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어우러져서 하나의 통합된 사회를 이룬다고 떠들어대지만, 그게 누구를 위한 통합일까요? 당신네 입장에서는 그런 통합이 이득이겠지만, 그로 인해 원주민들은 점차 눈에 띄지 않게 되었죠. 애버리진들은 오스트레일리아 사회에서 완전히 내몰리고 애버리진의 이해관계와 문화에 영향을 주는 정치적인 토론에서조차 소외당하고 있어요.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애버리진 미술품을 집 안에 걸어두는 걸로 할 일을 다 한 줄 알죠.” _ 25페이지
“살인 사건을 하나 해결할 때마다 조금씩 타격을 입어요. 불행히도 인간사에서는 애거사 크리스티를 읽으면서 상상하는 것보다 비참하거나 우울한 사연이 더 많고 특별한 동기도 없거든요. 처음에는 나도 정의의 사도라고 생각했는데 어떤 때는 그냥 쓰레기 수거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인범들은 대부분 불쌍한 인간들이고 그들이 그 지경에 이른 이유를 열 가지 이상 찾아내는 건 일도 아니거든요. 결국 모든 건 좌절감으로 귀결돼요.”
_ 75~76페이지
“지금까지 나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원하는 건 다 얻으면서 살아왔지. 한마디로 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됐는지 설명할 길이 없어.” 바람 한줄기가 머리카락을 스쳐 해리는 눈을 감았다. “어쩌다 알코올 중독자가 됐는지.” _117~118페이지
“하루는 멜버른, 한 달 뒤에는 케언스, 또 그다음 주에는 뉴캐슬. 성폭행 사건이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3개 주에 걸쳐 발생했습니다. … 피해자가 금발이고 목이 졸렸으며 경찰에 범인의 인상착의를 말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일정한 양상이 없어요. 흠, 하나 더 있군요. 범인이 살인을 저지를 때는 아주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것. 하아. 희생자를 깨끗이 씻겨서 자신의 흔적을 말끔히 제거한 것 같습니다. 지문, 정액, 옷의 섬유, 머리카락, 희생자의 손톱에 낀 피부조직까지 전부 다요.” _123페이지
“해리, 당신이 이런 말을 한 적 있죠. 백인이든 애버리진이든 지구상에 처음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가 얼추 비슷한 이유는, 모두가 쥐뿔도 모르는 일에 대해 같은 결론을 내린 탓이며 모두가 선천적으로 비슷한 사고과정을 타고나서라고. 어찌 보면 내가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말일지도 모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당신 말이 맞았으면 좋겠어요. 어느 쪽이든 그냥 눈을 감으면 무엇이 보이는지가 관건이니까…….” _228페이지
무대를 깨끗이 치우자 처형 장면으로 바뀌었고, 북 하나로 연주하는 장송행진곡에 맞춰 오토가 등장했다. 해리는 단두대를 보고는 지난번에 발전소에서 본 공연의 변주라는 걸 알아챘다. 오늘 밤에 분명 여왕이 등장하려는지, 오토가 빨간색 야회복을 입고 아주 긴 백발의 가발을 쓴 채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등장했다. 사형 집행인 의상도 달라졌다. 몸에 딱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 커다란 귀를 붙였으며 겨드랑이 밑에 거미줄 같은 걸 붙여서 악마처럼 보였다. 그가 박쥐 같다고, 해리는 생각했다. _233~234페이지
“폭력은 코카콜라와 성경 같아. 고전이지.” _234페이지
진실은 바로 아무도 진실하게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그래서 아무도 진실 따위에는 관심도 없다는 사실이야. 우리가 만들어낸 진실은 누군가를 이롭게 하는 노력이 그들의 힘으로 상쇄되고 남은 것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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