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을 물어 뜯는 버릇
나의 가죽이 헐거워지고 마침내
먼지로 날리기 시작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있는것인지 없는것인지 투명하게 무장하는
유리창의 잔인함과 닮았다
안과 밖의 경계를 경계하느라
쓸모없이 순해지는 병病조가리들과 닮았다
여름의 마지막 노을을 파내어
내 무덤을 치장하는 심정으로
조금은 진정성있게 기도해보는
그런 겨울의 첫 날
습관적으로 믿었던 진부한 기도들 때문에
점점 두꺼워지는 노을의 가식과
손톱을 물어 뜯으며 마주하는
내일의 태연함이 재빨리 어둠을 퍼올린다
땅거미가 두꺼워지면서 만들어내는
불우한 서성거림들은
뜯어도 뜯어도 살아나는
손톱의 징그러운 용기 밑으로 숨어든다
화장火葬이 끝나도 살아남는
인공관절의 견고함이 도달하는 비루관처럼
철철철 흘러내리는 나의 엉덩이 가죽들
한 때는 생명의 기원이었을 거기
아무리 얌전하게 늙어가도 이젠,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은 은하를 맴도는
귀벌레로 환생한다
그러니까 나에게
손톱깍이를 주세요
--- 「김애리샤_ 손톱깍이를 주세요」중에서
바다 같은 마음이다
오리무중을 끌어다 놓으니 낯꽃을 알 수 없다
해풍과 모래가 종일 멍 때리다가
눈보라 꽃가루 속에 곧잘 해안선을 숨겨놓는 무인도 품은 이름이다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물고기보다 깊은 호흡 속에 혀 짧은 소리 가득하다
하늘인줄 알고 찾아들던 수많은 행성들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유영하다가
아무달이고 아무 날이고 하늘로 돌아간 행성들과
어디선가 돌아온 행성끼리 새끼를 낳고 또 낳아서 하늘이 새순 천지다
때가 되면 꿋꿋하게 약동하는 봄 물결처럼
오리무중이 눈보라 꽃가루 다 날려 보낸 모내기철이 오면
절기를 헤아려가며 모월某月이 읊조려주는 유세차維歲次가
봄날 새순 같이 모일某日에 다다를 것이다
--- 「김은옥_ 모월모일某月某日」중에서
김이담
고무신짝 벗어놓고 달아난 당신
쫓아 달빛 삼킨 지리산
바위틈에 들었는가
골골 멧등 넘고 넘는
쑥국새
주린 배는 왜 이리 으르렁대는지
밥물 씻는 골짜구니
파르티잔 되었네
쫓고 쫓기는 주검의 틈바구니
애오라지 건진 목숨도
죽은 목숨
나는 온몸 가시 박힌 엉겅퀴
피 절은 꽃대로 서서 우는
사람
당신 안고지고 한세상 흐르고자……
모르겠네, 모르겠어 그것도
죄라면…… 어쩌랴
두 동강 내 땅아
겨눈 총부리에
꽃이라도 꽂아주랴
돌아보면, 사랑은 감옥이었네
쇠창살에 박히는 접동접동 저 소리
목구멍을 메우네
--- 「정순덕_ 엉겅퀴 설화」중에서
정향나무 꽃그늘 아래 멈춰서
한참 쉬시다가
노적봉 고갯마루에 앉아 아리랑 가락 넘기신다
구름 짚고 일어나
찬찬히 가시더니
뒤돌아보다가 보다가 가시더니
끝내 강을 건너셨다
정향 가지 꺾여진 채로
향기 우거지고
뒤란에 앵두 까마중 따서 고픈 배 거두시더니
이제는 노을 거두신다
손 저으시며 가신 엄마 뒤로 노을도 사라진다
요양원 침대 절벽서
외치던 외마디도
너른 바다로 일엽편주가 실어 가고
비가 내리거나 달이 뜨거나
찬찬히 가시던 그 걸음으로
다시 오신다
공기가 되어
못 걷던 걸음 아무 데나 걸으시고
무정세월 꺾어 들고
초록 저고리 제일 이쁜 울 엄마
거기에서 현재로 오신다
내 곁으로 오신다
--- 「나금숙_ 이별의 속도」중에서
페스파니우스가 로마의 황제가 되고
그 아들 디토 대장이 사령관이 되고
그래서, 성전 예루살렘을 무너뜨려
수많은 민중을 학살하거나
철쇄를 채워 잡아 가두는
극악한 죄인들이 있었나니
그 죄인들이 지금
이 땅에도 살아 있나니 오! 그리하여
하늘에는 천둥과 번개가 치노라
땅에는 화산과 지진이 일어나노라
바다에는 거센 파도와 해일이 넘치노라
저들의 죄가 우리의 죄이노라
용서하여라 저 죄인들을
만인이 다 죄인이거나 천사인 것을
