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고 닦고 치우자. 새 시대가 열린다.” 우리 학원 좌우명이다. 수년 전에 문구점에서 이 표어를 봤다. 청소에 목숨 거는 내 눈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전혀 영어학원 답지 않은 좌우명은 방문객에게 큰 웃음을 준다. 쓸고 닦았더니 진짜 새 시대가 열렸다. 청소와 편지쓰기를 가장 많이 했다. 시설 좋은 학원 놔두고 작은 교습소에 오는 학생이 고마웠다. 뭐라도 해주고 싶은데 돈이 없었다. 시설로는 게임이 안 되지만, 깨끗한 교실은 자신 있었다. 전단지 돌리고, 홍보물 만들고, 청소하느라 손이 거칠거칠했다. 매달 학부모에게 A4 두 장 분량 편지를 썼다. 6개월 차 무렵까지는 매주 두 장씩 보냈다. 한 학생에게 한 달에 편지 여덟 장을 쓴 셈이다. 지금처럼 사진 전송이 흔하지 않을 때라, 학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 묘사했다. 학부모 마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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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기 내내 해답을 찾아 다녔다. 크게 네 가지 일을 했다. 첫째, 전화 영어, 화상 영어, 스카이프, EBS 프로그램 등 온라인 콘텐츠를 이 잡듯이 연구했다. 둘째, 온라인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다. 셋째, 선생님은 수업과 학생 관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업무는 분업화했다. 넷째, 시스템을 표준화했고, 모든 지시 사항을 매뉴얼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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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영어 목표는 낮지 않다. 목표에 도달하려면 학교 수업만으로 부족하다. 가정 학습이 필수다. 학생 스스로 하거나 부모가 맡아야 한다. 실상은 어떤가?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100명에 1~2명 있을까 말까였다. 내용을 소화하지 못해도 진도는 나가고 학년은 올라간다. 3학년 영어를 이해 못해도 4학년이 되면 4학년 영어를 배운다. 초등학교 영어는 쉽다고 하지만, 새로운 단어 하나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데만 수십 차례의 복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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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에 가면 신상품 먹거리를 유심히 본다. 〈꼬꼬면〉, 〈나가사끼 짬뽕〉, 〈허니버터칩〉, 〈불닭 볶음면〉, 〈미역국 라면〉, 〈꼬북칩 초코츄러스〉가 출시됐을 때, 학원 스티커를 붙여서 홍보에 활용했다. 선생님과 학생 생일에 〈햇반〉과 〈미역국 라면〉을 깜짝 선물로 줬다. 온 가족이 먹게 푸짐하게 챙겼더니, 학부모들의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꼬꼬면〉이 나왔을 즈음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출근이 불안정했다. 그런데도 홍보했고, 내가 자리에 없어도 학원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렸다. 마케팅을 생활의 일부로 여긴다. ‘상대에게 기쁨을 주는 일’이라 생각하며 365일 즐기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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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스템, 네트워크, 마케팅을 합쳐서 ‘시네마’라고 부른다. 학원에 접목할 시스템과 마케팅을 일상에서 종종 발견한다. 식당, 편의점, 카페, 운동센터, 병원, 노트북 서비스센터에 갈 때마다 학원과 연결한다. 발길 닿는 곳마다 시네마 천국이다. 외부와 학원을 연결하고, 시스템과 마케팅을 이어서 학원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경영한다. 문구점, 커피숍, 분식집 쿠폰 발행은 시네마의 결과물이다. 책상 앞에 앉아, 왜 안 되냐고 투덜거리지 않는다. 움직이며 세상을 관찰한다. 우리 학원 고객에게 어떻게 최선을 다할까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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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과 교습소는 개인사업이지만, 교육비는 나라에서 기준 금액을 정한다.창업 지역 교육청에서 ‘1분당 기준 금액’을 확인한다. 지역, 학원 형태(교습소, 학원, 어학원), 수강 나이, 과정에 따라 다르다. 서울과 경기도 몇몇 지역을 보면, 초등부는 160~180원, 중등부는 180~200원, 고등부는 200원 초반대이다. 어학원은 교습소와 학원보다 분당 가격이 대체로 높다. 교습비를 정할 때, 교육청이 제시한 1분당 금액, 수업 시간, 지역 평균 학원비를 참고한다. 교습비 신고 내역을 외부인이 확인하도록 학원 밖에도 게시한다. 의무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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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분야에 대해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고 부른다. 특정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춘 사람을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한다. 원장은 스페셜리스트이자 제너럴리스트이다. 각각의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한다. 