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잖아요. 잠을 자는 게 무서워요.”
도둑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잠을 자본 적이 없다. 그래서 잠드는 게 무서운 게 어떤 것인지 몰랐다. 여자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다시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깨어 있는 것도 무서워요.”
--- p.128
“다 잊어. 꿈같은 거 기억하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
여자는 도둑의 말이 위로해주기 위해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이 어울리지 않는 도둑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도둑의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상관없어, 라고 대답할 때처럼 단호하고 단호한, 그런 확신이. 여자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눈물 때문에 더 피곤해졌다.
틱, 틱, 시계 소리가 여자의 작은 숨소리를 숨겼다. 틱, 틱, 도둑은 잠시 더 기다렸다. 틱, 틱, 도둑은 여자에게 다가갔다. 손끝을 이마에 뻗었다. 꿈이 느껴졌고, 꿈은 도둑의 손끝을 따라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꿈은 가만히 빛을 냈다. 도둑의 손길을 따라 유리병에 담긴 꿈이 출렁였다.
--- p.284
수집가는 유리병 마개를 손끝으로 건드렸다.
“적어도 일생의 자는 시간만큼을 차지하는 게 꿈인데, 시간을 금이라고 하지만, 그 시간 동안 흘러간 꿈을 두고 금이라고 하지 않잖아? 이상하지 않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거든. 한 재산 모으는 기분으로 모으고 있네.”
도둑은 가타부타 말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수집가는 입 끝만 슬쩍 올리며 웃었다.
“어차피 사람들은 자기가 꿈을 잃어버린 줄, 잊어버린 줄도 모르잖아? 그건 훔치는 게 아니지. 줍는 거지. 줍는 사람이 임자인 거야. 자네가 줍고, 나는 가지고. 난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 많은 꿈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거지. 그 자체가 기쁨이지.”
--- pp.345~346
“요 며칠 꿈을 마주 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의 나를 훔쳐보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 마주선 거울 같은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로요.”
여자는 한참을 더 훌쩍거리며 중얼거렸다. 꿈, 미래, 손, 치료, 의사, 교수, 바이올린, 무대 그리고 다시 바이올린, 그런 단어들이 섞인 말을 했으나 훌쩍거림과 머리끝까지 뒤집어써버린 이불에 묻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둑은 알 수 없었다. 그저 서 있던 그 자리 그대로 여자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 pp.360~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