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화 선생님에게도 수만 권의 책이 있다. 수만 년의 기억을 품고 있는 사람 책, 김봉화 선생님이 온몸으로 기억하는 모든 것이 참으로 귀하고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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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행복해하던 이들이 한 땀 한 땀 손바느질하며 바느질이 책 읽기의 몰입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아마도 이때 선생님과의 만남은 강력한 시절 인연이 아니었을까 싶다. 선생님은 따뜻하시지만 바느질 수업에서는 무척 엄격하시다. 허투루 번잡하고 산만해지는 마음을 다잡아주신다. 바느질은 몰입으로 번잡한 생각을 비워내고 내 안의 불을 끄는 작업이라 하셨다. 그래서 오롯이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침선針線과 침선針禪으로의 몰입경험이 우리 일상의 삶에서도 진중하고 사려 깊은 몸짓으로 배어난다. 바느질은 사람됨을 배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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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옷감으로 만든 옷이나 물건들은 발달된 산물의 몫이니 내가 할 일은 아니다.” 어려웠던 시절, 부족한 것에서 생활의 지혜가 나왔다. 짜투리 천을 활용한 바느질이 그림이 되고 예술이 되었다. 선생님의 바느질은 긴 이야기를 품고 있다. 평생을 살아온 기억들을 오롯이 품은 선생님의 정성스러운 삶이 묻어나는 철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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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한 생산시스템에 밀려 거리를 두게 된 오래된 우리의 기억 전통, 생활과 밀접해야 예술이다. 자기 머릿속의 예술적 감각을 끌어내서 생활에 필요한 것을 고이 지어서 쓰기도 하고, 그림이 되어 바라다볼 수만 있어도 너무 좋다. 마음을 담은 정성 예술인 바느질은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치유도 해준다. 바느질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참 신비한 힘이 있다. 경험해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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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바느질 수업에 오는 이들의 첫 과정이 기본 바느질로 만드는 솜을 가득 채운 작은 버선이다. 우리 서로의 인연에 대한 고마움은 물론이고, 발처럼 가장 낮은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보잘것없는 것에 관한 관심을 예술로까지 끌어올리려는 나의 의도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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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후에도 엄마를 모시고 살아 엄마의 버선 사랑(?)을 잘 아는 나는, 버선에 얽힌 많은 옛이야기뿐 아니라 버선 만들며 왼쪽 오른쪽을 구별해야 하는 바느질은 물론 발바닥 뒤꿈치 해진 버선 수선하는 것까지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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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침선針線이란 바늘이 지나간 자국, 바느질땀을 말하는 것인데 시작부터 마무리하기까지 반복되는 지루함과 노고를 명상이라 여기며 하라 일러 주신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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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날은 꽤(?) 긴 세월을 살아오며 남긴 바느질땀 같은 내 발자국을 기억해 내고는 부끄러움에 잠 못 이루기도 한다. 바느질처럼 따내고 다시 할 수도 없는, ‘針禪’에 들지 못한 채 바느‘질’로만 보이는, 곱지 않은 ‘針線’ 같은 내 삶의 흔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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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나의 두 언니가 결혼할 때도 이미 손바느질한 보자기는 만들 필요가 없었고 나때는 더욱이 세상은 빠르게 달라져서 편해지긴 했지만, 이 아름다운 전통이 구시대 유물로만 남게 될까 오늘도 괜한 걱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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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나는 엉뚱하게도 다듬잇돌의 방망이 소리가 너무 좋았었다. 지금도 현대음악 악기인 드럼이나 퍼커션 리듬 속에서 엄마의 다듬이 박자를 듣는다. 숙모와 마주앉아 하시던 때의 환상적인 그 리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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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무 만들면서 바느질 배운 것을 후회한 첫 순간이었다. 엄마는 내가 좀 힘들어한다 싶어도 절대 거들어주시지 않았다. “지금 거들어주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나중은 어쩔 건데? 무슨 일이든 고비가 있어. 그것을 스스로 넘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할 수 없지. 서두르지 말고 찬찬히 해. 다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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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학교 선생님은 서양미술의 표준 색상도를 칠판에 걸어 놓으시고 명도와 채도를 설명해 주셨지만 우리 전통색에 대한 가르침은 주시지 않았다. 