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물들지 않는다. 바다는 굳지도 않으며 풍화되지도 않는다. 전신주를 세우지 않으며 철로가 지나가게 하지 않으며, 나무가 뿌리를 내리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품 안에 진주조개를 품고 식인상어를 키우더라도 채송화 한 송이도 그 위에서는 피어나지 못한다.
칼에 허리를 찔려도 금세 아물고 군함이 지나가도 그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바다는 무엇에 의해서도 손상되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국경선을 긋지만 지도 위에서일 뿐이다. 무적함대를 삼키고도 트림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지배도 인정할 수 없는 바다는 무엇에 대한 자신의 군림君臨도 원치 않는다. 그는 항상 낮은 곳에 머물며 모든 것은 평등의 수평선 위에서 출발하기를 바란다.
바다는 기록을 비웃으며 역사를 삼킨다. 땅은 영웅들의 기념비로 더럽혀졌지만 아직 바다는 그런 것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다.
어부들은 그물을 던지지만 고기만 넘겨 줄 뿐 바다는 언제나 그물 밖에 서 있다.
바다는 두 손으로 뭉쳐도 뭉쳐지지 않고 잘라 내도 조그만 술잔 하나도 만들 수 없다. 그것은 무엇에 의해서도 구속되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도 규정되고 싶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 길들기를 거부하는 야성. 모든 것은 시작도 끝도 없으며 단지 하나의 과정임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바다는 언제나 뒤척이고 한숨짓고 몸부림친다. 상승과 추락, 승리와 패배, 욕망과 좌절, 그 두 사이를 일상의 우리처럼 반복한다. 밤마다 고민하는 도스토옙스키의 바다.
바다는 자신을 꾸미지 않는다. 가식과 허세로 장식하지 않으며 가면을 벗고 순수를 드러낸다.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인 것처럼 그 앞에서는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우리를 흥건히 적시는 끈끈한 체취, 햇빛에 번득이는 윤택한 피부, 그리고 언제나 출렁이는 풍만한 젖가슴, 한 번도 손상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또 그러할, 저 관능의 출렁임이 언제나 우리를 부른다.
육지가 끝나는 곳에서 바다는 시작한다. 바다는 또 다른 세계를 향한 길이요 가능성이다. 기록되기를 거부하는 태초의 말씀이요, 얼굴을 가린 종교다. 그의 깊고 푸른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우리는 우리의 눈물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것인지를 안다.
더는 갈 곳이 없는 도망자들이 찾아가고, 더는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찾아가고, 까닭 없이 가슴이 답답할 때 우리가 찾아가는 바다. 바다는 물 한 모금 주지 않고도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우리의 수척한 어깨를 그의 부드러운 어깨로 감싸 안는다.
삶에 대한 회의 앞에서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로 대답하고, 사랑에 대한 의문 앞에서 퍼렇게 멍든 가슴을 헤쳐 보이다가도 그리움 앞에서는 아득히 수평선으로 물러나 가느다랗게 실눈을 뜬다.
사람보다 먼저 취하고 사람보다 먼저 깨는, 슬픔의 눈물만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까지를 함께한 그는, 모든 만灣과 항구와 운하를 가득 채우고도 오히려 넘친다. 때로는 맹수처럼 포효하고 때로는 절벽 같은 해일이 되어 인간의 노작勞作들을 한순간에 쓸어버리지만, 그것은 악의에서라기보다 인간이 자랑하는 그런 것이 얼마나 공허하며 또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를 일깨워 주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설혹 바다가 인간이 이룬 모든 것들을 무화無化시켜 버린다 해도 우리는 성낼 것이 못 된다. 바다로부터 건져 올린 그 많은 전체에 비한다면 우리가 잃은 것이란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깊이도 무게도 잴 수 없는 하나의 물방울이면서 모든 물방울인 바다. 어린아이의 조그만 손에 의해서도 가끔 가볍게 들릴 줄 아는, 꿈과 환상을 함께한 동심의 바다. 그러나 영리한 바보들은 그것을 모른다.
