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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샤마의 영국사 3

사이먼 샤마의 영국사 3

: 제국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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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640쪽 | 153*224*15mm
ISBN13 978894607514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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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9년, 데이는 마치 쓰레기 속에서 강아지를 고르는 것처럼 미래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될 후보로서 두 명의 어린 소녀를 직접 골라서 자신의 가족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루소의 원칙에 따라 그들을 양육한 다음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명되는 사람과는 결혼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견습생이 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제공할 작정이었다. 12세의 금발 소녀는 슈루즈버리(Shrewsbury) 고아원에서 데려와 사브리나(Sabrina)로 개명했으며 런던의 파운들링(Foundling) 병원에서 데려온 갈색 머리 소녀는 고대 로마 시대의 고결한 아내의 이름인 루크리셔(Lucretia, 이 여성 영웅의 말로가 자살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로 불렀다. 토머스 데이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 실험은 역시 계획대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 사브리나는 리치필드로 끌려가 데이의 종종 비인간적이도 했던 실험을 겪었다. 그녀의 팔에 뜨거운 왁스를 부어 고통의 한계를 테스트하는가 하면 공포탄을 장전한 총을 머리 근처에서 발사하기도 했다. 데이는 마침내 그녀를 꿈의 배우자로 만들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여서 그녀를 기숙학교로 데려갔는데, 그녀는 이 탈출에 대해서는 비로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결국 변호사와 결혼했다.
--- p.27~28, 「1. 자연의 힘: 혁명으로 가는 길」중에서

굴뚝 타는 소년들에 대한 캠페인(1789년 블레이크의 시 「굴뚝 청소부(The Chimney Sweeper)」에 영감을 줌)에 대한 응답으로, 1788년에 8세 미만 아동의 고용을 금지하고 불이 지펴진 굴뚝에 내려 보내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또한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씻겨야 한다는 조항도 명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법은 대부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운명을 가장 걱정했던 사람들에게는 충분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 p.47, 「1. 자연의 힘: 혁명으로 가는 길」중에서

소설 『에밀』에 나타난 이 철학자의 주장은 소녀들이 한 가지 최고의 목적을 위해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 배우자에게는 위로와 조력자가 되고 자녀에게는 어머니(당연히 수유부)가 된다. 신의 섭리는 성별이라는 것을 서로 연결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다른 것으로 규정지어서 남성처럼 행동하거나 남성처럼 되려 하는 여성은 그 정의상 생물학적·도덕적 괴물이어서 거주지를 가정으로 만들어주는 특성, 즉 자애(tendresse)를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앗아가 버린다. 메리는 … 딸들의 교육에 관한 작은 논문을 썼다. 이 글은 『에밀』과는 달리, 소녀들도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면에서 잘 교육받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 p.61, 「1. 자연의 힘: 혁명으로 가는 길」중에서

그러나 메리는 이 글을 쓰는 동안 존슨의 단골손님 중 한 명인 기이할 정도로 말을 많이 하는 중년의 스위스 예술가 헨리 퓨즐리에게 단단히 반해 버렸다. … 퓨즐리는 그녀가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당황했던 것 같긴 하지만, … 메리는 충동적으로 소피아의 집 문을 두드리고,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는 젊은 아내에게 세 사람이 함께 가정을 꾸려야 한다고 알렸다: “나는 기만할 생각이 전혀 없기에 당당하게 말할게요. 이 제안은 당신의 남편에 대한 나의 진심 어린 애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는 매일 그를 만나서 대화하는 만족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녀는 그에게 남편으로서의 요구는 전혀 하지 않았으나 ― 관대하게도 그런 것은 소피아에게 양보했다 ― 정신적으로 그들은 함께 있어야 했다. 충격을 받은 소피아의 반응은 메리가 다시는 문턱을 넘지 못하게 한 후 문을 쾅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 p.86~87, 「2. 자연의 힘: 집으로 가는 길」중에서