그때의 우리 교육이 거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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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같은 바늘을 보더니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천 조각과 실, 모든 재료는 소중히 아껴야지 아무렇게나 쓰고 버리면 안 된다는 할미의 주의를 귀담아 듣고 있다. 나는 너무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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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에 딸이 와서 손녀가 해 놓은 만큼의 조각을 이어 놓고 돌아갔다.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에 며칠을 들여다보다가 내가 다시 그 조각들을 이어 붙이기 시작했다. 손바느질은 이렇게 대를 이어 가르치고 배워서 지금까지 왔다. 바느질 기법은 물론 그 아름다운 정신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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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고 배운 그간의 성과를 공개해야 하는 시간, 로스엔젤레스 한국문화원 전시장을 찾아온 많은 미국인들은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찬사와 내 눈과 손을 함께 걱정해 주며 돌아갔다. 그런데 정작 응원해 주어야 할 동포들의 무관심과 비웃음이 내 속에 불이 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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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을 넘긴 시간에도 여전히 윤기를 잃지 않은 고운 명주. 그냥 보관할까? 아니, 내 손을 거친 새로운 얼굴로 세상에 내어놓아야지. 긴 세월 동안 자연스럽게 생긴 탈색과 얼룩까지도 귀하게 여기며 이리저리 마름질하다가 울 어머니가 만드셨던 아버지의 책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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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있었지만, 엄청나게 거대하고 셀 수 없이 다양한 문화권 속에서 개인의 작은 움직임을 스스로의 힘으로 주류사회에 알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여겼다. 그렇지만 해내야지. 스스럼없이 활동하는 주류사회의 미술가들과는 다르게 숨듯이 골방에 앉아 전통을 답습 전승하고, 점 선 면 색의 현대미술로 표현해 보려는 나의 노력은 스스로 눈물겹다 여긴다.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이고, 우리선조들의 전통적 삶에서부터 현대 생활의 가치 기준 변화까지를 담아내려 한 의도를 알아주기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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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에 어머니께서, 하늘을 두려워하고 땅에 의지해서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만 잊지 말라 하신 것을 기억한다. 우리 조상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셨지만 다 알아듣진 못했었다. 나이 들어 스스로 찾아본 몇 서적 속에서 만난 내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시절에 오래전의 어머니 말씀이 확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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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예상치 않았던, 갑작스런 어려움을 당했을 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가까이 있는 누구라도 나서서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를 생각한다. 아무런 힘도 없고 나 스스로를 지탱하기조차 어렵지만 실낱같은 기운으로라도 서로 손을 잡는다면 일어서기 한결 쉬우리라.
--- p.79
그래야지. 목표를 향한 몸과 마음의 일치가 우선이 되어야지. 잘 준비하고 정성 들여 작업했으면 결과는 당연한 보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믿고 기다리면 될 것을. 침선針禪에 들지 못한 침선針線에 후회하지 않을 때처럼. 돌아오는 길은 속도계도 보이지 않고, 머릿속은 온통 쪽빛 모시 바느질 생각으로 가득. 그 쪽빛이 오늘 본 하늘이든 바다이든 그냥 그대로 받아야지.
--- p.84
‘앞으로는 제발 그러지 말기를! 진정 사랑한다면 고백하고, 어떻게라도 자기와 함께하도록 애써봐야지. 그렇다면 두 번째 찜해 둔 건 지금 바로 고백해요, 가슴앓이하지 말고. 얘기라도 나누다 보면 그 사랑 차지할 방법이 없지 않을 텐데.’
--- p.94
이제 내 나라에 돌아오니 목표가 바뀌었다. 나의 후세대들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전통을 이어가며 자기들의 이야기를 표현할지, 잘 전해주고 잘 가르쳐야 할 텐데…….
--- p.124
가만히 잎 하나를 조심 들어내니 여기저기에서 ‘행운’이 넝쿨채 딸려 나오는 게 아닌가! 이걸 어쩌지? 이 많은 ‘네 잎 클로버의 행운’을 나 혼자 차지하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모르게 달항아리 속에 넣어두고 경비병까지 세웠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특별히 찾아온 ‘행운’이 있었나? 이 산골에서 속병을 앓고 팬데믹을 지나면서까지 매일 이렇게라도 살아가는 것이 ‘네 잎 클로버가 가져다준 행운’일지도 몰라. 머지않아 나의 인연들과 이 얘기 나누며, 고이 모셔둔 네 잎의 ‘행운’도 나눠야지.
--- p.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