으나 무성히 자라고 있던 증오라는 독초는 무정한 세월 앞에 삭정이가 되어갔다. 지능은 턱없이 떨어졌고, 따라서 계모는 거칠 게 없었다. 계모는 큰 악 속에서 작은 선으로 죗값을 갚아나가며 시도 때도 없이 기어 올라오는 양심이란 놈을 눌러놓았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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