여덟 살 때 내가 본 최초의 바다는 하나의 경이驚異였다. 스물이 되었을 때 바다는 어느새 늘 함께하고 싶은 갈망의 대상이 되어 있었다. 이제 노년의 고갯마루에서 지금 나는 다시 나의 바다를 본다. 바다는 그의 젊음으로 내 나이를 지우고 그의 커다란 눈물 속에 나의 작은 눈물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는 그의 품 안에 나의 존재마저 말없이 보듬는다.
--- 「바다」
영하의 아침 지하철역. 가파른 계단은 언제나 위태로운 과정. 한발 앞서 닫히는 문. 떠나 버리는 전동차의 무심한 뒷모습.
플랫폼 낡은 벤치에 가서 앉는다.
아, 엉덩이에 전해 오는 이 살가운 온기!
누가 남겨 놓은 것일까? 불이 환한 차창으로 내다보던 눈이 상큼한 그 여인일까? 전동차 문이 닫힐 때 구부정한 등을 보이고 승객들 속으로 사라진 내 또래의 그 남자일까?
“왕십리 행 열차가 죽전역을 출발했습니다.”
확성기의 날카로운 금속성. 순간 내 상상력에 금이 간다.
데시벨 단위로 증폭되는 철로의 진동음.
드디어 차가 들어온다.
그 사람의 체온을 내 체온으로 덥혀 놓고 서둘러 일어선다.
저녁 돌아오는 길. 건널목 앞에 이르는 순간 바뀌는 신호등. 잠시 기다린다. 가로수 밑에 눈이 보인다. 세수수건만 한 잔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눈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혹독했던 지난겨울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허리를 굽힌다. 마지막 겨울에 작별 인사를 건네는 마음으로 손을 내민다.
아, 이미 나 있는 다른 사람의 손자국!
누가 남겨 놓은 것일까? 신호등이 바뀔 때 아파트 단지 입구로 사라진 갈색 코트의 그 여인일까? 아니면 그 옆 편의점 문을 밀고 들어가던 카키색 점퍼를 입은 중키의 그 청년일까?
질주하는 자동차 굉음. 잠시 내 상상력이 구겨진다.
드디어 신호가 바뀐다.
차들이 멈춘다.
그 사람의 손자국 옆에 내 손자국을 남기고 서둘러 길을 건넌다.
--- 「인연이라 말해도 될까」
십여 년 전 봄, 서귀포에 허름한 창고가 딸린 귤밭 한 뙈기를 샀습니다. 백두산 기슭에서 태어난 내가 백두산 기슭에서 살 수 없는 몹쓸 세상 만나, 홧김에 한라산 기슭에 뼈를 묻으려고 작정한 것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내려와 사흘 동안 그달에 번 만큼의 돈으로 공사를 하고 올라갔습니다. 일곱 해 동안 여든여섯 번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고향을 새로 만드는 일이었으니까요.
담쌓기, 연못 파기, 나무 심기와 작업실 리모델링까지 모두 끝난 가을 어느 날, 몇 해를 두고 벼르던 자작나무를 창문 앞에 심었습니다. 물을 주고 지주대를 세우고 손을 털고 그리고 이만큼 물러나서 바라보았습니다. 상큼한 키에, 날렵한 잎새, 분 향기 묻어날 듯 하이얀 수피樹皮. 아, 영락없는 개마고원 태생, 서글서글한 내 고향 북관녀北關女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순여덟 해 전 흥남철수 때, 데리고 올 수 없어 울며 떼어놓고 온 고향이, 거기 와 있었습니다. 내가 못 가니 날 찾아 제가 와 있었습니다. 열다섯 그때 그 모습으로 와 있었습니다.
--- 「고향이 거기 와 있었네」
해마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철새들. 무얼 먹고 허기를 달래는지, 추위는 또 어찌 견뎌 내는지 늘 걱정이 되면서도 겉보리 한 줌, 식빵 한 조각 나누어 준 적이 없다.
아파트 단지와 단지 사이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나는 매일 아침 한가롭게 산책이나 하지만, 냄새 나는 2급수에서 새들은 힘겹게 자맥질을 하고 있었다. 잡히는 것 하나 없이. 쓸개를 핥듯 갯바닥을 훑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열받으면 수면을 박차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분노만큼의 높이었을까? 쇠오리는 쇠오리끼리, 꼬방오리는 꼬방오리끼리, 흰뺨검둥오리는 또 흰뺨검둥오리끼리, 듣기 좀 거북한 소리를 지르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편대 비행을 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몇 군데 요절을 내고 말 요량이었을까? 아니면 바닥부터 차곡차곡 적의를 다지고 있었을까?
