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에게 알고 있는 건축가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하면 두세 명 정도의이름은 가볍게 건넨다. 덧붙여 그 건축가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도 상당히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일본 국도 여행을 할 때, 지도만으로 그것도 오른쪽 핸들차로 운전해 목적한 건축가의 작품을 찾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항상 나를 어려움에서 도와주는 것은 그 지방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톨게이트나 휴게소 같은 곳에 들러서 건축물의 위치를 물어보면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그 건축가가 최근에 언제 왔다갔고 악수도 하고 사인도 받았다는 자랑까지 곁들이면서. 당시 건축가가 대중 곁에 그렇게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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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한창 몰입하던 대학교 3학년, 주변 친구들은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전부 뭔가의 목표를 정하고 대학 생활들을 하고 있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음악과 건축, 거기에 군 입대 문제까지 함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방학 때 혼자서 전국일주를 하며 마음 고생도 꽤 했는데, 이 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다.
“네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잘 구별해라. 먼저 잘할 수 있는 것을 해놓고 난 후 하고 싶은 것을 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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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에 대한 시각은 그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변화한다. 현재의 도시가 비록 자동차들로 꽉 막혀 있고 복잡하며, 공기조차 좋지 않지만 이러한 도시 안에서도 아름다운 주거는 분명히 존재한다. 영화 속 도시와 집을 보다보면 이 시대 도시를 즐겁게 즐기면서, 멋지게 사는 방법을 가끔씩 가르쳐 주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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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 후가 문제이다. 클라이언트가 충분히 작품을 보고 선정하는 것은 좋으나 디자인을 도둑맞는 것이다. 선택되지 못한 2등을 하고 난 후 한참 있다 보면 선택되었던 1등의 작품은 없어지고 나의 제출안과 비슷한 것이 시중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럴 때는 정말 마음이 아프다. 내가 용역비를 못 받은 것이 아까운 것이 아니고 건축가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한국에서는 무조건 클라이언트가 왕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경쟁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나 말고도 다른 곳에 일을 똑같이 의뢰한 것을 뒤늦게 알고 포기했던 적이 몇 번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 욕도 많이 한다. 그렇지만 나는 클라이언트가 진정 나의 디자인이 필요하면 다시 부탁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이것의 원동력이 바로 브랜드 파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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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을 때 많은 생각들이 정리되곤 한다. 그래서 사실 혼자서 타는 차 안이 좋고 비행기 안이 더욱 좋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보는 책이나 영화는 내 머리에서 오랫동안 맴돈다. 혼자 있는 훈련을 해보자. 보이지 않는 세상이 보일 것이다. 같이 퇴근하지 말고, 같이 하교하지 말고, 같이 식사하지 말고, 가끔 혼자서 뭔가를 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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