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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블루

: Brilliant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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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12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270g | 124*188*15mm
ISBN13 9791190234252
ISBN10 1190234254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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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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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에는 투명한 물방울들이 촘촘히 맺혀 반짝이고 있다. 그렇게 맑더니 자는 사이에 비가 온 모양이었다. 거울처럼 매끈한 표면의 건너편 아파트에 잿빛 하늘이 반사되어 묘한 분위기가 났다. 잿빛 하늘과 반짝이는 빗방울. 하루건너 비가 오다 말다 하는 것이, 이제 여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 같았다.
--- p.24

반쯤 벌거벗은 사람들과의 밤 수영, 통나무 전망대, 코코넛 아이스크림. 맞닿은 무릎과 손바닥. 언제부터 함께 있게 된 건지, 나를 번쩍 들어 올리는 독일에서 온 소년. 나는 그렇게 야자수 사이에 눕혀지고, 하늘에는 별과 달이 빛나고 있었다. 푸욱 삶아져 눅눅해진 세상 속, 미숫가루처럼 부드러운 모래 알갱이. 커다란 야자수 잎을 이불 삼아 듣던 바다의 시원한 한숨소리와 하늘 위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던 세상의 끝.
--- p.55

우리는 그 후로 꽤 자주 보았다. 잭이 올 때면 늘 리버가 함께 왔고, 그러면 토마와 케이티도 왔다. 손님이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모나는 매일같이 새로운 요리를 시도했고, 나와 필립은 항상 최선을 다해 그녀를 도왔다.
마리나 디 키오자 품종의 호박, 민트와 키위, 한련이 들어간 코코넛 타피오카 푸딩. 우리는 문어를 마사지하듯 고기를 주물렀다. 라 띠엘의 사랑을 담아.
다 같이 저녁 식사를 하다가 그가 뭘 하고 있나 궁금해 고개를 돌리면 그도 날 바라보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아삭한 샬롯과 바삭하게 구운 노루궁둥이 버섯. 딸기 잼, 리치, 라벤더 소르베.
언젠가부터 잭 없이도 리버 혼자 집에 들르는 일이 잦아졌고, 그럴 때면 모나와 필립은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 pp.75~76

스무 살의 나는 엑상프로방스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나를 쳐다보며 눈이 부시게 웃던, 그런 리버를 광폭적으로 사랑했다. 세상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리버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시간은 아주 빠르게 흘렀다.
“내가 도망친 곳에 이런 낙원이 있을 줄이야.”
저녁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마로니에 나무 아래. 생각에 잠겨 있던 리버는 이렇게 덧붙였다.
“Mon aradis, 수키는 나의 낙원이야.”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새가 지저귀고 있었고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매일을 행복하게 잠에 들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오래도록 기억될 무언가를 품에 가득 안은 채.
왜 이렇게 좋지?
이건 그 시절 입에 달고 살던 말이다.
--- pp.83~84

“생각나지 않아? 리버.”
낮, 잭은 그렇게 물었다.
생각난다. 당연히.
모든 기억이, 모든 감정이, 모든 표정이, 모든 손길이.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심장 어딘가 덜컥하고 걸리는 이 기분은, 이곳에 도착한 첫날부터 계속되고 있다.
눈을 감고, 다시 한번 기억 속 파편을 그러모은다.
부시시한 머리를 한 채 앞에 앉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나. 세차게 울어 대는 매미를 뒤로하고, 함께 포근한 이불을 덮고 있던 그는 새근새근 자고 있는 얌전한 새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 순간 사랑에 빠졌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내가 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진정으로 행복한지 돌아보던 그 순간.
--- pp.140~141

미래에서 온 사람 같다.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온갖 종류의 풀벌레 소리를 배경 삼아 앙트레로 나온 생채소를 아삭거리며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이 사랑은, 이 끝나지 않는 길고 긴 터널 같은 그리움은, 내가 그를 사랑하고 싶어 하는 감정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흐르는 강물처럼, 투명하고 푸르던 그의 눈. 내가 선택한 사랑. 우리의 10년 뒤 여름.
그날 밤, 그는 내 콧잔등 위로 옅게 돋아난 주근깨를 바라보았다. 별자리를 관찰하듯, 정성스럽고 소중한 눈길. 나는 왜인지 모르게 드는 부끄러운 기분에 괜히 입술만 씰룩대었다.
--- pp.142~143

나는 몰랐다.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좀 덜 지킬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모든 의심은 하늘을 향해 쏘는 화살과도 같았다는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나에게로 돌아왔다는 것을. 그래서 가장 아픈 사람도 나였다는 것을. 남은 것은 나의 못난 얼굴과 매일 밤 일기에 써 내려간 날이 선 문장들뿐이었다는 것을. 나의 사랑은 진작에 남프랑스 작은 마을, 엑상프로방스에 두고 왔다는 것을.
--- p.174

이제는 더 이상 기억해 낼 기억들이 없다. 고갈되었어. 일어났던 일들을 곱씹고 또 곱씹고, 프랑스 그 따뜻한 남쪽 마을에서 일어난 우리 추억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놓치지 않고 그 순간의 모든 것을 다시 되살리는 데에서 그리움이 달래지는 듯했는데, 이제는 어느새 무감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p.218

추억이 많은 곳에 다시 와 있다고 해서 딱히 힘들진 않았다. 그렇게 치면 내겐 이 도시 곳곳이 추억의 장소였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는 리버와 제일 처음 앉았던 벽면 자리에 다른 커플이 등을 기대어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귀엽다는 생각만을 했을 뿐이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간신히 탈출했다. 사랑에서.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했다.
빼곡하게 놓인 무수히 많은 술병들. 천장에 매달려 있는 말린 꽃과 와인 잔들. 기름 초가 뿜어내는 밝은 빛과, 그 빛이 유리잔 여기저기에 묻어 풍겨 대는 신비로운 분위기.
정말 그게 다인 줄 알았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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