메리는 임신했다. 1797년 3월, … 윌리엄 고드윈은 세인트 팬크러스 교회(St Pancras Church)에서 “임레이 부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 두 사람은 동거를 지속하지 않고 서로의 독립을 존중하며 다른 이성도 만나면서 가끔씩 함께 숙박하긴 하겠지만 각자의 거처도 유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 8월 30일에 진통 시간이 다가오자 그녀는 그 지역 조산사를 불렀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난 후, 또 딸이었는데(미래에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의 작가가 되는), 태반이 산도를 따라 내려가지 않아 패혈증이 우려되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호출된 내과 의사는 최선을 다했지만 태반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막지는 못했고 메리는 고통 속에서 다량의 출혈을 했다. … 다음 날 그녀는 더 나아져 보여서 고드윈은 그가 산책을 다녀와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그녀가 떨리는 발작을 일으키며 몸부림을 치고 엄청난 고열이 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 일주일 후인 1797년 9월 10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 울스턴크래프트는 근대 페미니즘의 창시자로 제대로 기억되고 있다; 여성의 모든 본성은 그들의 생물학적 특성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녀의 명료한 주장은 아직도 강력한 것으로 남아 있다.
--- p.100~102, 「2. 자연의 힘: 집으로 가는 길」중에서

적어도 3만 명의 아일랜드인이 학살당했다; 경제적·정치적으로 역동적이었던 세상은 침략, 억압, 종파 학살의 납골당으로 변해버렸다. 보다 결정적으로, 아일랜드의 자유에 대한 희망은 1801년에 아일랜드가 영국에 흡수되었다는 사실로 대체되었다: 이제 유니언 잭의 마지막 십자가가 완성되었다. 더블린 의회(되돌아보면 문제의 근원이라고 여겨졌던)는 해산되었고, 아일랜드 대표들은 이제 웨스트민스터 의회에 앉을 것이다. … 아일랜드의 선거구 수와 의회 의원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아일랜드의 부채(1세기 전 스코틀랜드의 경우와는 달리)는 별개로 유지되었다 ― 아일랜드 주민에게는 심각한 과세 부담이 되었다.
--- p.110, 「2. 자연의 힘: 집으로 가는 길」중에서

박람회가 열린 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 동안 박람회를 보러 온 600만 명 이상의 방문객 중 최소 75만 명이 철도를 이용했다. 이런 규모의 수송은 지금까지는 군대가 행군하거나 민간인이 진격을 피해 달아날 때처럼 군사적인 동원이 필요할 때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까지의 영국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구 이동은 완전히 평화로운 성격의 것이었다; 국가 권력이 아니라 호기심과 상업의 승리로 인한 것이었기에.
--- p.164, 「3. 여왕벌과 벌집」중에서

앨버트가 10월에 잉글랜드에 도착했을 때 빅토리아는 몇 년 전에 그토록 창백한 모습을 보였던 바로 그 댄스 플로어에서 그의 “아름다운” 용모를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그녀는 특히 그 “멋진 목”에 압도되었다; “그 예쁜 입, 섬세한 콧수염과 아름다운 몸매, 넓은 어깨와 든든한 허리; 내 심장이 요동친다 ― 앨버트가 갤럽 춤과 왈츠 춤을 추는 것을 바라보면 매우 즐겁다.” 그의 도덕적 진지함, 명백한 지성 및 흠잡을 데 없는 미덕과 결부된 그 “천사 같은” 외모는 그녀로 하여금 마음을 결정하게 했다 ― 빨리. 카툰 작가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렸듯이, 프러포즈를 청한 사람이 여왕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 p.180, 「3. 여왕벌과 벌집」중에서

1834년에 위그당 정부에 의해 제정된 신구빈법(New Poor Law)은 이처럼 습관적으로 게으르다고 간주되는 유형의 사람들이 염치없이 세금에 의지해서 살아가려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명시적인 목표를 위해 설계되었으므로 구빈원 내부의 체제를 감옥의 체제와 너무 유사하게 만들어 그 어떤 종류이든 합법적인 일자리를 얻을 능력이 있는 자는 이곳에 스스로 들어올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 p.194, 「3. 여왕벌과 벌집」중에서

