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교사의 순직을 기점으로 여러 교사들이 고백한 많은 사례들은 교사도 감정 노동자임을 밝히는 내용들이 많았다. 2023 년 교원단체총연합회가 3만 2,000명의 교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9퍼센트가 자신이 감정 노동자라고 답을 했다. 교사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 대상은 학부모라고 답한 교사는 66.1퍼센트에 이르렀고, ‘학생’이라고 응답한 교사는 25.3 퍼센트로 뒤를 이었다. 그 다음은 관리자와 교육 행정 기관, 그리고 동료 교사 순이었다. 가장 힘든 업무도 학부모와의 대화, 학생 지도 등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억압된 감정이 쌓이고, 또 대응과 지도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 p.37~38
미국의 정신 분석가 마이클 아이건Michael Eigen은 『독이 든 양 분』이라는 책에서 고통을 부정하고 무조건 앞으로 나아가는 행동 양식을 일컬어 ‘자기 식인 행위’라고 명명했다. 고통을 외면하는 것이 스스로를 파먹는 행위라는 뜻에서였다. 때때로 우리는 힘듦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힘든 현실에 맞서 싸우겠다며 앞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을 보고 강인하다고 부러워 하는데, 이것은 대단한 착각이다. ‘내겐 힘든 일이야. 나는 이런 점이 힘들어’라고 인정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으면 더욱 병들고 나약한 사람이 되기 쉽다.
--- p.44~45
슈퍼 맘에 이어 ‘슈퍼 티처super teacher’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교사도 초인적 능력을 발휘하는 슈퍼 맘 같은 슈퍼 티처가 되려 한다는 것이다. 슈퍼 티처와 비슷한 개념으로 어떤 고통에도 흔들리지 않고 살인적인 열정으로 헌신하는 ‘아이언 티처iron teacher’가 있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에 다다를 때까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불태우는 유형이다. 그 덕분에 타인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큰 영향력을 갖 기도 한다. 하지만 슈퍼 티처와 아이언 티처의 불꽃같은 열정은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타들어 가게 함으로써 삶의 목표가 아닌 죽음에 더 가깝게 만든다. 우리 주변에서도 소명 의식에 집착한 나머지 너무 많은 일에 매달리는 교사들을 종종 볼 수 있다. 한편 슈퍼 티처의 반대편에는 ‘매뉴얼 티처manual teacher’와 ‘슈링 큰 티처shrinken teacher’가 있다. 이들은 최소한의 가이드를 따르면서 꼭 해야 하는 일만 하는 교사를 말하며, 학교 안에서 한 방울의 열 정조차 불태우지 않는다. 슈퍼 티처와 아이언 티처의 살인적인 열정의 폐해와 마찬가지로, 의욕이 식어 버린 매뉴얼 티처와 슈링큰 티처도 학교라는 공간에서는 죽어지내는 존재나 다름없다. 이렇듯 학교 안에서 교사는 힘든 현실에 자신을 적응시키거나 보호하기 위해 과잉 전략 혹은 과소 전략을 선택한다. 그리고 때로 과소 전략 교사와 과잉 전략 교사는 서로를 비난하고 대립하며 더욱 힘든 방식으로 살아간다.
--- p.46~47
그렇다면 교사를 무력하게 만드는 스몰 트라우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주변에서 한마디씩 던지는 비아냥거림을 들 수 있다. 동료 교사들이 무심코 하는 말, 관리자들이 혼내는 말, 학부모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않는 말, 아이들이 막무가내로 부리는 투정 등이 교사에게는 다 스몰 트라우마가 되어 상처를 남긴다. 교사가 힘들고 외롭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역시 스몰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동료 교사도 몰라주고, 관리자도 몰라주고, 아이들도 몰라주고, 학부모도 몰라주고, 사회도 몰라준다. 힘든 교사들의 스몰 트라우마는 마침내 집단 트라우마로 옮겨 간다. 교사의 집단 트라우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발현될 위험이 크다. 그러므로 교사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이해하며, 트라우마를 치유해 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동료 교사가 어째서 힘들어하고, 무엇에 놀랐고, 어떤 것에 공포를 느끼는지 알아주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 p.54
교사는 혼자 지내기 용이한 조건을 갖고 있어서 더 위험하다. 지금 당장 옆자리에 앉은 교사와 어떻게 하면 행복을 발견하고, 만들고, 나눌 수 있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수업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교육 제도에 대해 토의하고, 학교 문화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교사가 혼자 있지 않는 것, 교사들이 함께하는 것이 교사를 행복하게 하고, 또 치유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본능을 충족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의 본능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 p.57
아이들로부터 받는 적당한 인정이 교사를 충족시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인정이 추종이나 애걸이 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괴감이 생겨난다. 교사의 비애 또한 자신이 인정받는 과정에 대한 갈등이나 온전한 내가 사라지고 타인을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공허함에서 비롯한다. 자기 인정에서 시작해 상호 인정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 서로를 인정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은 우리에게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되지만, 인정받기 위해 벌이는 애달픈 투쟁은 하면 할수록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 오직 타인이 내려 주는 인정, 더 높은 인정을 향한 열망에 눈이 멀면 본말이 전도되어 더욱 불안정한 늪에 빠지기 때문이다.
--- p.75
파커 파머는 교사가 아이들이 느끼는 공포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아이들의 공포는 결국 교사에게도 전이되는데, 이때 스스로 치유가 이루어진 교사라면 그 공포를 아이들에게 안정감으로 되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교사 자신이 치유되어 있지 않으면 아이들에게서 전이된 공포를 더욱 키움으로써 교사도 같이 뇌사 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렇다면 다시 앞의 표를 보며 진단과 처방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표를 보면 많은 교사가 아이들을 무기력하다고 진단했는데, 그렇다면 교사는 아이들에게 기력을 불어넣어 주는 쪽으로 처방의 방향을 잡아야 옳을 것이다. 산만한 아이들에게는 에너지를 제대로 발산시키도록 도와주고, 쉽게 분노하는 아이들에게는 분노를 잘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 수업을 더 늘리고 시험을 자주 치르게 하는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있지는 않은지도 자문해 보아야 한다. 예컨대 ‘아이들이 매정하게 구니까 나도 정을 안 주 겠다’고 결심한다면 진단에 따른 올바른 처방이 아니다.
--- p.109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교사 자신에게도 줄 것이 있어야 한다. 교사는 삶이 즐겁지 않으면서 “선생님은 즐겁지 않지만 너희는 삶이 즐거웠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남에게 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파머 파커의 이론을 빌리자면 ‘소진한 교사가 뇌사 상태에 빠진 아이 들을 깨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아이 들한테 줄 무언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 교사에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