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세상에서 신을 보았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곤 한다. 그럴 경우, 현재 정치 종교전문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는 나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때로는 먼 나라에서 누가 성모의 기적을, 예수와의 만남을, 때로는 국내에서 기적을 행한다는 누구, 신이 되었다는 누구, 그러나 나는 그 전부를 믿지 않는다. 거짓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참과 거짓에 대한 진실 밝히기에 열성인 내 근성 탓이기도 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때껏 서울신문사 기자와 편집국장으로, 환갑을 바라보는 현재는 정치 종교전문 방송국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는 한평생의 체질적 근성이기도 하지만 정신적 체험에 의한 안목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런 내가 신이라고 인정하는 인간이 있다. 그 신이 바로 일파 스님이다.
일파 스님과의 인연은 오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가 1997년에서 1998년 언저리였던 듯싶다. 그때 불교 원효종의 큰스님 무진 스님의 상좌로 스님이 된 일파 스님과의 만남부터가 예사롭지 않았었다.
무진 큰스님에게는 도관 스님이라는 또 한 분의 상좌스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후에 국회의원도 출마하셨고 김종필 총재의 심복이기도 하셨던 분(이승우)이다. 나와는 호형호제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다.
그런데 도관 스님이 일파 스님의 예언력을 시험 삼아 청하신 예언에 일파 스님은 도관 스님이 일주일 후 중풍에 걸리겠다는 충격적인 예언을 하신 것. 도관 스님은 불쾌함으로 화를 내시며 믿으려 하지 않았으나 일파 스님의 예언은 불행히도 적중했다.
멀쩡하던 도관 스님이 거짓말처럼 쓰러지셨고, 도관 스님을 병원에 입원시킨 내 슬픔과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도관 스님에게 지팡이를 선물해야 하는 그 심정은 칼에 심장을 찔린 듯한 아픔이었다. 그러는 동안 일파 스님은 그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쫓겨나고 말았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일파 스님의 정확한 예언력과 치유능력은 그 후에 입증되었다. 서울 영동호텔 뒤에서 철학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일파 스님은 한편으로 동산포교원을 설립, 오갈 데 없는 노스님들과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머물도록 해주고 있었다.
동산은 무진 큰스님의 호였으니, 큰스님에 대한 그 각별한 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일파 스님을 찾아가 간곡히 부탁했다. 도관 스님을 용서하시고 병을 고쳐 달라는 나의 청을 거절치 않고 도관 스님을 동산포교원에 모신 다음 기도와 조상 천도를 하고 자신만의 비법으로 발콕케 함으로써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운 기적이 일어났다. 이번에도 7일 만에 도관 스님이 지팡이를 내던지고 일어나 동산포교원 밖 비탈길을 뛰어다녔다.
그냥, 말로 믿기 힘든 기적이었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시리로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기적을 내 눈앞에 펼쳐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도관 스님을 동산포교원의 주지로 모시기까지 한 일파 스님의 넓은 덕에는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존재여서, 내가 제의했다.
“그 비법을 모두 다 내놓아 증명해 보이면 내가 글도 써주고 방송하여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
흔쾌히 승낙한 일파 스님은 나를 국립표지로 데리고 갔다. 자신의 효학문 영혼 철학을 증명해 보이겠다고 한 일파 스님은 술과 담배를 묘 앞에 놓기 전 나에게 먼저 맛을 보라고 한 후,
“이 묘의 주인이신 영은 못 가셔서 구천을 떠돌고 계시므로 술 맛과 담배 맛이 탁하고 쓸 것입니다.”
“이 묘의 주인이신 영은 좋은 곳으로 잘 가셨기에 술 맛과 담배 맛이 순하고 맑을 것입니다.”
하면서 바로 바로 영접속을 하며 묘지들을 순례하였다. 믿을 수 없게 말한 그대로 술맛이 그때마다 변했다. 도저히 설명 불가한 일이었다. 나는 흥분해서 말했다.
