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대한광복회에서 활동하는 큰형님 독립자금 뒷바라지를 하느라 집안을 돌보지 못했다. 광복군 사업 총괄을 맡은 큰종조부는 경주 최부자 댁과 함께 막대한 독립자금을 모으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금 모금이 여의치 않으면 우선 당신들의 가산과 금품을 내놓게 되었다. 광복군 조직 안에서 비밀활동을 한 큰종조부는 셋째 동생인 할아버지에게 집안 살림을 맡기기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형님이 벌여 온 사업에 보증을 섰다. 독립자금이나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할아버지 토지를 매각하는 일이 잦아지자 가산은 나날이 기울어갔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꾸리던 조부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므로 큰형님이 어려울 때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경제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것 같다. 해방 후 1949년 이승만 정부가 시행한 토지개혁과 1950년 농지개혁으로 우리 집안 재산은 더 많이 줄었다.
--- 「Chapter1. 나의 서사」중에서
결혼하기 전 나는 공무원 월급이 그렇게 적은지 전혀 몰랐다. 내 주위에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월급만 받으면 곧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실을 알려는 생각도 없었고, 국무총리실 근무가 대단한 직책으로 생각했다. 남편은 결혼 전 겨우 1년 반 공직생활을 하고 이듬해 4월에 군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하던 중 결혼했기 때문에 거의 빈털터리였다. 다만 하객이 많아서 결혼축의금이 다소 있었을 뿐이다.
제대 후 국무총리실에서 1년 더 근무했어도 아직 월급은 적었다. 그러나 든든한 처가를 둔 동료들과 어울리다 보니 월급날이 되어도 외상값을 갚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었다. 국무총리실에 복직한 후 그가 내민 첫 월급봉투를 본 나는 깜짝 놀랐다. 결혼 후 처음 받는 것이라 은근한 기대로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는데 누런 봉투 겉봉에는 7,400원이 씌어 있었다. 내 눈을 의심하며 자세히 보니 기본 공제금액 몇 개가 적혀 있었지만, 금액이 적기는 매한가지라 크게 실망했다. 그동안 공무원에게 지녔던 환상을 떨쳐버리고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어쨌든 결혼했고 아기도 있으니 앞날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진급을 하고 경력이 쌓이면 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월급날이 며칠 지나지 않아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 용돈이 벌써 바닥난 것이었다.
--- 「Chapter2. 여자의 일생」중에서
주식 하강 국면에서 맞는 상실감과 활황 때의 성취감이 교차하며 나는 점점 평정을 찾게 됐다. 그때는 아직 컴퓨터를 사용하기 전이어서 시황 설명이나 신문 뉴스에서 얻는 정보를 바탕으로 매수와 매도 시점을 분석했다. 차츰 규모가 커지자 친구들과 주식 정보를 교환했다. 시황 설명이나 신문 뉴스를 잘 분석하는 전문가가 있다는 ㅇㅇ증권 ㅇㅇ지점에 원정을 갔다. 내 친구 ㅇㅇ이 그 동네의 주식 스타가 최고라며 그 객장으로 나를 불러냈다. 주식 공부와 친구를 만나는 두 가지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 두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지 않았다.
투자한 주식이 여러 종목으로 늘어났다. 주력주에 심혈을 기울이며 여타 주식은 느긋한 마음으로 관찰했다. 그렇게 하나씩 매입하다 보니 내 계좌는 어느덧 ‘주식백화점’이 되었다. 주력주인 트로이카 주식, 즉 건설, 증권, 은행 주식들이 최고가를 갱신하던 어느 날, 나는 황급히 전량 매도 주문을 했다. 최고가로 체결되었다. 같은 종목의 주식에 투자한 친구에게도 지금이 정점이라며 빨리 매도할 것을 권유했다. 친구는 과감하게 결심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주식은 나날이 하강 곡선을 그렸다. 친구는 안타깝게도 최대 수익을 올릴 기회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계속 떨어지는 주식을 바라보며 상승 기회를 기다렸지만 오랫동안 오르지 않았다.
주식투자는 장기적 안목을 갖고 우량한 주식을 매입하고 멀리 보는 방법이 물론 좋다. 그러나 잘못하면 완전히 기울어지는 회사 주식을 움켜쥐고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는 말이 격언처럼 전해오고 있다. 너무 욕심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이 말은 주식에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매사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가 싶다.