학원 경영 전체를 바라보며 균형을 맞추고, 흐름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운다. 교육자이면서 사업가이다. 그야말로 멀티 플레이어다. 여러 분야의 지식과 능력을 갖출 수 있는 학원 경영, 매력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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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때 객관적 근거를 확인하고 신속히 처리한다. 오래 끌수록 문제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사건이 터진 뒤에야 늘 후회했다. “더 일찍 결단을 내렸어야 했어.” 퇴원 사유는 처음부터 공지해야 탈이 없다. 학생 개인에게 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학원 전체 규칙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공동이 이용하는 곳에서 규칙을 지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가? 퇴원을 판단하는 기준은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하는가’이다. 교육비를 내고 다니는데 특정 학생으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보게 방치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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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1년 차부터 꿈꾸었다. ‘강사끼리 화기애애한 학원’ ‘웃음이 끊이지 않는 학원’ ‘서로 도와주고 발전해나가는 학원’ 가끔은 내 흉도 보고 서로 의지하는 관계가 되길 바랐다. 회식비도 넉넉히 챙겨주었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았다. 친구가, 퇴근 후 직장 동료와 치맥 하며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게 그렇게나 부러웠다. 마음에 맞는 직장 동료는 로망이었다. 내가 못 해 본 걸, 우리 선생님에겐 해주고 싶었다. 학생끼리 싸우듯, 강사끼리 싸운다. 학생 왕따가 있듯, 선생끼리도 왕따가 있다. 원장은 강사 대 강사 관계까지 돌봐야 한다. 강사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양쪽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결정을 내려야 강사도 원장을 믿고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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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영재 소리 듣던 아이가 중·고등학교 때 평범해지는 걸 종종 본다.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몰라서다. 부모가 밥과 반찬을 입에 넣어 줘서, 숟가락을 잡아 본 적이 없었다. 손을 놓으니,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잡더라도 입으로 가져가기까지 많이 흘리고 시간도 걸린다. 자립심 없는 아이로 키운 건 부모다. 왜 스스로 못하냐고 불평불만하며 자신과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안긴다. 초등학교 때 영어 영재면 무슨 소용인가? 고등학교 때 영어 내신 6등급인데. 자녀에게 서툰 면이 보이더라도, 스스로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학원 역시 학생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학부모와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학부모는 자녀 문제라서 객관적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 마음이 조급하다. 틀린 길로 급하게 가려 할 때, 속도를 늦추게끔 도와주는 게 학원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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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8대 영역으로 나누고 통합해서 지도한다. 신체 기관은 각각의 이름과 기능이 있지만, 연결되어 있다. 영어도 그렇다. 유아기에는 이유식을 먹고, 커가면서 골고루 먹는다. 영어 유아기에는 듣기 중심이지만, 차츰 소화할 수 있는 영역을 늘려 균형 있게 학습한다. 균형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모두 10, 10, 10, 10 같은 비율을 뜻하지는 않는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비율이 똑같은 걸 균형 잡힌 식단이라고 하지 않듯이. 듣기와 원서 읽기 등 특정 영역에만 오랜 기간 집중하는 것은 지양한다. 초등 고학년에게 이유식만 주면 영양 불균형이 온다. 중·고등학교 때 영어 면역력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초등 저학년부터 균형 잡힌 영어 학습이 필요하다.
--- p.250
내신대비 기간이 오로지 점수 따기를 위한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 1년의 절반을 학교 시험 목표에만 맞추어 공부하면, 정작 자기 진짜 실력을 모른 채 지나간다. 중학교는 시험 범위가 교과서 2~3과 정도이고, 난도 또한 높지 않다. A 등급을 받아도 실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없다. 같은 A라도 수준이 제각각이다. 내신 대비를 할 때, 학생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계속 던진다. 정답이라도 알고 맞췄는지 개념부터 확인한다. 단어 문제는 비슷한 말, 반대말, 영영 풀이까지 연관지어 보게 한다. 눈앞에 놓인 목표를 이루도록 도와주는 것은 선생님의 당연한 역할이다. 학생의 미래까지도 생각해야 하는 건 선생님의 사명이다.
--- p.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