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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33*195*20mm
ISBN13 9791160351545
ISBN10 1160351546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언제나 얼굴은 감추고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는 이가 있다

그는 나를 밑줄 그으며 읽고
주석까지 달아 사랑을 진열한다

이맘때 나주 홍어를 주문했는데
검색 도중 홍어 광고가 물씬거렸다

그제는 동해 산오징어 특가 판매
아침에 잡은 홍게 당일 배송도 펄떡였다

작년에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삭제해 버린
속옷도 모델이 대신 입고 웃고 있었다

주소지를 적지 않고 주문한 것
나를 남으로 바꿔 주문한 것까지

선착순 할인 판매에
감동이 일시불로 지출된다

거래는 사랑의 징표
그의 품에 나를 접속하는 것

그는 접속 서툰 내 마음 조율하며
일정표대로 나를 강제로 사랑한다
--- p.16 「알고리즘」중에서

그대 품을 벗어나려고 이름 없는 휴양림에 몸을 숨긴 날, 위성항법장치는 내 행방을 쉬지 않고 뒤졌고, 스마트폰도 미행하며 실시간 위치와 내밀한 마음마저 전송했다.

가슴 깊이 꼭꼭 접어 숨겨둔, 거리에서 훔친 몇 개의 사랑도 들켜 외롭다는 허위자백이 안절부절못해 하얗게 물들어간다.

그날 세상 처음으로 하얀 나뭇잎을 만났다. 다가서니 온통 하얀 꽃이었지만, 다시 보니 곤충을 유인하는 꽃받침이었지만, 지상에 하나뿐인 하얀 나뭇잎으로 다짐했다.

하얀 잎의 나무는 허상이라고 세상이 비웃거나 비난할지라도 무작정 우기겠다, 내가 허상이 될지라도. 늘 나는 나를 분실하고 싶었으니까.

나는 허상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안전 안내 문자가 휴양림 소재 시청에서 날아왔다. 나를 너무 편애하여 잠시도 허술하지 않는 그대. 또 들키지 않을 허위자백으로 버텨야 한다.

그렇듯이 하얀 잎의 나무도 그 자리에서 버텨주길 바란다. 사랑은 그대를 위해 나를 견고하게 버티는 것, 버티면서 스며드는 것.

내 몫마저 버거운 내 마음 변함없이 감당해주길, 오래 하얗게 유인하길, 세상을 버티는 그대 사랑에게 바란다.
--- p.44 「산딸나무 아래에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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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도의 편리함을 추구하며 모든 상거래가 손쉽게 이뤄지는 이 디지털 유토피아에서 사고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심지어는 시간조차도 소비되어 “오늘의 단종으로 내일이 출시”(「실시간 당신」)된다고 한다. 엄청난 속도로 많은 물량이 순식간에 거래되는 디지털 시대의 소비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개념마저 삭제해 버렸다. 과거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를 향한 “꿈을 재고 없이 소비해야” 할 정도다. 오직 현재만 존재하는 “실시간 소비를 위해”서다. 그러니 우리 자신도 “한 번 입고 버리는”, “우리 애용품인 실시간 당신”에 불과한 것이라 한다.
- 권순긍 (세명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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