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늦게 가는 것으로 길을 삼는다』 『너무나 얇은 生의 담요』 『루시』 『저녁의 연인들』 『노랑꼬리 연』 『某月某日의 별자리』 등이 있다. 서정시학 작품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누구나 자연의 시간 위에 서 있지만 아무도 그 시간을 그대로 살지 않는다. 황학주 시인은 이제 “저절로 살구 떨어지는 시간”에 들어섰다. 그러나 영혼은 집이 필요없고 떠도는 영혼의 가장 친한 벗은 시인이어서 “혼자만의 땅거미 무늬”를 찾아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있다. 나와 당신이 ‘넘어진’ 시간이 그곳에 있어 문득 고개를 들고 잠깐씩 빛이 들기 때문일까. 사랑과 죽음에 대한 기록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새의 그림자를 키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란’의 해안 절벽이 그러하듯. 차가운 육감의 세계가 여기에 펼쳐진다. 고향과 타지, 여행지의 풍경들이 뜨겁게 살아난다. 그림자가 무럭무럭 자라 그에게 슬픔과 고독을 되돌려줄지라도 끝까지 가보기 위해 그는 조용하게 발걸음을 딛는다. 감자꽃이 “감자의 안쪽으로 가만히 옮겨”지듯이. 감자의 안쪽을 파는 일. 그래서 다시 허무와 정적을 건너는 시인의 어깨는 숭고하다. 희망이 최면에 불과하더라도 그는 매번 사랑과 죽음의 무늬를 생의 이쪽에 부려놓는다. 고드름은 처마가 아니라 허공에 매달리는 것. “자유를 춥게 배우며/그 몸 얼음 난간이 되어” 겨울을 또다른 겨울로 이어주는 것. 우리가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허무와 정적을 깨고 미풍이 분다. 바람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나 언어에 새겨진 무늬가 차고 아름답다. 그 무늬를 더듬어가는 일은 ‘당신들’을 닮아가는 일일 것이다. 궁벽한 곳에서 외롭고 가난하게 서 있는 당신들에게 배운 것이 사랑이므로. 언젠가 나의 슬픔과 고독 역시 당신들의 그것에 잇대어 가만히 눈을 감을 것이므로. 이근화(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