드디어 소한 대한을 넘기고, 입춘 곡우도 그렇게 넘기고, 봄비도 내리고, 갯버들 가지마다 막 연두색 봄이 움트기 시작할 무렵,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을 그 무렵, 새들은 겨우내 수척해진 몸을 추스르며 솔가해서 떠났다. 모래톱에 희미한 발자국만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 버리고 말았다. 창백한 하늘 한 자락을 찢으며 날아가던 한 무리의 철새들 울음소리.
“끼이륵, 끼륵.”
“끼이륵, 끼륵.”
저희끼리 주고받던 쇠된 소리, 그런데 내 귀에는 그 금속성이 왜 자꾸 결기에 찬 무슨 다짐같이 들렸을까?
“다시 오나 봐라.”
“다시 오나 봐라.”
멀리 북녘 하늘을 향해 소실점으로 사라지던 철새들의 아득한 뒷모습. 미안했다. 귀한 손님을 찬 방에서 재워 보낸 날 아침처럼 미안했다.
--- 「철새 떠나던 날 아침」
여남은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어느 날 마루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 아버지 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담장 너머로 내 또래 아이가 토끼 귀를 잡고 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토끼가 불쌍했습니다. 아버지께 물었습니다.
“아버지, 토끼는 왜 귀를 잡지요?”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꼼짝 못 하니까.”
순간 아버지 곁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습니다. 놈은 어디를 잡아야 꼼짝 못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아버지, 고양이는 어디를 잡지요?”
“목덜미를 잡지.”
나는 쓰다듬는 척하다가 목덜미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놈은 발톱을 세워 할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으로 오다가 두엄을 헤집고 있는 닭이 눈에 띄었습니다. 닭은 어디를 잡아야 꼼짝 못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저녁 밥상에서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닭은 어딜 잡지요?”
“날개를 잡지.”
다음 날 두엄으로 가서 한 놈을 덮쳤습니다. 그리고 날개를 잡았습니다. 두 발을 버둥거리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나를 쫄 수는 없었습니다. 뿌듯했습니다.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자랑했습니다.
아버지는 칭찬 대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지나가는 말투로 툭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아들아, 사람은 어디를 잡지?”
지금까지는 내가 묻고 아버지가 대답하는 식이었는데, 뜻밖이었습니다. 잠시 지체하다가 대답했습니다.
“음, 팔이요. 아니, 다리요.”
아버진 가타부타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언젠가 길거리에서 머리카락을 잡고 싸우던 두 아주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아, 머리카락이요, 머리카락!”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번에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반응을 보인 건 얼마쯤 뜸을 들이고 나서였습니다.
“아들아, 사람은 그런 것으로 잡을 수 없단다.”
실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아버지가 가르쳐 주실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웃에 사는 아버지 친구분이 찾아왔습니다. 두 분은 무슨 이야긴가 긴히 나누더니 함께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대화는 도중에 끊기고 말았습니다.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1950년 6월 전쟁이 터지고, 11월 초순 어느 날 아버지 곁을 떠나 함흥 큰누님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흥남철수 때 누님과 둘이 월남했습니다. 봄이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 다짐하면서.
부산에 도착한 것은 다음 해 1월 초순이었습니다. 낯설기만 한 남한 땅. 넘어지기도 하고 깨지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믿어 보기도 하고 속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낸 긴 세월. 아버지의 질문 같은 건 까마득히 잊은 지 오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귀가하던 길이었습니다. 전철에서 내려 출구가 환하게 보이는 층계참에 발을 막 디디려던 순간,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은 팔로도, 다리로도 그리고 머리카락으로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오직 가슴으로밖에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던 해 가을이었습니다. 한참 늦어진 대답. 하지만 그날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도 알 것 같았습니다. 남에게서 배운 지식이란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지혜는 무궁한 것이라, 살아가면서 천천히 깨우치기를 바라셨던 게지요.
--- 「아버지의 우파니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