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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니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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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니 길이었다

: 강승원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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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11쪽 | 412g | 152*225*13mm
ISBN13 9791190526630
ISBN10 1190526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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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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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북쪽 땅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짧은 시간에 살펴보고 만났던 몇 사람의 군인이나 식당 종업원, 호텔 종사원, 면세점직원 등은 남쪽 관광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거의가 얼굴에 웃음을 띠거나 밝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그런 원인이 우리 남쪽 사람들이 지레짐작하고 있는 것처럼 곤궁한 생활에 지쳤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유롭게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 같은 것 때문인지 그 속내는 올바로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이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향교에 모셔져 있는 몇몇 중국의 성인들 위패를 계속 존치하면서 제향을 올릴지의 여부를 일반 시민들의 공론화에 붙여 볼만한 문제라고 본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조선왕조시대에 득세했던 몇몇 명나라와 청나라를 좋아했던 학자와 당파들이 만들어 낸 식민잔재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고 세상이 바뀌었다. 이십일 세기가 된 지금 유교사상의 부활이나 존속을 위해서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사회주의 국가를 무작정 짝사랑할 수만은 없는 처지에 다다른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 학벌 시새움이나 명문 선호 관행은 세상이 생겨난 뒤부터 이어지는 암울한 질병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역사시대 이래로 이 땅을 다스렸었던 명문거족들의 지배이데올로기는 수많은 왕조시대를 거쳐서 장삼이사로 분류되던 평범한 시민들이 나라의 주인이 된 민주공화국시대에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 곳곳에서 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제도권과 비 제도권의 다툼, 공직사회를 비롯하여 재벌기업과 개인기업에서 인력을 부리는 사람과 상급자의 부림을 받는 고용한 사람들과 일하는 사람들의 불협화음, 이밖에 노동 현장에서 빚어지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시새움, 영세한 토착 농민과 거대한 농지를 가진 신흥농촌 자본주와의 싸움이 모두 그 울타리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구나 잘 아는 일이지만 우리 겨레는 옛날부터 밥을 먹은 뒤에는 입가심으로 밥 〈숭늉〉을 먹어왔었다. 밥을 퍼낸 뒤 밥솥 바닥에 눌러 붙은 밥 누룽지에다 미리 받아놨던 쌀뜨물을 부어서 팔팔 끓여낸 숭늉은 영양성분으로 분석해 봐도 그 지수가 높았겠지만 맛이 참으로 구수하였다. 숭늉 가운데서도 흰쌀밥을 퍼낸 뒤의 숭늉은 으뜸가는 먹을거리나 다름이 없어서 잘사는 집이나 못사는 집을 가리지 않고 모든 가정에서 밥을 먹은 뒤의 마실 거리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 기막힐 만큼 구수한 맛의 숭늉이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 야금야금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재래한옥의 부엌에서 장작이나 연탄 같은 땔감을 때서 밥을 해 먹던 한국인들의 주식생활문화가 층층 살림집이 늘어나면서 어느 틈엔가 온돌용 구들과 밥을 해 먹는 재래식 부엌이 사라지고 밥해 먹는 곳의 구조가 완벽하게 서양식 〈주방〉으로 바뀌었고 조상들로부터 내려받아 온 숭늉을 만들어 먹던 버릇이 뜬금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사실 엄밀하게 다져보면 의술과 인술은 애초부터 공존할 수가 없다. 다만 인술과 의술이 공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공존할 수가 없는 〈인술〉이 우리의 공동체 사회에서 극진한 존경과 흠모를 받아왔던 것이다. 의술이 이런 본바탕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욕망에 치우칠 때 평범한 시민들은 존경심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치료비를 내지 않는다고 병든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의사들은 인술이 뭔지 모르거나 아예 인술 베풀기를 포기한 돈 밖에 모르는 의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해 전이다. 어느 날인데 집안에 어떤 일이 있어서 가족들이 거의 모인 자리가 있었는데 아내가 굳어진 버릇을 바꿔보자는 놀랄만한 발언을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생일날에 미역국을 끓여 먹는 바탕은 아이를 낳은 어머니를 위해서 생겨난 것이지 생일을 맞는 당사자들을 위함은 아닐 것 같다”면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한국의 어른들은 누구를 가리지 말고 생일날 아침에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미역국을 끓여 드려야만 올바르게 생일상을 차려 먹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이다.
나는 아내의 남다른 이 발언을 옳거니 하고 손뼉을 치면서 받아들였다. 미역국은 틀림없이 아이를 낳은 애 어미의 산후영양을 염려하여 먹게 되었던 음식일 것이 틀림없다. 가난하게 살던 우리 겨레들이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영양을 섭취시키려고 먹이게 된 음식이 미역국인데 그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된 뒤에도 생일날 아침에 산모나 다름없이 미역국을 얻어먹는 다는 것은 여러모로 다시 생각해 볼 일이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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