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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내 인생의 화양연화

제주, 내 인생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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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153*224*20mm
ISBN13 9791165120900
ISBN10 1165120909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 나이가 든 지금, 저물어 가는 저녁 따스한 불빛 아래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며 삶을 조용히 즐길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젊은 시절 못지않게 행복할 뿐이다. 가슴속을 감사와 평온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신은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을 열어주신다고 했다. 풋풋하나 설익은 젊음은 얼마나 오만했으며 그로 인한 고뇌는 어떠했던가. 끝없는 욕망 가운데 내려놓지 못했던 삶은 도전인 동시에 또 얼마나 고단했던가.
이제 모든 걸 다 내려놓으며 절대자에게 나를 맡기고, 이 우주의 섭리 속에서 조용히 인생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지금이, 이 순간이 진정 행복하니 이 또한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니겠는가.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살아갈 행복을 마련해 놓으신 절대자에게 그저 감사를 드릴 뿐이다.
--- 「내 인생의 화양연화」 중에서

… 견물생심이란 말은 꼭 값이 나가는 큰 물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신선하고 맛있는 귤을 앞에 놓고 딱 한 개만 먹겠다는 생각을 잠시 잊었다. 몇 개씩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귤밭 저 안쪽의 농가 한 채가 보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큰애와 나는 농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깔끔하게 정리된 농가주택 앞에서 주인을 찾았다. 한참을 불러도 아무런 대꾸가 없다. 맛있는 귤을 허락없이 먹었다는 용서도 구할 겸 귤도 좀 사가려던 계획을 접고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너 왜 그렇게 급히 가버린 거야?” 먼저 집에 와 있던 둘째에게 물어보았다. “나도 귤이 먹고 싶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동네에서 창피당할까, 봐 겁나서 그냥 왔어요.” 나 또한 떳떳한 마음은 아니다. 분명 주인 없는 곳에서 귤을 따 먹었으니 잘못된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왜 나는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글이나 드라마를 보면서 누려보고 싶었던 시골의 낭만을 맛본 기분이다. 낭만을 훔쳤다고나 할까?
별이 무수히 쏟아지는 여름날 밤, 평상에 둘러앉아 갓 쪄낸 뜨거운 옥수수를 까먹으며 수박을 나누어 먹고 어린아이는 옆에서 잠드는 밤, 옆집 밭의 참외 서리조차 낭만으로 여겨지는 향수와 정서를 꼭 한번 누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남의 귤밭에서 따먹은 귤 서리를 여름밤의 참외 서리처럼 스스로 낭만적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걸까.
--- 「훔친 낭만」 중에서

… 넘실대는 푸른 바다와 함께 온 도시가 풍요롭게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아름답고 짙푸른 지중해를 앞에 두고도 아기자기한 제주 바다가 생각났다. 두고온 ‘내 고향 남쪽 바다’처럼. 때마침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이 옆에 있던 남편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 제주 바다가 더 아기자기하지 않아?” 부부란 참 이상한 존재이다. 살면서 때로 다투기도 했고 무덤덤하기도 했지만 이럴 때면 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이다. 마치 사랑에 빠진 남녀가 그 앞에 천하절색이 지나가도, 또는 그리스 조각처럼 멋진 남자가 나타나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내 여자 내 남자에게 열중하듯. 세상에 내로라하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제노아, 꼬따쥬르를 앞에 놓고도 우리는 제주의 아기자기한 바다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로지 바다를 바라보며 뒤에서 솔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마련할 내 집을 머릿속에 꿈꾸었다. 그곳이 오두막이 될지언정 어느 궁궐이 부럽지 않았다. 새로운 곳, 우리만의 ‘가나안’이 될 집을 머릿속에 그리며 희망이 넘쳤다. 얼핏 바라본 남편의 옆얼굴이 마치 새로운 땅의 상륙작전을 앞에 둔 장군의 얼굴처럼 멋져 보였다.
--- 「부부」 중에서

… 구멍이 숭숭 난 돌담이 단단한 콘크리트 벽을 이긴 것이었다. 아니, 모든 걸 다 받아 흘려보낸 넉넉한 포용이 한 치의 오차도 잘못도 용납하지 않는 거만과 완벽함을 넘어선 것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의 이치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하게 방어하며 모든 걸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어쩌면 틀린 것일 수 있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것의 진실은 무엇일까. ‘완벽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허점을 감추고자 하는 노력이므로 자신을 힘들게 하고 파괴할 뿐’이라는 심리전문가 브레네 브라운의 말을 생각해보게 된다. 진정한 힘과의 연결은 스스로에 대해 불완전함을 포용하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다소의 부족함은 나머지를 채워주려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성공의 문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도 했다.
허술한 듯 바람에 길을 내어주고 소통하며 오히려 자신을 단단히 지키는 돌담을 보며 커다란 지혜를 얻는다.
--- 「돌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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