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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 보이지 않아도, 거기 있는 너에게

저스트YA-09이동
지혜진 | 책폴 | 2024년 05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5건 | 판매지수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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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08쪽 | 280g | 140*205*13mm
ISBN13 9791193162279
ISBN10 119316227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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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이로써 이 감독은 임세나 위주의 클로즈업 숏을 찍으려고 나를 망신 줬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리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내 일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임세나는 컷을 얻어 면죄부를 얻었고, 나는 변명할 필요조차 없이 관심 밖으로 던져졌다. 나만 억울한 일이 되면 그뿐이었다. 괜한 자격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 그냥 쿨하게 잊어버리면 될 텐데. 결국은 화살을 또 나에게 돌리고 말았다.
--- p.24

“쟤 기호연 중학교 때 별명이 천사였다며? 적응 못 하는 애들만 골라서 친구 한다고.”
“맞아, 유명했어. 유명한데, 아무도 안 알아주는 걸로 유명했지.”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애라는 걸 낙인찍을 사람은 바로 천사, 호연이였다. 호연이의 천사 코스프레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챌린지였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고 빠르게 호연이에게서 떨어져 나왔고, 호연이는 익숙하다는 듯 천사라는 이름표를 달고 혼자 교실을 떠다녔다. 그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지 않으려 몹시도 애를 썼다. 방법은 하나, 인기 있는 아이들 틈에 있는 것이었다. 끈끈하게 진아 옆에 있어 주는 나은이와 아랑이.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진아. 그 애들의 관계가 안전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애들은 나를 친구로 여기지 않겠지만 호연이 옆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 pp.42-43

쟤는 뭐, 있으나 없으나 똑같잖아.
중학교 때, ‘쟤’가 ‘나’라는 걸 알았다. 있는데 없다는 게 논리적으로 가능할까? 그때도 지금처럼 몸 어디가 아팠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정작 그런 말을 내뱉은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금도 내 뒤에선 담임과 진아를 포함해 모든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있었다. 유치원 때, 나 혼자만 짝이 없어 활동을 못 했을 때처럼 열일곱 살의 나는 또 교실의 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다.
--- p.56

내가 봐도 슬로 모션으로 봐야 겨우 얼굴이 보일 정도인데, 엄마 아빠는 단번에 나를 찾아냈다. 뒤통수만 보여도 나를 알아봤다.
“그으럼! 어딜 가나 주인공은 우리 신혠데.”
아빠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주인공이라니 말도 안 된다.
“아빠, 그건 좀 오버다. 내가 봐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던데 무슨 주인공이야.”
이런 말을 하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게 낯설었다.
“근데 왜 하필 예솔고야.”
내 푸념에 엄마 아빠는 서로 눈치만 봤다. 학교에 가는 나를 보는 엄마 아빠의 얼굴도 지금과 비슷했었다. 걱정과 응원이 함께 묻어 있는 복잡한 표정. 나는 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둔 일이 엄마 아빠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를.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내게 그 마음을 보이지 않으려 얼마나 애썼는지를.
--- p.72

“유튜브 찍는다며. 서인하 필름 맞지?”
“응. 그때 명함까지 받았잖아.”
“엑스트라가 명함 갖고 다니는 것도 웃기지. 뜨고 싶어 별짓 다 한다 생각했다니까.”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건 기특하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의 입가에 스며든 비웃음을 나는 보고 말았다. 영화사 오디션을 닥치는 대로 본다는 말도 들렸다. 뭐든 열심히 한다는 게 누구한테는 조롱거리가 될 수 있다. 어디서나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나는 서인하가 그 말을 들었을까 봐 신경이 쓰였다. 나였다면 들었을 테니까. 대개 이런 식의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아도 당사자에게 너무나 잘 들리는 법이었다.
--- p.87

“서정배.”
서인하는 물을 뿜을 뻔하다가 가까스로 참아 냈다.
“너,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생각보다 목소리가 큰 탓에 하마터면 엑스트라가 NG를 낼 뻔했다.
“난 네가 되게 잘 보여.”
내 말에 서인하는 사레까지 들렸다. 서인하는 튀지 않게 목을 가다듬었다. 우리는 엑스트라지만 촬영장에서는 프로답게 행동한다. 서인하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네가 잘 보여.”
서인하는 나보다 조금 덜 느끼한 톤으로 말했다. 역시 연기는 나보다 서인하가 더 낫다.
(중략)
우리 둘 사이엔 대본이 없었다. 어떤 말을 해도 NG를 외치는 사람이 없다. 줌 인, 줌 아웃 어느 초점에서도 자유롭다. 어쩌면 이건 주인공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 pp.132-134

이제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애들인 줄 알면서도 곁을 내주려 안간힘을 쓰는 나에게 화가 났었다. 그런 나를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미안했다. 그 애들과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은 내 이야기였다. 그 애들을 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은 바로 나였다.
--- pp.15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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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주고 온전히 보아 주는 사람이 있을 때 한 사람은 온전히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자리에서 우리는 어디서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동시에 그러한 서로가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더 이상 주인공이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나를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나는 누구 옆에 있어 줄 수 있을까?’ ‘나도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이 책을 함께 읽으며 나눌 수 있는 질문들의 목록이 이렇게나 두텁다. 여러 삶의 경험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청소년 독자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이리라 자신한다. 부디 그 과정이 안전하고 즐겁기를, 자신이 발견한 자리에서 머물다가도 그 자리에 갇히지 않고 언제고 훌쩍 경계를 넘을 수 있기를 마음 다해 응원한다.
- 김담희 (사서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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