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말을 한다는 것이 그저 단순히 단어를 사용하거나 입에서 소리를 내거나 정보를 전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고자 해요. 말하는 행위는 구분을 짓고, 등급을 나누고, 위계질서를 만들고, 차별하고,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폭력을 폭력이라 부르지 않고 오히려 심각성을 축소한다면, 이는 폭력을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만드는 셈입니다. 심지어는 ‘웃긴’ 이야기로 치부되기도 하지요.
폭력을 있는 그대로 폭력이라고 부를 때, 그 폭력을 저지른 사람의 책임이 낱낱이 드러납니다. 그래야만 어떤 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인지를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몸무게, 외모, 젠더, 인종, 여드름, 머리카락, 옷 스타일, 말투, 사회적 계층 등을 소재로 삼은 별명은 한 사람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어요, 특히 학교나 학급 같은 하나의 공동체에서 다수가 한 학생에게 그런 별명을 붙인다면 피해는 더욱 심각하겠죠.
욕하는 사람은 그 자신은 물론 자신의 세계관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사람을 ‘더러운 놈’이라고 분류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지요.
누군가 어느 정치인을 ‘더러운 놈’이라 부른다면, 정치적 성향이 어느 정도 나타납니다. 정치인의 어떤 행동 때문에 욕했는지를 알면,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겠죠.
욕을 되찾아오는 행동은 단순히 경멸적인 말을 자기 것으로 삼아 뜻을 뒤집는 방법인 것만은 아닙니다. 억압하는 자에 맞서 단결하면서 유대를 맺고 공동체를 만드는 행동이기도 하죠.
‘잡년’이라는 욕을 들은 수많은 여성이 도리어 그 욕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단결하며 행진했듯이 말입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저항하면서 무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옷 스타일, 유행, 드라마나 음악처럼 주로 즐기는 문화콘텐츠뿐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지요. 그렇게 어른들과 구별 지으며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이룹니다. 구성원끼리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공동체를 말이에요.
앞으로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상이 달라지면, 그에 맞춰 언어와 규칙도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달라진 세상 속에서 실제로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맞추어 바꿔 나갈수록, 더욱 자연스럽고 살아 숨 쉬는 말이 될 테니까요.
말은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입니다. 그러니 말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쓰일 때 비로소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죠. 평등한 말일수록 널리 쓰일 수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뜻을 전달하는 언어의 기능과 취지를 올바르게 살릴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