왕실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병에 걸리기도 하고 때로는 위중해지기도 했다. 의사들 중 누구를 신뢰해야 하는지에 대해 빅토리아와 앨버트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바로 이러한 경우가 이 부부의 이중 역할 사이의 갈등 ― 한편으로는 남편과 아내, 다른 한편으로는 군주와 배우자 ― 이 악화되는 순간이었다. 비키가 절망적으로 아플 때, 평상시와 달리 매우 당황한 앨버트는 빅토리아에게 “클라크 박사(Dr Clark)가 아이를 잘못 관리해서 감홍(calomel)으로 중독시켰고 당신은 애를 굶게 한 거예요. 나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을 테야! 아이를 데려가서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요. 그녀가 죽기라도 하면 당신은 계속 이 일로 괴로워할 거예요”. 여왕은 오페라를 하듯이 “당신이 그토록 원한다면 직접 아이를 죽여요!”라고 쏘아붙였다.
--- p.216~217, 「4. 부인, 딸, 과부」중에서

실제로 이것은 19세기 말의 개혁 이전까지는 기혼 여성은 재산을 소유하거나 어떤 종류의 계약에도 당사자로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혼 소송의 경우에는 그러한 가능성이 더더욱 적었다. 예를 들면 엘리자베스 개스켈도 자신의 소설로 벌어들인 수입에 대해 권리가 없었으며 남편이 주는 용돈으로 만족해야 했다.
--- p.223, 「4. 부인, 딸, 과부」중에서

그녀는 폴 콜나기(Paul Colnaghi)의 갤러리에서 전시와 판매를 했으며, 카본지 복사물을 출판하기 위해 오토타입 회사(Autotype Company)와 계약을 체결했다. 불법 복제를 방지하기 위해 줄리아는 최근에 제정된 저작권법(1869)에 따라 자신의 사진 중 505장을 등록함으로써 자신의 독창성과 인기를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최대한 많은 이윤을 남기려 한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매매상과 출판업자의 노력으로 그녀의 작품은 유명해졌다. … 그녀의 이미지 작품들은 서서히 인기가 시들해지더니 결국엔 판매가 완전히 중단되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룩한 업적의 힘은 “숙녀 아티스트들”을 폄하하던 이들의 얼굴에서 비웃음을 지워버리기에는 이미 충분했다.
--- p.263, 「4. 부인, 딸, 과부」중에서

1887년 6월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그녀는 갑작스러운 고통을 느끼며 “오늘을 아주 많이 자랑스러워했을 사랑하는 남편 없이 나 혼자 앉아 있었다(오!).” … 빅토리아는 완벽하게 하얀 장례식을 명령했다. 여왕은 흰색 가운을 두른 채로 시신은 마치 한껏 치장한 처녀 신부처럼 봄꽃 가루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데 그 꽃들 중 일부는 아주 세심하게 놓여야 했는데, 머리카락 한 움큼, 반지들, 그리고 그녀가 자신과 함께 관에 넣으라고 명령한 다른 많은 소장품과 함께, 당황스럽게도, 그녀의 왼쪽 손 안에 존 브라운의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백합과 프리지아로 조심스럽게 숨겨졌다.
--- p.277~278, 「4. 부인, 딸, 과부」중에서

아와드(Awadh)[우드(Oudh)]를 지나 동쪽으로 칸푸르(Kanput)[칸푸어(Cawnpore)]를 향해 이동하던 에밀리는 극심한 기근의 현실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캠프의 마구간에서 그녀는 “늙은 원숭이처럼 생겼지만, 여섯 살 정도의 다른 어린아이가 돌보고 있는, 멍하고 바보 같은 눈빛을 한” 비참하게 굶주린 아기를 발견했다. 그녀는 아기를 자신의 날개 아래로 데려가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 매일 텐트에서 마치 애완동물처럼 우유를 먹였다. 그러나 몬순이 오지 않아 발생한 기근에 대한 공포는 가뭄에 시달리는 시골을 가로지르는 대규모 떠돌이 집단과 거지 떼, 걸어 다니는 허수아비와 같은 몰골들과 함께 끊임없이 다가왔다. “우리가 목격하는 끔찍한 광경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 대부분 완전히 뼈대만 남아서 뼈가 피부 사이로 드러나 있고; 옷도 걸치지 않고 인간이라고 보기 힘든 다른 생명체의 모습.”
--- p.316~317, 「5. 선한 의도의 제국: 투자」중에서

