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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밤 까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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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03쪽 | 128*205*20mm
ISBN13 9788932006659
ISBN10 8932006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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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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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산 채로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한번 더 벗겨내고
그리고 새하얀 알몸으로 자네에게 가네
이 사람아
세상이 나를 제아무리 깊게 벗겨놓아도
결코 쪽밤은 아니라네
그곳에서 돌아온 나는
깜깜 어둠 속에서도 알밤인 나는
자네 입술에서 다시 한번
밤꽃 시절에 흐르던 눈물이 될 것이네
--- p.16
외출을 한다
바닥난 희망을 찾으려고
말뿐인 진실이면 어때?
끼리끼리 모여서 차를 마신다
서로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눈치야 채지만
더 이상 짜내어 내줄 것이 없다
헤어져 돌아서는 길
비라도 내린다면 인사할 수 있으련만
슬픔 한 톨만은 아끼려고 그냥 차에 오른다
안에도 밖에도 없는 너는 누구인가?
누군가의 절망이든 희망이든 꺼내어
허기를 달래보는 6월의 찻집
우리들이 아직 우리일 때 부디
쏟아져다오 소나기여
공짜로 뿌려지는 희망이여
--- p.83
예전에도 우리는
나무의 나뭇잎이었을까
가을의 목덜미에 잎잎이 매달려
눈부시게 흔들리는 한세상
멀미하다 쓰러져 누운
누군가의 생애 같은 잎새들
생각마저 꽁꽁 얼어버리면 우리는
또다시 순결한 잎이 될 수 있을까
너와 나 세상살이는 때때로
혼자서만 손을 흔들게 하지만
바퀴도 날개도
보호색도 없는 우리는
우리 닮은 잡목의 몸체를 하염없이
맨살로 타고 오르는 담쟁이나
칡덩굴이 되어 흥건히 젖어서 살지라도
우리가 우리 이름을 우리 몸 속에
쓸쓸히 새기며 살지라도
세상 나뭇잎으로 남아 우리는
--- p.35
열여섯엔 안 보이는 곳에서도 희고 쑥쓰러웠지
스무 살엔 솟아오르는 탄력으로 젖살가지 삐죽 솟아버렸지
지금의 나는 고층 아파트에서 시인의
나무 끝에서 공중의 흙을 더듬어내리는 무수한
발가락뿐 제 뿌리로 제 뿌리를 껴안고 있을 뿐

다시, 쑥쓰러움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잠결에도
무수히 베개 속 혹은 이불 속 깊은 곳에
뿌리 머리를 뿌리 손을 쑤셔넣는다 마른 땅을
후벼파듯이 쑥밭 같은 영혼 깊숙이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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