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만든 이후 항상 ‘내년에는’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내년에는 포기가 많이 커질 거야, 내년에는 땅이 더 좋아질 거야, 내년에는 담장을 넘길 만큼 줄기를 뻗을 거야! 그렇게 말한 ‘내년’이 몇 번 지나고 나면 훌쩍 늙어 있을 텐데. 그래도 내년에는 더 풍성해진 정원을 꿈꾸고, 더 우람해진 나무를 꿈꾸고,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피어난 꽃들을 만나는 순간을 꿈꾼다.
정원에 식물을 식재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흙을 만드는 일이다. 잡풀을 모두 걷어 내고, 배수를 개선하고, 유기물 퇴비를 섞어서 흙을 만들면 정원 일의 90퍼센트가 끝나는 셈이다. 정원 조성 계획도 없고, 경계도 없고, 흙에 관한 준비도 없이 일단 심는 일부터 시작하면 분명 갈아엎고 싶은 정원이 된다. 협박이 아니라 불행하게도 많은 정원 주인의 경우가 이렇다. 맛집에서 대기표를 받고 기다리는 것처럼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뿌리가 땅에 온전히 적응해서 겨울을 넘긴 식물들은 잘 숙성된 막걸리처럼 제대로 된 ‘맛’이 난다. 꽃도 풍성하고, 줄기도 탄탄하고, 성장하는 속도도 빠르다. 가능하면 가을에 식물들을 교체하는 걸로 작전을 바꾸었다. 그래서 정원은 가을에 시작하기로 했다. 점 찍어 둔 식물도 심고, 포기할 식물은 뽑아내고, 나누어 줄 식물도 가을에 분주를 한다. 나무 전지도 하고 풀도 뽑아 준다. 가을 풀매기는 돌아서기가 무섭게 또 풀이 왕성하게 올라오는 여름과는 다르다. 이렇게 하면 내년 봄이 수월해진다. 봄이 수월해지면 여름을 준비할 여유가 생기고, 여름을 잘 넘기면 성숙하게 나이 든 품위 있는 가을 정원을 맞이할 수가 있다.
다행스러운 건 정원의 풀이나 나무는 거름을 전혀 주지 않아도 죽지 않는다. 양분을 주는 일은 좀 더 많은 생산량을 위해, 그리고 식물을 좀 더 빠르고 풍성하게 키우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분보다는 푹신한 흙을 만드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흙이 좋으면 정원 일도 수월하다. 물도 두 번 줄 걸 한 번만 주어도 되고, 심는 일도 뽑는 일도 수월하다. 흙이 좋으면 풀 뽑는 일도 수월해진다. 토양이 좋으면 어떤 식물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지 않아도 잘 자란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정원은 비료보다는 퇴비와 친하게 지내는 게 ‘남는 장사’다.
식물에게 문제가 생기면 ‘얘는 뭐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식물의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해결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원산지를 고민해 보고, 기후와 토양, 작년의 상황과 다른 점 등 새로운 시각,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를 정원에서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식물이 말을 안 해 주니 내가 궁리해서 알아내는 수밖에. 지금 거름을 주어야 하는지, 물을 주어야 하는지, 보온이 필요한지 등의 여부는 전적으로 식물의 상태에 달려 있으니까!
인생을 살면서 진정으로 감격스럽고, 행복하고, 기쁨에 겨웠을 때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정원은 예상치 못했던 기쁨과 환희, 희망찬 미래로 가득 차 있다. 찬란한 여름을 보내고 차차 퇴색해 가는 단풍의 쓸쓸함에 빠질 새도 없이 다시 튤립, 알리움, 수선화를 심으면서 내년 봄의 감동을 꿈꾼다. 정원에는 항상 미래와 희망과 기쁨과 설렘이 있다. 인생에 이만한 선물이 또 있을까! 분에 넘치는 이런 선물을 받는 나는 정원의 가장 큰 수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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