--- 「문창길_ 관음 황 씨·1 」중에서
세차게 퍼붓던 빗줄기가
큰 강을 이룬 날이었다
거대한 황톳물이 차량을 집어삼키며 사납게 흘러들었다
순식간에 차오른 물들은 모든 것을 휩쓸고
비명 한번 못 지른 목숨들을 빼앗아 갔다
어제저녁 식탁에서 밥을 먹던 따듯한 가족
터미널에서 만남을 약속했던 친구는 어디로 갔나
핸들을 꼭 잡은 손
차창 밖으로 내민 손
안타까운 손들 이 주르르 떨어지던 지하차도엔
흙탕물만 낭자하였네
무능한 지도자가 외국 땅 언저리에서 웃고 떠들 때
무지한 그녀가 명품 숍에 가는 사이에도
비는 계속 내리고
산도 제 무게를 못 이겨 허물어졌다
사람도 물도 들판도
폐허다
지켜주지 못하는 이 땅에서
다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가슴을 쳐야 하는 지금은
우기憂期다
--- 「박영선_ 우기를 대하는 자세」중에서
고개 숙인 나락들이
논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다
자기를 키워 올린 부르튼 발등과
마지막 젖줄까지 짜내며 갈라지는 흙을
그렁그렁한 눈으로 보고 있다
봄 산의 뻐꾹새 울음과
그칠 줄 모르던 여름날의 폭우,
나락꽃 피어 흩날리던
늦여름의 햇살들,
1미터도 체 안 되는
생의 마디마다 새겨진 기억들이
이제는 온전히 무게가 되어
고개 숙인 가을 나락이 되었다
벼의 일생은 이삭하나 남기는 것
돌아가 안기고픈, 흙의 냄새 가까워질수록
또다시 떠나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 숙인 논 자락이 가을볕에 눈부시다
--- 「선종구_ 나락들」중에서
수필
‘그때 꼭 한번 그 손을 만져보았지’*
이 시구를 읽고서야 아버지 생전에 손을 잡아 드린 적이 몇 번뿐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바깥쪽으로 살짝 휘어진 검지, 유난히 큰 엄지손톱, 글씨를 쓸 때면 종이 위에서 잠시 떨리던 그 손은 어른 남자 손치고는 약간 작고 하앴다. 평소에는 제자리를 지키는 단단한 손이었지만 술을 마시면 하염없이 물러지던, 이제는 암만 만지려 해도 만져 볼 수 없는 그 손이 떠올랐다.
시집을 덮어 둔 채 산길로 나갔다. 사월 초이레 달빛은 막 남해 바다를 건너온 듯 시퍼런 물빛이었다. 개나리 꽃무덤 아래에서 나무둥치 하나가 맨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뭇잎으로 흙을 털어내자 희미하게 나이테가 나타났다. 구불구불한 달 물결 사이로 오래전 새벽 바다에서 돌아온 시리디시린 손이 어룽거렸다.
그 손은 대학 원서 쓰던 날, 기우는 집안도 나 몰라라 서울로 가겠다고 고집 피우는 큰딸의 등짝을 후려치며 떨리던 손이었다. 대학에 합격하여 집을 떠나던 날 고속버스터미널 그레이하운드 차창 너머에서 눈물로 흔들리던 손이었고, 결혼식을 끝내고 신혼여행 가던 때 어서 가라며 떠밀던 손이었다. 그때 알았다. 입시 원서 쓸 때 등을 갈기던 손은 그때껏 떨리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이듬해 첫 외손주를 받아 안으며 환한 웃음으로 활짝 펴 보이던 손이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손바닥에 박힌 생옹이들을 처음으로 보았었다.
나뭇등걸을 쓰다듬었다. 아버지의 손을 처음 잡았던 날이 떠올랐다. 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스무 살도 되기 전부터 집안의 어장을 도맡아 했지만, 당신 소유로 된 번듯한 배 한 척 갖지 못했던 아버지는 처음으로 배를 건조했다. 진수식이 끝나고 손님들이 돌아간 저녁때였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축항으로 갔다. 동생들도 나섰지만 나만 데리고 갔다. 여러 척의 배 사이에서 우리 배는 오색 댕기를 나부끼며 바다에서의 첫 밤을 맞고 있었다.
