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 할 사람이 없다고요? 다들 술래하기 싫어한다고요?”“하하하. 제가 할게요, 술래. 걱정 말고 같이 놀아요, 우리!”글 쓰는 과자장수.건국 이래 아이들이 가장 많이 태어났다는 1970년, 전남 고흥군 두원면 대산부락에서 첫울음을 터뜨렸다.집안에서는 ‘맹긴이’로 불렸다.여덟 살 되던 해 서울로 이사와 신월동에서 골목대장 맹긴이로 살았다. 수많은 개띠 소년 중 하나로 특별할 거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내다 신월중학교 3학년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그 후, 발산동 명덕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당시는 전교조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학교에서 문예반을 만들어서 교육 민주화를 위해 활동하다가 무기정학을 받았다. 학교는 그만 다니고 싶었으나 부모님이 말려서 졸업은 했다. 그즈음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아 책을 냈다.『친구야 세상이 희망차 보인다』(동녘, 1990).대학 입시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가방에는 교과서 대신 소설책이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그때 읽었던 천 권의 책과 고등학생운동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가 글의 밑천이었다.졸업 후, 막노동을 2년 정도 하다가 군대를 다녀왔고, 다시 막노동을 하다가 결혼을 했다. 잠깐 직장을 알아보다가 친구의 권유로 시작한 과자 장사가 19년째를 맞이하고 있다.한편, 1990년 당시 ‘동녘 출판사’의 디딤돌 시리즈인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노래』(동녘, 1990),『이제 거진 어른인걸요』(동녘, 1990)의 주요 필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