1820년대와 1830년대에 감자 작황이 실패한 경험으로는, 이렇게 초창기에는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1845년에 일어날 일에 대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병충해(Phytophthoera infestans) 곰팡이균이 “미국 감자 콜레라”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얻게 되었다. 잎 밑면에 먼저 나타나 감자를 검푸른 자줏빛의 끈적끈적한 덩어리로 변하게 하는 이 병은 … 식물 전문가 대부분은 이것이 작물을 부패시키는 원인이라기보다는 비정상적으로 춥고 폭우가 쏟아진 날씨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 역병이 어떻게 전파되는지에 대한 오해는 잘못된 조언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다음 해에 사용할 씨감자가 충분해야 한다는 불안감에 농민들은 괴경의 썩은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것은 이듬해 봄에 심기 위해 저장하라는 조언만 들었다(적어도 그렇게 하지 말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미세한 포자가 겨울을 난 후 감염된 괴경이 심어지면 두 번째 파멸의 계절이 찾아올 것은 당연했다.
--- p.321, 「5. 선한 의도의 제국: 투자」중에서

어린 소녀들은 생존을 위해 머리카락을 팔았다. 도니골(Donegal)의 어머니들은 가족을 먹일 식량을 사기 위해 양털을 팔려고 몇 마일을 걸어 다녔지만, 식량을 들고 있는 여성은 절망적인 사람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다. 들갓(charlock) ― 야생 양배추― 이 거의 주식이 되다시피 해서 … 공동 매장 구덩이가 가득 찼고 일부 가족은 구호를 계속 받기 위해 사망 사실을 숨기기도 했다. … 어머니들이 죽은 아이를 등에 업고 외딴 매장지로 가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 죽은 아기를 바다 가장자리에 있는 고대의 중립지대(limbo) ― 물과 땅과 하늘의 공간 ― 로 데려가 절벽에서 잘라낸 거친 돌로 표시된 작은 무덤을 파는 것이 아버지들의 업무가 된 듯했다. 바람에 긁히고 이끼로 뒤덮인 30~40개의 돌로 이뤄진, … 이 동그란 무덤들은 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슬픈 작은 무덤들로, 아직도 거센 파도 곁에 서 있다.
--- p.326~327, 「5. 선한 의도의 제국: 투자」중에서

땅을 잃는 것을 체념해 버린 사람들에게조차 대부분의 아일랜드인이 혐오스럽게 바라보던 구빈원은 확실한 구원이 될 수 없었다. 아무리 가난하고 굶주려 보여도 “가장”이 하루 9펜스(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를 벌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엄마와 아이들은 입소를 거부당할 수 있었다. 꽉 찬 구빈원은 치명적인 콜레라, 발진티푸스, 결핵의 번식지였기 때문에 입소 거부는 차라리 자비로운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 p.330, 「5. 선한 의도의 제국: 투자」중에서

반군 세포이들이 델리에 도착하기 전부터 제38벵골 원주민 보병대의 로버트 티틀러 대위는 뭔가 나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셋째 아이를 임신한 지 8개월이 된 해리어트는 “뭔가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 1848년에는 파리에서 살았던 해리어트의 프랑스 가정부 마리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부인, 이건 혁명입니다.” 여성과 아이들은 국기 게양대에 모이라는 지시를 받았다. 로버트는 그녀에게 집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했었지만 그녀는 새로운 명령에 순종하여 가족을 학살로부터 구할 수 있었다. … 네 살배기 소년 프랭크는 “엄마, 이 못된 세포이들이 아빠를 죽일까요?”라고 물었다. … “나는 그의 작고 하얀 목을 바라보며 ‘불쌍한 아이야, 그 작은 목은 곧 잘릴 거야, 내가 널 구할 힘도 없이’라고 혼잣말을 했어요.”
--- p.338~339, 「6. 선한 의도의 제국: 배당금」중에서

교육을 받고 도시화된 인도인들은 영국 근대화가 가져다준 경제적 이득을 바라보면서 피지배자의 이익보다는 지배자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목격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철도 건설이 시작되면서 영국의 곡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인도의 곡물을 (풍년에는 물론이고 흉년에도) 더 쉽게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 p.344, 「6. 선한 의도의 제국: 배당금」중에서