“당신은 신이다!”
나는 캠코더를 들고 직접 촬영하며 일파 스님의 뒤를 쫓았다.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 그동안 내가 만나 친분을 가진 종교계와 무속인들이 수천 명인데, 일파 스님 같은 분은 없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비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 또한 흥미롭다.
요즘 세상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자기를 알리기 위해 온갖 편법과 술수가 판치는데, 그런 일들과는 무관하게, 아니 무관심으로 숨어서 기적을 행하는 일파 스님이 측은하기도 하고 안돼 보이기도 하고… 그랬다.
그뿐이 아니다. 동산포교원을 도관 스님에게 주고 자신은 국운상승을 위한 영가천도를 하느라 무척 많은 고생을 했다. 그때 많은 정재계 인사들을 당선시켜준 대가로 받은 게 고작 배신과 약속 불이행이었던 것으로 안다.
인간적인 일파 스님이므로, 그들의 비인간적인 처사에 무척 상심했으리라 짐작된다. 일파 스님이 훌쩍 일본으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 후 내 앞에 나타난 일파 스님의 행적인즉슨, 일본에 건너가 철학관을 했고 그때 통역을 맡은 미혼의 젊은 여성이 나를 다시 한번 경악케 했다. 꽤 미인이었음에도 왼쪽 귀와 턱 사이에 보기 흉한 커다란 혹이 달려 있었다(김일성의 혹을 연상하면 된다).
그런데 일파 스님을 만나고부터 차츰 빠르게 혹이 작아지고 있다는 거였다. 손도 대지 않고 고치는 중이라면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의 경과를 직접 확인시켜 주겠다는 거였고, 이번에도 나는 그녀의 혹이 사라지는 기적을 직접 목격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신이 아니고서는 불가한 일이었다.
그 뒤로 그녀는 결혼도 했고, 일파 스님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봉사활동을 위한 영가천도를 후원해주겠다는 약속에 속아 강남 압구정에 얻은 사무실마저 그녀에게 준 것으로 안다. 그렇게 남들만 도와주느라 정작 자신은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일파 스님이다.
그러나 지금이라고 별반 달라진 게 없지 싶다. 그동안의 고행에 지친 듯하기도 하고, 여전히 남들이 자기를 위해 이기적으로 살 때에도 일파 스님은 무료로 천도를 많이 해주고, 후원해주는 분들이래야 효학문을 직접 체험하여 믿게 된 분들과 지인들 몇 분인 것으로 안다.
그나마 발전한 것이 있다면, 인터넷에 네이버 카페 [행복한 가정 만들기]를 개설해 조금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자주 그 카페에 들어가 본다. 그리고 여전함에 안타깝다. 일파 스님을 후원하는 분들이란 어려움에 처해 찾아오는 분들이고, 일파 스님은 여전히 도움을 받는 쪽이 아니라 주는 쪽에 있다. 심성이 사람 돕기를 좋아하여 거절치 못하는 일파 스님.
일파 스님의 말씀처럼 도의가 땅에 떨어지고 효가 부재하는 현세에서… 이제 효를 드러내고 펼쳐서 병든 세상과 사람들을 치유하는 비법이 영원히 끊겨 사라진다. 생각하면 안타까움은 자연스레 요즘 유행하는 종말론에 가 닿는다.
정녕 이대로 종말을 맞이하고만 있을 것인가. 종말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외로운 효학문을 위해 쾌척할 후원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나 자신 효학문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병든 세상과 사람들을 건강케 하고 못 가신 조상님들을 좋은 곳으로 천도하시게 되기를 기도하며, 국운상승 천도 사업에 동참하고자 한다.
오늘도 외로이 땅의 길 하늘의 길을 닦으며 가는 효학문과 일파 스님. 파이팅!
--- 「그는 신이다 -심흥섭(자유방송국 대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