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시위, 그리고 국제 언론과 각국 정부가 보이는 관심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시 한번 여실히 보여준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사람들은 이 분쟁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의견은 분쟁과 그 역사, 다양한 쟁점에 대한 폭넓은 지식보다는 현재 언론 보도나 소셜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것일 수 있다.
--- p.12~13
한편,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와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개선된 것과는 달리(물론 후퇴한 때도 있었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의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었다. 두 나라는 한때 동맹국이었지만,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감과 팔레스타인 지원을 급진적 이념의 핵심 신조이자 외교 정책의 중심축으로 삼았다(이란 정권이 국내 지지 기반을 다지고 이슬람 세계에서 호감도를 높이며, 지역적 야망을 강화하려는 방법이었다). 이란 정권은 공식 담화에서 이스라엘을 악마화하고(이스라엘을 ‘작은 사탄’이라고 지칭했다),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거부하고, 이스라엘 파괴를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다.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반대는 단순한 수사적 표현을 넘어선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 무장 이슬람 단체(특히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및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시리아에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지원해 왔다. 이란이 시리아, 헤즈볼라, 하마스와 함께 구축한 이른바 ‘저항의 축’은 이스라엘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실제로 이스라엘 정부와 대부분의 이스라엘인은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분쟁보다 이란의 위협에 더 신경을 쓴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최대 관심사는 팔레스타인이나 아랍 국가가 아닌 이란이다.
--- p.31~32
양측의 종교적 극단주의는 평화 조성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폭력 행위에 동기를 부여하고 이를 정당화하고 묵인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하마스,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및 기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는 이스라엘인에 대한 자살 테러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해 왔다. 이슬람에서는 자살이 금지되어 있지만, 자살 테러를 자살이 아닌 ‘순교’로 규정하며 정당화한 것이다. 이들은 순교를 미화하고, 순교자는 곧바로 천국에 감으로써 내세에서 풍성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종교적 헌신이라 찬양한다. 순교자가 되는 것이 계명을 이행하는 것이라는 믿음은 자살 테러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종교가 이러한 공격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지만, 공격에 큰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다.
--- p.61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은 분쟁 초기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 영국에 분개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건국에 영국의 힘이 컸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인 역시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양측 모두 영국이 상대편에 유리하게 행동했다며 맹렬히 비난한다. 영국은 도대체 어떤 일을 했기에 이러한 분노를 불러일으켰을까? 어떻게 팔레스타인의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를 분개하게 하고 소외시켰으며 그들 사이의 갈등에 불을 붙였을까?
--- p.99
팔레스타인의 미래에 관한 미국의 외교 정책을 결정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실용주의였다. 우선 유럽을 떠도는 최대 25만 명의 유대인 난민을 재정착시켜야 했고, 팔레스타인에서 중동을 불안정하게 하고 소련이 개입할 수도 있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자 하는 열망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또한 미국 정부는 이 지역에 민주적이고 친서방적인 유대 국가가 들어선다면 소련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소련과의 냉전 상황에서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향한 인도주의적 관심을 압도했고, 미국의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유대인이 홀로코스트에서 겪은 고통에 대한 보상과 유대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도의적인 믿음은 부차적인 요소에 불과했던 셈이다.
--- p.117
1947년 11월 29일, 장시간에 걸친 열띤 토론 끝에 유엔 총회 회원국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다수가 UNSCOP 분할 계획의 수정 버전인 ‘유엔 결의안 181호’를 채택하기로 결의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유엔 대표들이 박수를 치자 아랍 국가 대표들은 항의하며 퇴장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라디오 생방송을 통해 투표 결과를 접한 전 세계 유대인들은 기뻐하며 축하했고, 아랍인들은 분노를 참지 못했다.
--- p.122
어떤 이유로든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검문소를 통과하고 이스라엘 군인과 대면해야 한다. 이스라엘에서 합법적으로 일하는 팔레스타인인은 7만 명 정도 되는데(대부분 건설업에 종사한다), 이들은 매번 검문소의 좁은 콘크리트 복도, 철제 회전문, 전동식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몇 시간 동안 뜨거운 태양 아래, 또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짧은 통근 시간이 길고 힘들고 답답한 여정으로 바뀌는 경우가 잦은 것이다.
--- p.273
이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민은 이념적 이유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그곳에 살고 있다. 그중에는 철저한 세속주의자도 있고, 극도로 종교적인 유대인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서안지구에 거주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정착촌의 주택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삶의 질이 더 좋기 때문이다. 특히 초정통주의 가정(한 가정당 평균 6.9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의 경우 저렴한 주택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데, 이스라엘에는 주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최근 몇 년 동안 서안지구의 초정통주의 유대인 전용 정착촌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이 늘고 있다.
--- p.292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마침내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인들이 가자지구를 떠나자 환희와 승리의 기쁨에 휩싸였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스로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루고자 했던 바람과 달리, 가자지구의 경제는 이스라엘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철수하자 가자지구의 수출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증가하는 등 급격한 경제 침체가 이어졌다. 가자지구의 생활 여건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이스라엘 철수는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적으로 더 나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하마스가 이곳을 장악하자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되었다.
--- p.313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에 유리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하마스 공격(2008~2009, 2012, 2014)은 하마스를 파괴하거나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는 의도가 아니었다(일부 이스라엘 내각 구성원은 이러한 목표를 옹호하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억제하고 약화시키기를 원하면서도,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시키지는 않았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재점령하여 통치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위험하며, 국내 여론도 좋지 않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이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며, 이곳에서 활동하는 급진 무장 단체를 감시하는 일을 하마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이스라엘로서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계속 통치하는 것이 ‘가장 덜 나쁜’ 선택지인 셈이다.
--- p.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