한 달이 지나자 빅토리아 시대의 존엄성이라는 가면이 깨졌다. 상처, 콜레라, 이질, 천연두로 인한 사망률이 하루 10명꼴로 증가했다. 병맥주를 마시고 취하는 건 다반사였다. 결투와 자살이 발생했고 비명 소리가 자주 들렸다. 아무도 더 이상 외모에 신경 쓰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종기와 부스럼이 생겼다. 점잔 빼는 자들이 보기에는 충격적이게도 아내와 어머니들은 코르셋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풀어헤치고; 더위와 공포 때문에 미쳐버리지 않을 만큼 헐렁하고 시원한 옷을 입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역설적이게도, 수개월 동안 이런 상황을 견디다 보니 이곳에 갇힌 사람들은 포탄과 총알에 내성이 생겼다. … “포탄이 머리카락을 스쳐도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대화를 계속하고, 총알이 머리카락 위를 지나가도 우리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경우는 너무 흔해서 여성이나 아이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은 레지던시 아래에 땅굴이 매설되어 한밤중에 세포이들이 밑에서 올라와 기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발견할 가능성이었다.
--- p.358, 「6. 선한 의도의 제국: 배당금」중에서

가난하고 굶주린 직공들은 감옥이 어느 정도 생계가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라는 말을(사실과도 부합했다) 들었기 때문에 제발 체포해 달라고 간청했다. 같은 시간에 마드라스와 봄베이의 곡물 창고에는 수입 쌀이 가득 쌓여 있었고, 도난이나 폭동을 막기 위해 군대와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었다. 윌리엄 딕비(William Digby, 기근에 관한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저널리스트)와 같이 겁에 질린 기자들이 증언했듯이, 기근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울타리가 쳐진 비축 창고 앞에서 죽어갔다. 씁쓸한 아이러니는, 세기말에 이르러 인도에서 철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경제가 가장 발달한 지역이 기근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는 점인데, 이곳이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곡물을 비축해 둘 수 있는 시장으로 곡물을 가장 쉽게 운송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 p.383, 「6. 선한 의도의 제국: 배당금」중에서

나중에 윈스턴은 랜덜프와 평생 서너 차례 밖에 긴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고 기록했다. 하지만 그중 한 번의 대화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놀라울 정도로 예리한 전술적 안목을 가지고 흑연으로 만든 병사들의 대규모 부대를 지휘하며 노는 윈스턴을 본 랜덜프는 그에게 군대에나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물론 아버지는 윈스턴이 정치인은커녕 변호사나 성직자 같은 탄탄한 직업을 갖기에는 너무 멍청하다는 맥락에서 던진 말이었다.
--- p.428, 「7. 블레이즈오버의 최후」중에서

윈스턴은 아버지에게 선물로 받은 금시계를 다른 생도와의 충돌로 인해 망가뜨린 후 몰래 수리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주 후, 그 운명의 시계는 윈스턴의 시계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와 커다란 연못으로 흘러 들어가는 개울 속에 빠졌다. 이 재앙에 겁에 질린 윈스턴은 처칠 가문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했다: 23명의 보병으로 구성된 소규모 부대와 소방차를 동원해 연못 물을 퍼냈고, 결국 시계는 진흙으로 뒤덮여 수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채 발견되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아버지에게는 … “너무나도 어리석고 부주의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저는 항상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로 남아 있습니다.” 19살 소년이 아버지에게 한 이 호소는 헛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무책임함과 무가치함에 대한 따끔한 비난을 되돌려 받았다(훨씬 더 신뢰할 수 있고 성숙한 동생 잭과는 달리; 너는 왜 자꾸 나를 귀찮게 하냐 등등).
--- p.428~429, 「7. 블레이즈오버의 최후」중에서

1927년 겨울, 에릭 블레어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통해 하층계급 속으로 뛰어든 것은 5년 동안 영제국의 치안을 맡은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가 될 것이었다. 그는 노팅힐의 공예 공방 옆에 있는 값싼 원룸을 빌려 작가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너무 추워서 손가락이 마비되어 글을 쓸 수 없을 때면 블레어는 촛불로 손가락을 녹였다. 하지만 한 달에 30실링에 불과한 열악한 방세를 고려하면 이 정도로 자신의 정체성 변화를 완성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p.502, 「8. 인내심」중에서

