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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정전

: 최은미 소설집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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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362g | 123*192*23mm
ISBN13 9788932027951
ISBN10 8932027951

중고도서 소개

사용 흔적 많이 있으나, 손상 없는 상품
  •  판매자 :   나예승   평점4점
  •  특이사항 : 목련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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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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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도 나도 실수한 게 하나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물건이 아니라 아버지의 시신을 불태웠어야 했다. 아버지를 덮고 있던 그 사상균(絲狀菌)들은 아버지의 관을 뚫고 나와 땅에 뿌리를 내린 게 분명했다. 어쩌면 내가 죽은 후까지도 이 지구에서 기세 좋게 살아갈 거였다. 선산을 볼 때마다 내 눈에는 보였다. 아버지를 먹어치우고 땅의 자양분을 받은 균사체가 선산을 점령한 채 나를 비웃는 것을. --- p. 41

유리는 무슨 일 때문인지 화가 치밀었고 탁상달력으로 라라의 머리를 두 번 후려쳤습니다. 라라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유리는 우는 라라를 안아주었습니다. 유리는 울음이 잦아든 라라에게 밥을 먹여주었습니다. 자신한테 맞아서 울고, 자신이 달래서 울음을 그치고, 결국에는 자신이 주는 밥을 받아먹는 라라를 보자 유리는 라라가 진정 자기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의 전율을 유리는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p. 70

참을 수 없이 텁텁한 공기가 모두를 둘러싸고 있다. 백중이 다가오면 마을을 덮치는 공기. 무덥고도 무거운 공기. 이제 백중날엔 김이 올라오는 백설기도 잘 익은 과일도 없다. 목소리가 좋은 이야기승도 없고 재를 올리는 스님도 없다. 모두가 떠났다. 불상 위로 거미가 오갈 뿐이다. 느닷없이 죽은 아이와 아내와 남편과 노모, 그들을 위한 추모가 있을 뿐이다. 한여름빛도 보름에 뜨는 달도 이 무거운 공기를 걷어가지 못한다. --- p. 97

부채꼴 광장에는 여자들이 앉아 있었다. 중년 여자는 그들이 조금 이상한 여자들이라고 생각했다. 레깅스 여자는 집에 들어가서 편히 자지 않고 왜 공원에 나와서 자는지 이해가 안 됐다. 아이 엄마는 얼굴에 이미 우울증 중증 상태가 나타나 있었다. 바깥에 꼬박꼬박 나오는 걸 보면 어떻게든 버텨보려는 생각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또래 아이들이 나오는 오후가 되면 여자는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나란히 앉아 있는 여자 노인 셋은 한 계절씩 돌아가면서 서로를 따돌리는 사이였다. 그러면서도 늘 셋이 같이 어울렸다.--- p. 145~46

주방에는 드넓은 도마가 있었어. 요리사가 옥졸에게 아기를 받아 도마 위에 올리는 게 보였다. 요리사는 구슬땀을 흘리며 아기의 배를 가르더니 내장을 다 긁어냈어. 들통에 받아놓은 술냄새가 나리한테까지 번져왔지. 요리사가 손질을 끝낸 아기를 술통에 담갔어. 한참이 지나자 아기의 똥구멍에서 태반 찌꺼기와 남은 분비물들이 빠져나왔지. 요리사는 흐르는 물에 아기를 깨끗이 헹구고는 아기의 배 속에 찹쌀 한 줌, 수삼 반 뿌리, 당귀와 곽향, 생강과 육쪽마늘 반 통을 넣고 다시 꿰맸다. 양팔과 양다리를 모아 묶고는 펄펄 끓는 육수 속에 아기를 넣었지. 하리티의 주방엔 그런 육수통 수십 개가 끓고 있었어.--- p. 177

사고자들은 사고의 순간을 잘 설명하지 못했다. 제욱은 노인의 말이 걸려 혹시 시야 장애가 있지는 않았는지 물었지만 사고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갑자기 중심을 잃었다고만 했다. 그냥 갑자기, 순식간에 넘어졌다고. 잡생각이 떠올라 집중도가 떨어진 건 아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쓸모 있는 질문은 아닌 듯했다. 잠깐 사이에도 수만 가지 생각이 스쳐 가는 게 사람 머릿속이었다. 그걸 알아채고 다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했다 --- p. 200

강상기는 딸애가 아내 밑에서 고통받았다는 것을 안다. 딸애는 결혼을 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았다. 피임 실패라는 불운이 그 애를 덮치지 않는 한 딸애는 아마도 영원히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강상기는 그것이 아내 때문일지 자신 때문일지를 생각해보다가 자신 때문일 거라고 결론을 내리며 죄책감에 잠겨드는 날이 많았다.--- p. 240

“내 속옷을요…… 세탁기에요…… 양말이랑 같이 넣고 빱니다. 애들이랑 자기 속옷은 꼭 따로 돌리면서 말입니다. 내 속옷만…… 양말이랑 같이 돌려요. 내가 더럽습니까?”
홍이 어정쩡하게 웃자 현이 무좀부터 치료하라고 타박을 했다. 이런 자리 때마다 반복되는 모습이었다.--- p. 274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좋은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무조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곳에서의 3주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미래가 달라질 것입니다. 금기 사항을 철저히 따르십시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철칙입니다.”
--- 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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