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바꾸고 싶은 게 많았던 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치를 선택한 나. 그러나 어느 정도 타협한 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선택한 나. 그렇게 ‘애매모호한 마음’을 지니고 발을 내딛게 되었다.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로 던져졌다. 국회에서의 삼 년을 꿈같이 보냈다. 국회는 생각보다는 역동적이었고, 정체되었으며, 복잡했고, 좋은 일이 많았다. 애매모호한 마음은 매번 모양을 바꿔가며 속에 들어앉았다. 때론 기쁨, 때론 슬픔, 때론 분노, 때론 만족. 처음이라 너무 서툴렀지만, 그래서 빛났던 순간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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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배가 말했다. “한번은 여자친구랑 싸운 적이 있었어. 나보고 어떻게 하루에 단 한 번도 연락할 시간이 없냐고 하더라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냐고. 그래서 바로 사과했어. 미안하다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 근데 말이야… 그렇게 사과를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진짜 내가 그날, 화장실을 한 번도 못 갔던 거야. 그리고 전화 기록을 봤어. 다 일이랑 관련된 사람들인 거야. 다른 방 보좌진, 의원, 기자들, 협력관. 그제야 생각난 거지. ‘아, 맞다. 나 하루 종일 전화 받느라 정신없었지.’ 결국 걔랑은 헤어졌어.” 보좌진의 슬픈 자화상이다.
--- p.42~43
법 하나가 세상에 탄생하는 데는 여러 과정이 필요하다. 많은 이의 손길이 닿아야 하고, 많은 검토를 거치게 된다. 특히, 체계의 정합성을 고려하는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늘공(늘 공무원)’이 담당한다. 그럼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사회의 문제를 파악하여 법안 아이디어로 담아내는 것이다. 하나를 하더라도 꼭 필요한 법인지 제대로 고민하고 법안에 양심을 담아 만들어내는 것이다. 형식적인 발의 기술자가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거듭 다짐한다. 문제를 향한 날카로운 의식을 계속 견지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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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서 나는 대략 삼 년 만에 총 세 번의 선거를 치렀다. 아니, 전국적인 규모의 선거뿐만 아니라 국회 내의 선거까지 합하면 네 번이다. 한번 치를 때마다 후보들은 사활을 걸고, 돕는 이들의 시간을 저당 잡고, 사무실을 구하고, 현수막을 내걸고, 빵빵한 음악을 동네방네 떠들썩하게 울려댔다.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대규모의 행사가 치러진다니 불가사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이어지는 또 다른 선거. 선거의 꼬리 물기는 앞으로도 계속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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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수로 삼 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게 업무적으로 글을 봐달라는 사람들이 생겼다. 일로 만난 사람들은 나의 미숙한 모습을 발견할 때면 오히려, 그런 면이 있었어? 하고 반문한다. 예전과 상반된 반응을 마주할 때마다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이제는 ‘못’보다는 ‘잘’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다. 어느샌가.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싶다. 의원실의 주 기자가 이제는 신뢰받는 어엿한 보좌진이 되었다고. 그러니 자꾸만 버벅거리고 있다면 용기를 가지라고. 너무 좌절하지도, 힘들어하지도 말길. 유능한 사람이 될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의원실의 주 기자가 보증하겠다.
--- p.115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협상’에 임하려는 사람들이 항상 ‘남의 말은 안 듣고 자기 의견만 주장’하는 사람들을 배려한다는 점이었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의원님도 그 피해자였다고 생각한다. 안타깝다. 그런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그런 것일까. 어째 마에스트로는 아무도 맡지 않으려 하고, 불협화음 일색으로 연주하는 이들만 많아진다. 그렇게 되면 조율하는 사람만 힘이 빠진다. 힘만 빠지면 다행이지만 자신의 편도 점차 없어진다. 조율의 역할은 대체 누가 할 것인가? 누가 짊어질 것인가, 그 무게를. 어렵다. 화합의 정치를 하자고 주장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것 같아서. 통합의 정치를 하는 사람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각자의 주장만 펼치다가는 부정적인 에너지가 나라 전체를 휘감아 돌 것이다.
--- p.141
어느 시대든 같다. 보수든 진보든 사회의 모든 문제를 ‘전 정권 탓’, ‘남 탓’으로 돌리기 급급하다. 모두가 양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기에 능하다. 입장이 달라질 때마다 주장에 맞는 근거를 취사 선택하는 사람들이 득시글하다. 사실은 그 누구도 ‘국민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개일까, 늑대일까. 진정 사람의 문제일까. ‘불그스름하게 시야를 가려버리는’ 시대의 문제는 아닐까.
--- p.144
요즘 정치판엔 세 가지가 실종되어 있다. 철학, 정도 그리고 사람. 철학이 있는 정치가가 없다. 정치를 하고 싶은 사람만 있지, 정치로 무엇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 정치를 기술로 한다. 아무리 선거가 중하다고는 하지만, 목적을 상실한 수단이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지닐 수는 없다. 정도가 없다. 지켜야 할 선이 없다. 밀면서 이동한다. 여기까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볼까? 꽝! 치킨게임이다. 서로 크게 부딪쳐 상처만 남는 극한의 전진뿐이다. 서로가 자기들의 입장만 중시한다. 갈등 속에서의 조율과 화합이 정치의 미덕이건만, 미덕을 실현하려는 사람은 없고 다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운다. 사람이 없다. 정치가 더 이상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을 혐오하고 공격한다. 극우와 극좌. 서로 정도가 없이 부딪칠 때는 언제고, 또 멀어질 때는 한없이 멀어진다. 진영에 따라 무조건 악마화하거나 절대 선인 것처럼 여기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배적 정서가 됐다. 정치의 전복이 필요하다. 발랄하고 유쾌한 전복이. 심각하고 얼굴을 찌푸려서는, 상대방의 얼굴에 침을 뱉어서는 나아질 수 없다. 계속해서 나빠지기만 할 것이다. 나는 정치가 유쾌했으면 좋겠다. 철학과 정도 그리고 사람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긍정성을 내포했으면 좋겠다. 슬그머니 미소 짓게 하는 정치, 정말 불가능할까?
--- p.196~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