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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에 파묻혀 부서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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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00쪽 | 127*188*12mm
ISBN13 9791198597724
ISBN10 119859772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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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서자마자 널브러진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길로 가면 사람을 밟지 않을 수 있었다. 널브러진 사람들이 길가를 침범하지 않는 이유는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을 위한 건 아니다. 일단 길가에는 뾰족한 가시로 만들어져 있는 펜스가 쳐져 있었으며 혹여나 그 펜스를 넘어 길에 몸을 비집어 넣으면 센서가 발동해 인간용 래커차가 빠르게 와서 그 사람을 수거해 가기 때문이다. 수거해서는 돈을 지급하지 않고 노동을 시키는데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때는 회복이 어려운 상해를 입히는 걸로 알고 있다. 어떤 해를 입는지에 대한 소문에는 이를 뽑는다는 말이 항간에 떠돌곤 한다. 사람은 먹고 살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서는 치아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듯 길가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나는 보기와는 다르게 낭만적으로 표현하곤 했다. 나는 그들을 죽음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불렀다. 끝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도 분명 쉬고 싶은 날이 있을 터였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셀 수 없는 세월을 살아낸 인간은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은 기간을 정해놓고 수면 캡슐을 복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면 캡슐에는 인진 캡슐의 효능도 있어서 길가에서 잠을 자도 인진 가루의 영향은 받지 않는다. 그래서 인진 캡슐과 수면 캡슐은 값비싼 물건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수면 캡슐은 근처 마트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진 캡슐과 달랐다.

사람들이 수면을 정하는 장소는 다양한데 돈이 아주 많고 본인이 생각하는 기간동안 자릿세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금액을 지불하고 고급스러운 곳에서 수면을 하지만 돈이 없다면 누가 훼손할지도 모르는 길가에서 수면을 취해야 했다. 이미 비싼 수면 캡슐로 인해 마땅한 장소를 대여할 여유가 없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보통 그런 사람은 높은 확률로 신체 훼손을 당하는데 그래서 수면하는 기간을 따로 정해두지 않는다. 그러면 일어나지 않고 훼손된 신체로 삶을 살아갈 일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시체라고 부르긴 하는데 썩지 않아서 축 늘어진 인형 같아 보였다.

또 수면하고는 싶지만 적당한 장소는 없고 또 내 몸에 손대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은 이불로 자신을 돌돌 감싼 뒤 잠에 든다. 이불을 덮는 것은 ‘나를 해치지 말아주세요.’라는 신호다. 물론 이를 보고 그냥 지나칠지 해칠지는 장기 헌터의 마음에 달려있다. 악질 장기 헌터들은 이불을 덮은 사람만 골라서 공격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원래 인간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하는 청개구리 심보를 가진 존재니까.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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