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면, 우리의 나날은 ‘큰 것들’로 채워진다. 어려운 나라를 걱정하고, 끊임없이 돌아오는 어음들을 부도내지 않으려고 금융가를 누비고, 느닷없는 조기 퇴직에 대비하느라 마음을 썩이고, 점점 무거워지는 아이들 과외비를 마련하고 ? 그런 큰 일들에 부대끼는 동안에 ‘작은 것들’은 잊혀진다.
생각해보면, 그러나 우리가 어쩌다 하는 작은 것들은 ? 아이들과 나누는 몇 마디, 함께 늙어가는 아내와 차를 마시면서 듣는 옛 노래, 어렵사리 틈을 내어 만난 옛 친구와의 한때 ? 바라볼수록 소중해지는 재산들이다. 그것들은 우리가 망각의 세월에서 건진 보얀 순간들이다. 여러 해 뒤 문득 돌아보면, 모습이 흐릿해진 우리 삶에서 어쩌면 그것들이 오히려 또렷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큰 것들이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면, 작은 것들은 그 삶을 즐길 만한 것으로 만든다.
--- 시를 사랑하는 사회
사람에겐, 특히 나이 든 사람에겐, 하찮은 기억은 없다. 기억들이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이루므로, 하나의 기억이 사라지면, 그만큼 그의 삶도 정체성도 줄어드는 것이다. 기억의 지평 너머로 기억의 기억만이 아른거릴 때 우리가 느끼는 아쉬움은 잃어버린 자신의 한 부분에 대한 그리움이다.
--- 내 마음속 풍경
현명하고 용감한 세헤라자데처럼,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서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살아간다. 날마다 열심히 살고 그 하루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과 남에게 들려줌으로써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올해는 힘든 해가 되리라고 모두 얘기한다. 이럴 때 요구되는 것은 ‘조심스러운 낙관’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룬 것들에 바탕을 두고서 또렷하고 건강한 한 해의 이야기를 써나가야 한다.
--- 새해의 이야기
그러나 평범한 예술가들은 높은 평가나 명성은 그만두고라도 금전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기대하기 어렵다. ‘승자 독식(winner-take-all)’ 현상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뚜렷하다.
그래서 예술가가 되겠다는 결심은 아주 작은 가능성에 자신의 평생을 거는 위험한 내기라 할 수 있다. 예술적 재능을 일찍 알아보기는 어렵고, 재능이 있더라도 걸작을 쓴다는 보장이 없고, 걸작을 써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평판을 얻은 예술가들도 흔히 가난한 삶을 꾸린다. 예술가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은 이런 사정을 깨달아야 한다.
--- 예술가의 삶
삶은 이어진다. 삶은 40억 년 동안 이어진 사업이다. 그 아득한 세월에 몇 십억 세대의 우리 조상들이 모두 자식을 낳을 때까지 살았으므로,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은 늘 내 가슴을 감탄으로 채운다.
그렇다, 삶은 이어진다. 아무리 재앙의 골짜기가 깊어 보여도, 삶은 그 골짜기를 지나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어려운 시절에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면, 멀리 보아야 한다.
이 불황의 시절에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고 아이들을 키우리라는 사실이다. 삶은 이어진다.
--- 불황의 시절에
우리의 목숨은 너무 짧고 우리의 꿈은 너무 여리다. 인류 자체도 영속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꿈이 더욱 소중한 것이리라. 꿈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설령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하더라도, 아예 없었던 것과는 다르다.
--- 꿈은 어떻게 이루는가 그리고 지키는가
세상엔 세월만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세월에 부대끼면서 스스로 겪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아무리 똑똑해도 젊은이들은 깨닫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삶이 하도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라, 그렇다. ‘피아노의 신동’이나 ‘바둑의 신동’과 같은 칭찬을 듣는 청소년들은 많지만, ‘삶의 신동’은 나올 수 없다. 피아노의 연주나 바둑의 계산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삶 자체에 비기면, 아주 작고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그래서 삶의 지혜들은 대부분 모두 스스로 겪으면서 배우게 된다.
--- 세월만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것
흘긋 돌아본다. 소녀들은 컵라면을 다 먹고 무엇이 우스운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다. 물오른 버들가지처럼 보얀 소녀들 - 저 소녀들의 앞날이 그들의 환한 웃음처럼 밝기를. 저 소녀들이 오래 살기를, 적어도 여기 휠체어에 앉은 노인만큼 오래 살기를. 그때엔 의술이 발전해서 걸음에 탄력이 있을 만큼 건강하기를. 그리고 저 노인에겐 봄철이 여러 번 찾아와서 한강의 흐르는 물을 거듭 바라볼 수 있기를.
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속으로 축복의 말을 건넨다. 생각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축복할 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수 없지만, 축복할 줄 아는 사람에겐 축복이 전혀 힘들지 않는다는 것은. 문득 손을 들어 무심히 지나가는 갈매기에게 인사를 해본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축복을.
--- 한강의 봄
예술적 사회참여로서 하는 연극 활동이므로, 나는 자유주의 이념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널리 선양하는 작품들을 만든다. 그 동안 북한은 예술 작품들을 통한 선동선전(agitprop)에 주력해왔고 우리 사회 안에서도 좌파 세력들이 북한을 대신해서 대한민국을 흔드는 활동을 효과적으로 해왔다. 나는 대한민국을 위한 선동선전 활동으로 연극을 하는 셈이다. 더러 ‘예술가가 선동선전에 몰두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물음도 받지만, 나라가 위급하면 예술가도 자신의 작품들을 나라를 지키는 도구로 삼는 것이 당연하다고 나는 믿는다.
--- 기회주의자의 느긋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