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순은, ‘미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가수, 동아그룹 회장 전 부인…….’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강렬한 인생을 살았다.
자매 듀엣 〈펄 시스터즈〉 활동으로 미모와 가창력을 겸비한 비디오형 가수 1호의 신호탄을 날렸고, 작곡과 록 음악의 대부로 통하는 신중현 씨와 함께 소울(soul) 음악을 본격 전파했다. 당시 〈펄 시스터즈〉는 젊은이들에게 우상적인 존재였다. 166cm의 늘씬한 키에 균형 잡힌 몸매, 앳된 소녀처럼 해맑은 얼굴, 듣는 이의 가슴을 달굴 만큼 뜨거운 창법은 순식간에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청순한 이미지에 구김살 없이 명랑한 성격이었던 배인순과 인숙 자매의 등장으로 가요계에서는 체질 개선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본격 비디오 시대의 화려한 서막이 오른 것.
음악 스승인 록의 대부 신중현 씨는 새롭게 작곡한 〈님아〉 〈떠나야 할 그 사람〉 〈커피 한 잔〉 등 6곡을 〈펄 시스터즈〉에게 주며 창법을 지도했는데, 68년 이 음반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난리가 났다. 직설적인 표현의 노래말에 베트남 참전 문제로 우울했던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이 음반은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 당시의 오디오 보급 사정을 감안한다면 경이로운 기록이었다.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 씨와 결혼하기까지의 사연, 대기업의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겪어야 했던 고초와 연예인 킬러 최원석 씨의 외도 행각에 얽힌 충격 고백 그리고 수백억 위자료설에 얽힌 거짓과 진실…<br/><br/>세상을 여러 번 놀라게 하는 사람이 있다. 감탄할 만한 일이든 경악할 만한 일이든 어제와 오늘이 비슷하고 인생살이가 별다른지 않은 보통 사람들은 평생에 한 번도 힘든데, 어떤 이들은 수시로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세인의 관심 대상이 되어 주목을 끈다. 배인순 씨 역시 그 범주에 든다. 젊어서는 듀엣 그룹 〈펄 시스터즈〉로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그 다음에는 현재 동아 그룹 최원석 회장과 결혼식을 올려 호기심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대기업 안방 마님으로서 베일에 가린 생활을 해오다 20여 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여 다시 놀라게 하면서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의 모든 것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왜 노래를 그만두었으며, 어떤 경위로 대기업 회장 부인이 될 수 있었는지, 대기업 사모님으로서 어떤 생활을 했으며, 연예인과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던 남편과의 마찰, 파경에 이른 경위 등등. 하지만 98년 떠들썩한 이혼 이후 그녀는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철저히 함구해왔다. <br/>그러나 이번에 충격적인 결혼생활을 공개한 책을 내놓아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그녀의 히트곡과 동명 타이틀인 〈커피 한 잔〉(도서출판 찬섬 刊). 다만 그 동안의 세월을 감안하여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이라고 부제를 살짝 달았다. 이혼 후, 자신의 인생을 새로이 시작한다는 뜻이 담긴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br/><br/><껍데기를 벗는다><br/>배인순은 퍽 솔직 담백하다. 30여 년의 인생 여정을 털어놓음에 있어 전혀 주저함이 없다. 책 속에는 톱 스타였던 자존심, 재벌가의 사모님으로서의 체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정략적 결혼으로 맺어지는 재벌가에 시집간 며느리가 어떤 식으로 철저히 무시되고 짓밟혀지는지, 금력(金力)의 권좌에 앉아 있는 남편 옆에서 부인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 숨김없이 밝히고 있다. 그녀는 심지어 남편의 섹스 행각을 낱낱이 공개, 일부 지식층·상류층에서 행해지고 있는 스와핑의 충격에 버금가는 충격을 던지고 있다. <br/>그녀는 〈펄 시스터즈〉라든가 〈재벌그룹 회장 부인〉과 같은 것은 모두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아직까지 자신에게 남아 있었던 껍데기에 대한 미련. 