이 특별한 운명의 남자를 모시는 것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처칠은 무례하고 짜증스러울 때가 많았고, 때로는 졸라대거나 모욕적이거나 또는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기도 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면 그가 하루를 지내는 시간은 악몽과도 같았다: 녹색과 금색의 중국식 드레싱 가운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긴 아침 시간 동안 마멀레이드와 멜론이 뒤섞인 서류 읽기; 매일 아홉 번의 시가 흡연 중 첫 번째 흡연; 아침과 점심 사이의 자투리 시간에 집필을 위한 받아쓰기(시가 한 개비; 온종일 여러 잔 마시게 될 물 섞은 위스키 한잔); 엄청나게 기름진 점심; 그리고 의무적으로 1~2시간 낮잠 자기; 그러고 나서 처칠은 분홍색 아기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일어나 경내를 산책하고 돼지, 푸들 두 마리, 검은 백조, 물고기 등 많은 애완동물에게 둘리틀(Doolittle) 박사처럼 생동감 있게 이야기하고; 방문객들의 팔을 붙들고 걸어가서 저택의 최근 개선 사항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너도밤나무, 소, 흐릿한 수평선이 내려다보이는 말버러 정자에 가기. 그런 다음엔 매일 두 번 하는 목욕(수온이 98도가 아니면 짜증을 낸다) 중 두 번째 목욕을 하고, 저녁 식사를 위한 옷을 차려 입고; 샴페인과 클라레트를 더 많이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고 나서야; 처칠은 대부분의 인간을 비틀거리게 할 방식으로 깊은 밤중에 진짜 일을 하기 시작해서는 새벽 두세 시에 마무리하곤 했다.
--- p.520~521, 「8. 인내심」중에서

처칠은 히틀러에 의해 전쟁광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물론 자신을 전쟁광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 역시 지난 전쟁을 직접 목격했고, 전쟁의 피해 규모와 성격을 완벽하게 이해했으며, 핼리팩스나 체임벌린만큼이나 또 다른 전쟁을 막고 싶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그는 회고록에서 반복해서 말했듯이 유럽 역사상 가장 쉽게 막을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고 말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나치 정권의 실체가 드러난 1933년, 아마도 호리스 럼볼드의 보좌관이었던 사위 덩컨 샌즈(Duncan Sandys)의 보고를 통해 나치 정권이 죄책감에 시달리는 포용 정책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 p.531, 「8. 인내심」중에서

바로 그 순간, 5월 28일 늦은 오후에 영국 역사를 바꿀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처칠식 “쿠데타”로 묘사되기는 했지만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이었다. … 처칠은 토론이 자신에게 유리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불리하지도 않다고 판단하고는 전쟁 내각 회의를 정회했다. … 그는 방송에서 그랬던 것처럼 슬픔에 찬 솔직함으로 말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패망할 것이고; 히틀러는 파리로 올 것이며; 이탈리아는 우리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거부해야 할 조건만을 제시할 것이다. … 처칠은 “장엄한” 표정을 지으며 덩케르크에서 10만 명만 탈출시켜도 “멋진 일”이 될 것이며, 누구도 영국이 끝장났다고 한순간도 상상해서는 안 된다는 절대 불가항력적인 결의를 담은 연설을 이어갔다고 한다.… 명예롭고 용감하게 행동한 처칠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적적인 포상을 받았다. 정부가 덩케르크에서 살아남을 것으로 예상했던 5만 명 대신 33만 명의 군인이 구출되었고, 그중 20만 명이 영국군이었으며, 항구를 도는 유람선, 새우잡이배, 낚시배, 페리, 예인선 등 800척이 넘는 배로 구성된 소함대를 구성한 것은 지금까지 주요 전쟁에서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p.561~564, 「8. 인내심」중에서

1950년 1월 21일, 조지 오웰은 런던의 유니버시티 컬리지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글은 처칠의 회고록 『그들 최고의 시간(Their Finest Hour)』(1949)에 대한 평론이었다. … 그는 이 책의 일부가 선거 연설문에서 발췌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공인의 회고록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회고록에 가깝다”고 쓰면서 처칠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는 처칠에게 “어떤 대범함과 너그러움”이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그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 p.596~597, 「8. 인내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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