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미디어연구와 문화연구에서의 일반적인 개념들에 친숙할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이 책을 썼지만, 미디어연구의 기본적인 이론과 접근이 주로 사용될 것이기에 독자들이 이 분야의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물질성을 정치적 개입의 장으로서 바라보는 실용적이고 이론적인 미디어연구의 기획, 이것이 이 책에서 독자들이 얻어 가길 바라는 바이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이 미디어와 기술이 어째서 단순한 도구가 아닌지를 깨닫게 되길 바란다. 미디어는 불평등의 지속과 사회적 차이에 대한 관리가 문제시되는 영역이다. 오늘날, 불평등, 차별, 권력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물질성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물질성을 통해서 권력이 유지되고 지속되기 때문이다.
--- p.14
크로프트는 가부장제의 상징일까? 크로프트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여성 게이머는 욕망되는 특정 여성의 이미지, (환원적으로) 남성 판타지에서부터 나오는 신체 규범을 명백하게 영속화하는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호명된 것일까? 또는 여성 게이머는 텍스트의 능동적 “밀렵자(poachers)”로서, 크로프트의 외모를 규정하는 가부장제 규범에도 불구하고, 증진된 권리의 행위자로서 크로프트의 능력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그렇다”이다. 라라 크로프트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전파를 위한 장막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소비하는 미디어를 통해서 “권리 증진(empowerment)”을 발견하는 팬 행위의 장소이기도 하다. 크로프트는 정체성과 재현에 대한 상이한 쟁투가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인 것이다.
--- p.64
그러나 왜 휴대폰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의 미디어가 아닌 새김의 미디어가 되는가? 많은 실제 사건 범죄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로 인해 우리는 재판에서 특정 시간에 누군가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문서화하는 데 있어서 휴대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있다. 유명한 팟캐스트, 《시리얼(Serial)》을 예로 들면, 여기서는 살인 범죄 재판에서 사용될 증거를 재구성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쓴다. 그 증거의 많은 부분은 휴대폰 통화가 어디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문서화한 기록들과 연관된다. 휴대폰이 특정 행위, 그 시간과 장소를 문서화하는 수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휴대폰이 위치를 문서화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은 휴대폰이 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 p.134
다시 말해서, 디지털 기술은 광범위한 출처로부터 우리에 대한 데이터, 즉 대부분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데이터를 수집한다. 페이스북과 구글은 여러분이 어떤 웹사이트를 보고 어떤 광고를 보고 있는지, 그리고 여러분이 업데이트나 검색을 위해 무언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는지 등등을 알아낼 수 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언제, 그리고 얼마나 오래 보고, GPS 데이터나 여러분의 IP 주소를 기반으로 여러분이 어디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를 얼마나 오래 사용하는지 등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회사들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행동에 대한 데이터를 감지하고, 감시하고, 새기도록 설계된 여러분의 컴퓨터나 휴대폰에 기반하여 여러분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 p.199~200
미디어는 특정한 감각에 집중한다. 전화는 청각을 강조하며, 사진은 시각을 강조한다. 미디어는 공간, 또는 시간에서 이러한 감각을 확장시킬 수 있거나, 또는 특정 감각의 사용을 허용치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매클루언이 말한 “절단(amputation)”의 의미이다. 그리고 확장과 절단은 제로섬이 아니다. 예를 들어,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신체를 분리시키는 헤드셋의 사용을 필요로 하며, 이를 통해서 신체를 다른 “가상”세계에 위치시킨다. VR은 신체와 감각들을 외부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VR은 [동시에] 신체를 절단하여 그것이 존재하고 있는 물질적 공간으로부터 차단시킴으로써 그것을 고립시킨다. VR 헤드셋은 근본적으로 신체 감각을 재구조화(reorient)하면서, 이를 한편으로는 확장시키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절단하고 있는 것이다.
--- p.233~234
예를 들어, 인종과 인종주의에 대한 삶의 경험은 어떤 객체는 현존하게 허용하는 반면, 다른 객체는 결코 물질화되지 않게 할 수도 있다. 인종주의라는 비난을 부인하는 백인들에 의해 매우 자주 언급되는 “나는 인종을 보지 않는다”라는 구절은 인종이 물질화되도록 허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재론적인 주장이 아니라, 특정한 객체와 관계가 인식 속에 등장하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인종을 보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인종이라는 범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인종이 물질화하는 삶의 경험을 거부하고, 인종주의의 불평등을 영구화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인종”은 세계로부터 배제된 어떤 것이 되고, 그것은 인정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는 인종적 차이와 차별의 현실을 거부함으로써 인종주의를 영구화한다.
--- p.262
우리는 미디어 유물론에 대한 간략한 개요의 마무리 지점에 다다랐다. 결론적으로 나는 미디어의 물질성에 대한 열 가지 테제를 통해 내가 제시한 몇 가지 핵심적인 사항들의 요약을 이 책에서 제공한다. 이 책은 단지 서론일 뿐이고, 이 테제들은 미디어의 물질성에 대한 최종 주장도 아니며, 미디어의 물질성을 정의하는 유일한 방법도 아닐뿐더러, 이 책에서 주장된 모든 것을 완전히 요약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실천 속에서,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어떤 다른 것이 될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시도이다.
--- p.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