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8월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카프카는 그의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였다―오후에 수영.”(1914년 8월 2일) 이 간결한 내용은 심심찮게 카프카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증거로 인용되곤 하지만, 보다 복잡한 사정을 은폐한다. 그 여름, 카프카는 자신의 삶을 급격히 바꿀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그는 보험사를 떠나 프리랜서 작가로서 베를린이나 뮌헨으로 이사 가고 싶어 했다. 전쟁이 이 계획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었다. 군사 퍼레이드와 애국적 연설들로 인해 미루어지긴 했지만, 1916년에 카프카는 부득부득 입대하고자 애썼다. 이 계획은 카프카가 직장에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그의 보험사 상사에 의해 좌절되었다. 카프카는 분노하여 심지어 사임하겠다고까지 하며 협박하였다. 펠리체에게 쓴 한 편지에서 “군인이 되는 것은 나에게 행운일 것이다”(1915년 5월 3일)라고 적었을 정도로 그는 간절했다. 카프카는 동부 유대인 피난민들과 그의 매제들 그리고 보험사로 내려온 많은 부상당한 군인들에게 직접 들어 분명히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그렇게도 간절히 입대하고 싶어 했을까?
--- pp.30~31
그의 일기에서, 카프카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프라하의 작가들이 직면한 상황을 ‘소수민족 문학의 인물평’을 작성하며 반영했다. 그의 목록은 ‘갈등’, ‘원칙의 부재’, ‘마이너/소수자의 주제’ 그리고 ‘정치와의 연결’(1911년 12월 27일)과 같은 특징들을 포함한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는 1975년 그들의 카프카 연구 『카프카: 소수적인 문학을 위하여』에서 카프카의 모델을 개발한다. 그들이 주장하듯, 주요 언어로 쓰이지만 소수적 지위에서 쓰여진 문학을 의미하는 ‘소수적인 문학’에서 심지어 가장 작은 개인적 관심사도 정치적이며 “모든 것이 집단적인 가치를 갖는다”. 카프카의 경우, 이 언어적 소수자 지위는 민족적 지위와 결합되어 있었다. 1900년 초에 프라하에 사는 대부분의 독일어 사용자들은 유대인 혈통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성장하는 민족주의의 풍토 속에서 특히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고 자주 은밀한 차별 혹은 공공연한 적대감의 표적이 되었다.
--- pp.48~49
『성』은 카프카가 2년 넘게 중단한 후 수행한 첫 번째 문학 프로젝트이며, 소설로 들어가는 두 다른 경로는 새로 시작하는 데 있어서 그가 겪은 어려움을 반영한다. 첫 번째 버전은 몇 페이지 후에 중단되는데, 카프카는 가로줄을 하나 긋고 나서 다시 시도한다. 두 번째 오프닝은 더 많은 서술적 가능성을 지니지만 소설이 일단 진행되고 나선 내러티브가 관습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고 정체되며, 반복적이고 순환적이다. 『성』은 그가 추구하는 어떤 경로로도 가지 않기 때문에 결코 진정으로 새로운 삶이 시작되지도 않는 주인공의, 시도된 시작들에 대한 소설이다.
--- p.200
카프카는 1920년에서 1924년 사이인 자기 생애의 말년에 가장 기억에 남고 흥미로운 단편들을 썼다. 그의 건강은 악화되고 있었고, 이 텍스트들은 재귀적 어조로 쓰여져 작가가 그의 삶과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려고 시도한 것임을 보여 준다. 여기서, 이 이야기들은 카프카가 결핵 진단을 받은 후인 1917년에서 1918년 사이에 쓰여진 이른바 ‘취라우 아포리즘’에서 시작된 성찰의 과정을 계속한다. 이 아포리즘들은 정의, 죄책감, 지식과 같은 윤리적이고 인류학적 문제들을 간결하지만 종종 역설적인 형식으로 탐구한다. 1920년대에 카프카가 쓴 이야기들은 다른 형태로 이 탐구를 계속하는데, 이제 카프카는 그가 ‘자기-전기 조사’라고 부르는 것을 수행하기 위한 서사로 돌아간다. 그가 상술하듯 “전기라기보단, 오히려 가능한 가장 작은 구성 요소들의 연구와 발견”이다. 카프카는 어떤 의미에서 이 말을 하는 걸까? 그의 1920년대의 이야기들은 더 이상 1910년대의 ‘큰’ 이슈인 가족 갈등, 죄책감과 처벌, 제도와 권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음악과 침묵, 음식과 단식, 어린 시절과 노년 같은 보다 구체적인 관심사에 초점을 맞춘다. 이 주제들은 아웃사이더들, 연약하고, 괴짜에, 자주 몽롱하게 터무니없는 등장인물들에 관한 삶의 이야기들로 엮여 있다. 그들은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고 있지만, 그들의 기이한 열정과 결실 없는 연구로 인간 존재의 핵심을 건드린다.
--- pp.228~230
『어느 단식 광대』는 카프카의 이전 모음집들인 『관찰』과 『시골 의사』보다 주제적으로 더 일관성이 있다. 네 편의 이야기 중 세 편은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한다. 그들은 작품명과 동일한 이름의 ‘어느 단식 광대’, 공중 곡예사와 쥐 가수를 포함한다. 그러니까 세 명의 주인공 모두가 공연 예술가들이다. 그들은 그림, 글 또는 음악 작곡처럼 그들보다 오래 살아남을 예술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예술은 현재와 몸에 뿌리를 둔다. 카프카의 후기 이야기에서 예술은 실재하거나 영구적인 것이 아니라 과정, 존재의 상태 그리고 위험하고, 심지어는 죽음까지 초래하는 일이다. 사실, 이 모음집의 주요 주제는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의 존재라 할 수 있다. 카프카의 예술가들은 고립되고 오해받는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그들은 청중, 즉 외부의 인정에 깊이 의존한다. 그들의 예술은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시키지만, 그것 또한 사회적 작용의 한 형태이다. (중략) 그렇다면 이 예술가들은 작가의 대리자들일까? 카프카의 후기 이야기들을 그의 문학적 유언장으로 읽는 것, 예술의 목적에 대한 일종의 개인적 진술로 읽는 것은 그들의 요점을 놓치는 일일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역설과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고, 카프카는 명확한 ‘메시지’를 배제하고자 애를 쓴다.
--- pp.236~238
예술적 소명은 완전한 자기희생, 모든 세속적인 즐거움에 대한 금욕적 거부를 요한다. 글쓰기는 음식, 음악, 다른 신체의 소비와 양립할 수 없는데, 이는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독특한 반전으로, 카프카는 “자연스럽게, 나는 이 목적을 독립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발견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 자신을 발견했다”라고 덧붙인다. 예술가가 되는 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내적인 필요, 자기 통제인 양 행세하는 강박이다. 동일한 것이 단식 광대에게도 적용된다. (중략) 여기서 「어느 단식 광대」는 『변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레고르 잠자는 처음에는 여동생이 제공하는 악취 나는 음식을 먹지만, 나중에는 식욕을 잃어 결국에는 죽고, 그의 몸은 납작해지고 피골상접한다. 그가 죽기 직전에, 그는 여동생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 음악이 “그가 갈망했던 미지의 영양분을 향한” 길을 가리키고 있음을 느낀다. 두 캐릭터 모두에게 굶주림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일상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위한 탐구이다. 예술과 음악은 이러한 탐색의 이정표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도달할 수 없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 pp.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