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성당에 가라고 하셨다
나의 기도는 몇 개의 골목을 지나
공중 세탁실로 갔다
동전을 넣고 죄를 씻을 수 있다면
파이프 오르간의 음계마다 감춰둔 비밀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요
빨래에 묻은 죄의 무게는 의심하지 않았다
기도는 삼십 분이면 충분했다
팔다리가 뒤엉키고 한꺼번에 회오리치며 돌았다
옷을 입은 채로 구제받을까
스테인드글라스로 들어온 빛에 젖은 몸이 비쳤다
소용돌이 속으로 춤사위도 보였다
성가대 음역이 낮은 베이스로 굴렀다
가벼워도 죄가 된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지만
우린 너무 많이 알면서도
모르는 척을 했다
이 계절을 건너려면 몇 개의 동전이 필요할까
시계가 돌아가는 동안 나는
창밖의 어떤 잘못을 하는 사람을 몰래 훔쳐봤다
기도가 십자가에 닿을까 걱정되었다
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다
기도 전에 짓는 죄와
기도 후에 짓는 죄 중 어떤 게 더 클까
어머니는 매일매일 기도했다
--- 「코인 세탁실」 전문
밤은 발굴되지 않은 누군가의 뼈
언제든 살아날 수 있다는 듯
숨겨진 수많은 눈들이
다족류처럼 손등을 기어가듯
여기와 거기 사이에서
죄도 없이 주뼛거린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나는 나를 증명하려고 하고
나를 닮지 않은 패스포트 속 사진은
나보다 명징하다
한 세계를 건너는 데는 다른 한 사람의 말이 필요하다
나의 증명은 내가 아닌 것들로만 시작되고 끝난다
내가 없는 출구 너머의 세계는 환하고
나는 자꾸만 발목이 어두워져
이젠 되돌아갈 수 없는 먼 불빛을 바라본다
손바닥을 펼치면 낯선 골목길이 지문으로 찍힌다
손바닥을 오므리면 신념이 배가 된다
나는 공손하고 너는 지시한다
나는 목적지가 과정이고 너는 과정이 목적이라서
나는 시작점이고 너는 경유지다 나는 활자로 대변되고
너는 센서에 주목한다 같은 자리 다른 패턴
환승에는 관심이 없다 당신은 왜 여기에 오셨습니까
여행이란 말은 떠오르지 않고 사랑이란 예감만 달라붙는다
너는 이국 물고기를 풀어놓는다는 생각으로 진중하고
나는 패스포트 속으로 들어간다
세상으로 나가는 관문에서 자기소개서는 주머니 속에서 더 얇아지고
하릴없이 증명하며 살아야 하는 심사에서
늘 배경이 주인이다
어느 먼 곳은 이제 밤이 되려 한다
먼 곳은 지금 내게 가장 가까운 곳이다
나는 오래된 심장을 숨긴 채
이방의 땅으로 실종된다
--- 「입국심사」 전문
나는 의자를 사랑하고
의자는 나를 끝없이 의심한다
의심의 문을 열면 의자는 없고
없는 의자는 수없이 많고
사랑의 문을 열면 나는 없다
없는 나도 수없이 많다
열린 문은 다시 열리지 않듯
닫힌 문만 열어볼 수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도 또 문이 나오고 계속 문이 나와
의심은 그런 것
사랑도 그런 것
닫아도 닫아도 망가진 문이 자꾸 열리는 기분
파도처럼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을 키우는 기분
의자에 앉는다
모르는 이름들과 싸운다
나는 질 수도 있다
질 것이다
지자
그래도 의자처럼 울지는 말아야 한다
의자는 거기 있고
여기 있고
나는 의자에 앉아서
의자를 찾고 있다
없는 의자를 찾으면 의자가 보일지도 모른다
--- 「의자 게임」 전문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표를 사지 않았다, 표를 끊지 않았으므로 기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 천천히 가는 기차 밖에서 후각으로 채집한 풀향, 내 안을 구석구석 돌며 생각을 무성하게 했다, 기차에 타지 않았으므로 갈참나무 자작나무 노송이 차갑게 미끄러졌다, 지금까지의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이 풍경을 밀어낼 때 나는 나를 자꾸 잊어버리고 싶었다, 짧은 환호 긴 여운을 구깃구깃 구겨서 던져버리면 좋겠다, 그곳에 소금호수라도 있으면 좋겠다, 소금보다 더 짜면 좋겠다, 비라도 내리면 좋겠다, 빗방울의 옆얼굴을 보며 나는 가만히 비켜 가도 좋겠다. 혹은 빗방울을 따라가서 절벽을 만나면 좋겠다, 아득한 높이를 사랑하게 되면 좋겠다. 절벽 위까지 말갛게 씻은 산책길이 걸어오면 좋겠다, 훌훌 털어버리고 나를 잠시 전망 좋은 절벽 끝에 세워두면 좋겠다, 나는 나를 지웠으면 좋겠다, 물안개에 젖은 나를 안아줘도 슬퍼도 괜찮을 것이다 아니 좋겠다, 어디쯤 아무도 없는 찻집에서 들국화 향이 물씬 풍기는 찻물이 막 끓어오르면 좋겠다, 나 아닌 내가 걸어와 하나뿐인 의자에 앉았으면,
--- 「그러면 좋겠다」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