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의 사원에서 창가에 서 있던 한 여자를 떠올렸다. 어둑한 사원 안에서 기도하듯 눈을 감고,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 안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여자. 나는 그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가 어떤 경로를 거쳐 그곳에 있는지, 어떤 바람을 가졌는지. 그러나 잠시간 빛 속에 녹아들고 싶은 그 마음만은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먼 빛들』의 인물들은 치열하다. 때로 삶은 다정함조차 날카롭게 갈아 치열해지라고 외친다. 그렇게 갈아 낸 조각들을 갑옷처럼 두르고 바쁘게 뛰어야만 한다고. 그러나 아주 사소한 순간, 바닥에 맺힌 빛의 웅덩이를 발견하는 그런 때면 멈춰 서서 빛 속에 발끝을 가만히 넣어 보게 될 때가 있다. 한 박자 늦게 웅덩이 안으로 들어온 누군가의 발끝과 끝이 닿을 때, 빛은 각자의 것이자 모두의 것이 된다. 『먼 빛들』을 읽는 것은, 멀지만 사라지지 않는 빛을 손톱 끝에 새기게 되는 일이다.
- 범유진 (작가)
『먼 빛들』은 소설이자, 문화계를 구성하는 전문가·행정가·실연자의 각기 다른 입장과 시각을 예리하고도 차분하게 묘사한 리얼 다큐이다. 조용하지만 담대하게 현실을 밟아 가는 대학교수, 정치적 조직 논리와 평범한 직업인 사이에서 고민하는 행정가, 자유로운 창작을 꿈꾸지만, 관가의 행정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전시기획자. 문화계 사람이라면 누구든 자신의 이야기라고 할 법한 현실의 한 토막을 기가 막히도록 사실적이고 설득력 있게 끄집어낸다. 『먼 빛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책에서 빠져나와 현실적 자아를 만나게 된다. 여성으로서, 평범한 직업인으로서 세상에 먼저 틀을 세우고 포진한 사람들이 제 마음대로 구축해 놓은 기준에 어긋나는 순간, 그저 불순물 같은 존재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 여성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 보았을 정중하지만 무례하고, 부당한 폭력적인 현실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이 책은 바로 지금의 이야기다.
- 유경숙 (문화예술기획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