이것 때문에 그녀는 6년 동안 입을 닫고 살았다고 했다. <br/>그리고 세월이 지난 지금, 오랜 가뭄 끝에 핀 꽃처럼 그녀는 진정한 내면 세계를 깨닫고 아름답게 다시 피어나고 있다. <br/><br/><추악한 왕자의 욕망과 신데렐라의 결말><br/>〈커피 한 잔〉은 그 내용의 대부분을 저자가 〈펄 시스터즈〉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파경에 이르기까지의 우여곡절과 온갖 사연들에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이 모든 것들을 껍데기라 말하니, 이 책은 껍데기 인생을 살아온 자기 자신에 대한 고백 소설인 셈이다. <br/>껍데기란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최고의 가수를 위해 추구했던 욕망과 좌절, 남편의 사랑을 단념하지 못해 번민하는 욕망의 그림자들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불행했던 그녀의 삶만이 아니다. 그녀를 졸지에 신데렐라로 만들어준 왕자(최원석 회장)의 행태에 독자는 눈을 뗄 수 없다. <br/>“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살았습니다.”<br/>옛 동화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결말짓는 것일까. 현실 속의 결말을 이 책은 여실히 보여준다. 문희, 고현정 등 재벌가와 결혼한 여인들에 대한 세인의 집요한 관심 속에는 바로 이 동화의 결말을 엿보고 싶은 충동이 숨어 있는데, 〈커피 한 잔〉은 동화가 지워버린 결말을 이야기한다. <br/><br/><왕자의 섹스 스캔들과 가문의 음모, 권력의 횡포><br/>〈커피 한 잔〉은 그녀의 인생을 털어놓는 고백 소설인 동시에 재벌가의 횡포를 고발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제껏 누구나 짐작은 하면서도 함구했던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최 회장이 연예인 킬러였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의 횡포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배인순은 그가 40대 중반부터는 자신과 전혀 섹스 관계조차 해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무리 외도가 심한 남편일지라도 여자로서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었던 자신의 외로움도 호소하면서. 더욱 놀라운 것은 상식적 기준을 넘어선 최 회장의 외도 행각. 최 회장은 아예 드러내놓고 연예인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섹스를 즐겼다고 털어놓는다. 그가 불러들였다는 연예인들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익히 아는 유명 연예인들이다. 책 속에는 그녀가 이혼할 무렵 세간에 터져나왔던 K 사장과의 스캔들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시댁과 최 회장이 한통속이 되어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굿도 했다는데, 이는 신데렐라가 재벌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능욕을 참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발이다. 아울러 이혼 당시, 아나운서 장은영 씨와 최 회장의 관계를 밝히면서 방송국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렀던 장은영 씨의 보석 소동을 소개하고 있다. <br/>60년대 말에서 현재에 이르는 세월을 이야기하는 동안, 그녀의 배경 뒤에 깔린 시대의 암울한 그림자도 보인다. 장충동 저택을 호화주택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 중앙정보부 남산 분실로 사용하였다는 이야기나 전두환 집권 시절에는 D화물을 넘길 것을 강요받았다는 이야기는, 기업의 뒷돈 대기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는 지금도 그때와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아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직접 자택을 방문하여 〈방랑시인 김삿갓〉이라는 노래까지 불렀다 한다. <br/>그 밖에도 세간에 떠도는 수백억 위자료설의 진위를 공개한다. 사귀는 여자들에게는 보석과 차를 선물했다는 최 회장이 20여 년을 동고동락한 자신의 아내에게는 마지막 약속조차 지키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 <br/>그녀의 이런 고백들은 철저히 능멸당한 여인의 삶이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가를 보여준다. 그런 중에서도 자식에 대한 애틋한 정만은 놓칠 수 없었다는 이야기에 여성 독자라면 공감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br/><br/>이처럼 그녀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충격적이다. 그리고 그 충격은 우리의 삶에 또다른 반향을 남긴다. 돈과 권력, 명예… 이 모든 것이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메아리가 되어 남는 것이다. 소박한 행복과 가슴에 품은 작은 꿈의 소중함이 아픈 이야기 속에 남는다. 이것이 바로 〈커피 한 잔〉의 향기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