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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수프

아빠 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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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60*230*20mm
ISBN13 9791198773302
ISBN10 1198773308
KC인증 kc마크 인증유형 : 적합성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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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람이 불어와 자작나무가 흔들렸다. 검은 나무 뒤에 있는 거인이 두 팔을 벌리고 덮칠 거 같았다. 예은이는 겁이 나 후다닥 작은 숲에서 나왔다. 벌써 밤이 되었다.
푸드덕, 새 한 마리가 예은이의 머리를 휙 스치고 지나갔다.
“엄마야!”
예은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꼬마야.”
탁하고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싹 소름이 돋아 주변을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작은 숲에서 나와 집을 향해 걸어가는데 ‘저벅, 저벅’ 누가 뒤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예은이는 잔뜩 긴장해서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겨우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음을 멈추자 뒤따라오던 소리가 안 들렸다. 머리카락이 솟구치고 등골이 오싹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누군가 예은이의 어깨를 툭 치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예은이는 겁이 나 고개를 푹 숙였다.
“안 타니?”
날카로운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렸다.
--- pp.8-10

산길을 반쯤 내려왔다. 예은이는 뚱뚱한 웰시코기의 목줄을 잡고 가는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하얀 긴 머리를 뒤로 넘겨 묶었고, 등에는 큰 검은 배낭을 메고 있었다. 주름진 얼굴은 양파처럼 동그랗고, 코는 납작했다. 버릇인지 큰 눈을 계속 끔벅거렸다.
“휙!”
할머니가 휘파람을 불었다. 앵무새가 포로로 날아 할머니의 어깨 위에 사뿐 앉았다. 할머니가 앵무새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앵무새 머리를 긁어 주는 할머니의 손가락이 여섯 개였다. 할머니는 예은이를 지나쳐 빠른 걸음으로 무덤이 있다고 소문난 곳으로 올라갔다. 우리 동네 마녀가 산다는 주영이의 말이 번뜩 떠올랐다. 털이 빠진 회색 앵무새, 뚱뚱한 웰시코기, 손가락이 여섯 개인 할머니의 퍼즐이 맞춰지며, 할머니가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예은이는 겁이 나서 아파트 광장까지 허겁지겁 달려왔다. 푸른 벚나무에 기대어 숨을 헐떡거렸다.
--- pp.21-24

작은 숲에서 주영이를 만날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작은 숲에 갔는데 주영이가 없었다. 자작나무에 기대어 주영이를 기다렸다. 바람이 불자 벚나무, 느티나무, 자작나무가 푸른빛으로 춤을 추었다.
한참 만에 주영이가 핼쑥한 얼굴로 나타났다. 어딘가 아픈 것 같았다. 여름인데 긴소매 옷을 입은 비쩍 마른 몸이 더 말라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
예은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가 상상도 못 할 많은 일이 있었지.”
주영이가 핏기 없는 얼굴로 말했다.
--- p.66

“최고 맛있는 요리는 뭐였어?”
예은이가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아빠가 만들어 준 수프였지. 엄마와 내가 떠나기 전날 밤이었어. 식탁에는 노란 램프 불을 켰어. 엄마는 힘들다고 소파에 누워 있었고, 나는 아빠와 앞치마를 입고, 수프를 만드는 아빠를 도와줬어.”
주영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글보글 수프가 끓을 때, 폴폴 기가 막힌 냄새가 났어. 아빠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야자수 그림이 있는 하얀 접시에 수프를 담아 식탁에 놓았지. 엄마도 수프 냄새에 홀린 듯 식탁으로 와서 수프를 먹으며 빙그레 웃었어. 난 수프를 한입 먹고 눈을 감고 피식 웃었지. 망고보다 부드러운 달콤한 맛에 땅콩버터처럼 고소했어. 아빠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더니, 아빠가 웃으며 내 볼을 만졌어. 그날 밤 창문으로 본 밤하늘은 보석을 박아놓은 듯 별빛이 반짝였어. 아빠, 엄마와 모란꽃처럼 웃으며 가족사진도 찍었어. 그게 나의 보물 1호야.”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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