--- 「Chapter3. 성장과 발전」중에서
나는 꼭 그 집을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서 묘안을 생각해 냈다. 계약서에는 남편과 합의한 금액을 기재하되. 계약이 성사되는 동시에 차액을 따로 지불하기로 했다. 미리 부속 계약서를 작성했다. 차액으로 낸 돈은 내가 꽁꽁 아껴두었던 비자금으로 무려 5,000만 원이었다. 그동안 공직자 아내로 조심스럽게 살아온 나는 좀 더 넓고 쾌적한 집을 원했다. 아이들이 어리고 집이 없던 시절부터 나는 종종 잔디가 있는 아름다운 집을 꿈꾸었다. 드디어 그런 집을 찾아냈던 것이다.
이사 후 남편은 교원공제회 이사장을 거쳐 대학 총장을 역임하게 되었다. 남편은 편리한 교통에 만족했고, 아이들도 예전보다 등교 시간이 단축되어 좋아했다. 막내가 고등학교에 전학하고, 아이 중 처음으로 강남 학군에 편입되었다. 첫째와 둘째 두 남매가 결혼하고, 남편이 순천향대학교와 천안대학교 총장직을 마친 다음 용인으로 이사하기 직전까지 그 집에서 8년간 살았다. 단독주택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름다운 그 집을 사랑했다.
--- 「Chapter5. 새로운 출발」중에서
나는 가사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다. 가령, 설거지 때 그릇 하나 씻는 데는 30초, 화분에 물 주기는 30분, 목욕 20분, 지하철 승차 시에도 역 하나 통과에 2분이나 3분, 갈아타는 데 5분, 와이셔츠 한 장을 다림질하는 데 10분, 요리 한 가지에 평균 30분, 이렇게 매사에 시간을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심지어 화장실 사용, 화장, 목욕도 시간을 정해놓고 할 때가 있다.
나는 돈을 저축하거나 절약하는 것 이상으로 시간을 아끼고 저축하기 위해 노력했다. 선행 학습하는 학생들처럼 할 일을 미리 해두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더 했다. 다른 사람들이 결과물에 투자한 시간도 생각했다. 가령, 어떤 아마추어의 그림을 구입할 때도 작품에 들어간 시간과 그의 재능 가치 등을 대충 어림해 본 것이다. 모든 작품은 재능과 시간의 소산이다. 비록 재능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시간은 금과 같다.
지구의 자원이 한정되어 있듯이 한 인간의 시간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해야 한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때야말로 선물 같은 시간이다. 더구나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은 더욱 소중하다. 할 일은 많고 남은 시간은 별로 없으니까.
--- 「Chapter7. 내가 살아가는 방식」중에서
나는 늘 조연으로 때로는 보조인으로 어디든 불려갔다. 또한 스스로 찾아 나서기도 했다. 덕분에 내 가족은 무사하고 평화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그동안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남편과 아이들이었다. 부모와 형제 그리고 손주에게도 항상 양보하며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해온 나의 행복이었다. 나는 어디 로 갔나? 내 인생의 진짜 주인공은 나 자신이 아니던가. 나는 무대 뒤편 에서 주인공의 대사를 떠들어주다가 막이 내리면 그대로 사라져야 하는 변사와 같은 존재였던가.
일흔이라는 나이 뒤로 벌써 수년이 흘렀다. 더 큰 파도가 내 앞으로 밀려오기 전에 남은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시간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일모도원(日暮途遠).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책사 오자서 말이 절절 하게 와닿았다. 해는 지는데 아직 할 일은 많으니 서두를 수밖에.
예순아홉에 유난히 나이병을 앓았다. 일흔이라는 고개를 훌쩍 넘으니 하루하루가 금쪽 같다. 이제 가치 있는 일만 하고 싶다. 그동안 나 자신을 바라보지 못했고, 나를 계발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자주 삶의 한 계를 자각한다. 매 순간을 아끼며 나의 도리와 나의 일을 생각하는 시간 이 많아졌다. 방만한 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서 내실을 다지듯, 주변 정 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살림살이, 메모지, 의복, 책…. 내가 가 진 물건은 나와 함께 늙어온 것들이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교체 할 것들은 교체하면서 차례차례 정리해야 한다.
--- 「맺음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