배에 오른 아버지가 칼치**에 서서 부둣가에 선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멈칫거리자 어서 잡으라는 시늉으로 손을 흔들어 재촉했다. 그래도 나는 잡지 않았다. 여자를 배에 태우면 사업이 망한다고 하던 어른들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퍼뜩 잡고 올라온나.”
성화에 이끌려 손을 잡고 말았지만, 배에 오르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나 때문에 아버지의 어장이 기울까 무서웠다. 내 맘을 읽으신 듯 아버지가 눈을 맞추며 말했다.
“괘안타. 니는 우리 집 장남인 기라.”
뜻 모를 말이었다. 아버지는 이물과 고물을 돌며 해로海路 읽는 법을 알려 주면서 키를 잡아 보게 했고, 엔진 소리를 듣게 해 주었다. 선미로 가서는 바닥에 난 네모 구멍으로 스크루 프로펠러를 가리키며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조심시켰다. 소주병을 따 술잔을 건네며 바다에 붓게 했을 때는 내가 맏아들이 된 듯했다. 나를 장남이라고 한 아버지의 말이 오금을 박았던 걸까. 그날 아버지를 따라 배에 올랐던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정말 나를 아들로 여겼던 걸까. 딸 넷을 낳고서야 겨우 얻은 아들은 다섯 살 안쪽이었으니 아버지를 귓전으로조차 들을 수 없을 때였다. 육지 공부를 시킨다며 나를 너무 어린 나이에 집에서 떠나보낸 미안함도 있었지 싶다. 누구보다 외로움을 일찍 배운 아버지였기에 객지에서 내가 느낄 마음을 다 안 거다. 종종 니는 복이 많아 잘 살 거라며, 어장이 번창한 것도 니가 태어나면서부터라고 했던 것도 나를 달래려던 말이었을 거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친정에서 며칠을 묵고 풀보기 가던 날이 떠오른다. 아침부터 아버지는 통 말이 없었다. 가끔 주시던 덕담 하나 건네지 않았다. 고모와 당고모, 숙모들이 대문 밖 한길까지 나와 배웅하며 소리쳤다.
“야아야, 니 복 다 갖고 가지 말고 친정에 쪼께 냉기 놓고 가그래이.”
전해 오는 말이 맞았던 걸까. 진수식 날 아버지 손을 잡고 올랐던 배는 내가 시집을 가고 정확히 일 년 후 어느 날, 출항을 하루 앞두고 불길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불타는 배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며 허공을 휘저었을 아버지의 손이 지금도 서물거리는 듯하다.
태어나자마자 생모를 잃었던 아버지. 주먹 쥐고 울던 손을 잡아 준 이 없어서일까. 청년이 되어서까지도 아버지의 두 손은 꼭 쥔 채로였다. 그래도 어장만은 성실히 지켜낸 손이었다. 아버지의 손이 열린 것은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부터였다. 그러나 사업이 내리막길로 접어들면서 다시 움켜쥔 손은 배를 떠나보낸 뒤에는 종주먹이 되고 말았다. 술만 드시면 빈손을 폈다 오므렸다 하며 집안을 쥐락펴락했다. 그 손은 아버지에게서 가족을 멀어지게 했고, 꽤 오래 아프게 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반달이 한 번도 보름달인 적 없었을 아버지의 생애인 양 떠 있고, 하늘가엔 아무리 코를 벌름거려도 맡을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몸내 닮은 목련이 사월 봄 바다에 실려 온 미역귀처럼 걸려 있었다. 하늘에서 눈길을 거두었다. 필시 공복인 채로 간신히 물고 있을 반달을 새벽하늘이 놓아버릴까 봐, 그러면 동이 트기도 전에 어장을 열어야 했던 아버지가 뱃길을 잃어버릴까 봐. 내 유년의 꼭지가 똑! 하고 떨어져 내릴까 봐….
새 한 마리가 비껴갔다. 봄밤, 꽃이 지천이건만 새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쉼 없는 날갯짓으로 날아갔다. 소문난 부잣집 장남이었지만, 아버지도 꽃자리에 눈길 한번 보낸 적 없이 평생 두 손을 파닥이며 살다가 새가 되어 서편으로 날아갔다.
--- 「박금아_ 그 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