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디바인의 주력 화기는 군용 M4 카빈과 왕년에 잘나갔던 M9 권총이 아니었다. 최고 사양에 암호화되어 있으며 언제든 필요시 접근 가능하도록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클라우드에 디지털 테더링으로 페어링된, 27인치 화면의 아이맥 두 대였다. 그럴싸한 헛짓거리였지만, 묘하게도 지금 당장은 그에게 지구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물건이었다.
지고하신 금융업계에서 새내기에게 하사하는 가르침이란 알고 보면 단순했다.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 혹은 잡아먹거나 굶어 죽거나. 모든 게 둘 중 하나였다. 한편인 척하다가 돌아서서 뒤통수에 총알을 박는 탈레반이나 아프가니스탄 병사 따위는 없다. 이곳에서 그가 주로 신경 써야 할 건 분기별 예상수입, 자산 유동성, 주식시장 개장과 폐장, 시장 독점과 금융자본가 집단, 사원들이 규칙에 절대복종하기를 원하는 사내 법무팀 변호사들, 그리고 규칙을 과감히 무시하라고 종용하는 상사들뿐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회사에서 바로 옆자리에 앉은 이들이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적이었다. 월가 버전의 종합격투기는 그 또는 그들 중 어느 한쪽만 살아남는 싸움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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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인이 회사에서 파티션이 쳐진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데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 그는 개인 이메일함에 들어온 새 편지를 열어보았다. 다음 순간 이게 농담인지 아니면 자신의 읽기 능력에 문제가 생긴 건지 혼란스러워 그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봤다.
‘여자가 죽었어.’
불길한 전조를 물씬 풍기는, 주어와 조사와 서술어 단 한 개씩으로 이루어진 극도로 짧은 문장이었다.
이메일의 나머지 내용도 훑어봤다. 디바인이 있는 바로 이 건물의 52층 비품창고에서 세라 유즈가 목매달려 죽은 채 발견됐다는 내용이었다. 건물 관리인이 발견했고, 시체 아래 바닥에는 하이힐이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유즈는 목이 늘어나고 척추가 부러진 채 숨이 끊겨 있었다고. 사실이야 어쨌건 그 수상한 메일이 전한 바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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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바인은 기록을 뒤져 유즈가 보안카드를 사용해 목요일 오전 7시 30분에 회사에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간 기록은 없었다. 다른 직원들과 함께 이동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유즈가 그날 밤 다시 돌아왔는지도 확인해봤다. 하지만 그런 기록도 없었다. 아마도, 아예 건물에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 그녀를 죽여 그러지 못하게 했으니까. 그렇지만 애초에 그녀는 왜 그런 늦은 시간에 회사에 있었을까? 일하고 있었나, 아니면 누구를 만나고 있었나? 브래드 카울이었을까? 제니퍼 스타모스가 그런 것처럼?
디바인은 검색 조건을 바꾸고 다시 엔터키를 누른 다음 기다렸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 한 개의 이름만 떴으니까. 자정에 보안시스템에 로그인해 금요일 오전 1시 10분에 로그아웃한 사람. 세라 유즈를 살해했다고 보기에 딱 맞는 시간대. 그는 분명 눈으로 보고 있지만 안 보였으면 하는 그 이름을 멍하니 바라봤다.
‘트래비스 R. 디바인.’
--- p.178~179
“그럼 어떤 증거든 다 무의미해지는 거네요.” 디바인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만약 경찰이 자기들이 봤다고 생각하는 걸 믿는다? 게다가 배심원도 믿는다면? 자네, 최고 수준의 변호사 군단에 퍼부을 돈 100만 달러쯤 가지고 있나? 그건 필요한 돈의 최소한도에 불과하거든.”
“아뇨, 없습니다. 턱도 없죠.”
“그렇다면 자네가 여자를 죽였건 안 죽였건 상관없이, 자넨 망했어.” 카울이 대꾸했다.
“미국식 정의입니까?”
“미국의 현실이지.”
--- p.229
이제 디바인은, 어둠에 힘입어 움직이는 것을 전혀 들키지 않은 채 원위치에서 오른쪽으로 총 20센티미터를 움직였다. 말하자면 착시 같은 건데, 세 남자도 상대적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부지불식간에 디바인과 함께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식물이 위치를 조정해가며 서로 간격을 유지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간격과 각도만 그대로 유지된다면, 실제 움직임은 상대방이 알아채지 못한다. 디바인은 그걸 육군 근접전투술, 즉 CQB 훈련에서 배웠다. 그때도 유용했지만 지금도 매우 유용하게 먹혀들고 있었다.
더불어 상대는 수적으로 우위라고 오만해져서는 과하게 자신만만해하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그들 같은 부류와 디바인 같은 부류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였다.
“뭘 좀 알아내야겠어. 그러기 위해 너를 패야 한다면 기꺼이 그럴 거야.”
“셋밖에 안 되면서 어떻게 그러려고?”
“레인저 출신이라 이거지.” 행콕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는 껌이라 이거야? 네가 총알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면야, 뭐 박수쳐주지. 자, 마지막 기회야. 네 정체가 뭐고 왜 카울앤드컴리에 들어간 거지?”
--- p.301
“디바인, 이 나라 정계를 움직이는 게 한 가지 있네. 아주 단순하고, 굳이 은폐하지도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지. 바로 돈일세. 예전엔 정치 자금원이 상당히 제한적이었고 그 자금원은 반드시 공개돼야만 했어. 더는 그렇지 않네.” 캠벨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을 이었다. “나의 이 보잘것없는 수사팀이 카울앤드컴리에 관심 두는 진짜 이유를 자네들에게 말해주겠네.” 그러더니 잠시 입을 다물고 말을 골랐다. “우리는 카울이 돈세탁과 전 세계 큰손들의 미국 부동산 매입의 주요 연결고리일 뿐만 아니라 그 돈의 일부, 즉 수백 혹은 수천억에 이르는 돈이 공무원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고 보네. 지역 공무원, 연방 공무원 할 것 없이, 지위고하도 막론하고 말이야. 한데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런 거액을 내놓는 사람은 없거든. 그 말인즉 판도라 페이퍼나 그와 비슷한 조사에서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이라는 거야. 세탁된 돈은 이 나라를 전방위로 야금야금 집어삼키는 데 무기로 사용되고 있어.”
--- p.427
다리가 머리 위로 번쩍 들리도록 심하게, 사제폭탄에 몸뚱이가 붕 날아갔었다. 체중이 100킬로그램은 거뜬히 나가고 2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의 군장까지 장착한 남자가 칸다하르 외곽 50킬로미터 지점, 곳곳에 바퀴 자국이 움푹 팬 그 길의 저만치로 마치 인간 포탄인 양 날아갔다. 땅에 떨어진 순간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깨어났을 땐 모르핀을 얼마나 맞았는지 머리가 멍했다. 수차례의 수술과 한 차례의 피부이식을 견뎌야 했고, 2년 후 장거리저격수가 쏜 총탄이 빗나가며 그의 방탄복 결함 부위를 뚫고 들어와 뇌 대신 어깻죽지를 찢어놓았을 때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또 한바탕 겪었다.
--- p.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