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리가 토론에서 기꺼이 승자의 자리를 상대방에게 내줄 리 없다. 아마도 ‘내 말이 맞다’라고 자기 생각과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기라도 하듯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맥락 없는 헛소리를 하고, 꼬투리를 잡았다 싶으면 상대방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때로는 본질과 무관한 인신공격까지 일삼으며 기어이 이기고 싶어 할 것이다. 패색이 짙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아닌 척, 담대한 척, 심지어 자신이 이긴 것처럼 정신 승리로 무장하기도 할 것이다.
--- p.11
상대방의 주장을 본연의 의미범위 밖으로 끌어내라. 그리고 상대방의 주장을 가능한 한 보편적으로 해석하고, 가능한 한 넓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과장해버려라. 반면에 자신의 주장은 가능한 한 제한된 의미가 되도록 하라. 즉 가능한 한 주장의 의미범위를 협소하게 축소하라. 왜냐하면 주장은 보편적일수록 그만큼 더 공격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요령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논쟁의 쟁점이나 논쟁에서의 상황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 p.23
어떤 결론을 내리고자 할 경우 상대방이 당신의 결론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라. 오히려 대화하면서 당신의 전제들을 개별적으로 분산시켜 상대방이 자신도 모르게 당신의 전제들을 시인하게 만들어라. 안 그러면 상대방은 온갖 트집을 잡을 것이다. 만일 유감스럽게도 상대방이 당신이 내세운 전제들을 시인할 것 같지 않으면, 그 전제들에 대한 또 다른 전제들을 제시하라. 말하자면 전제에서 만들어진 결론이 다음 삼단논법의 전제가 되는 전 삼단논법(Prosyllogism)을 만들어라. 그러고 나서 순서를 따지지 말고 되는 대로 상대방이 이와 같은 여러 전제의 전제들을 시인하게 만들어라.
--- p.41
명제 자체로는 거짓이지만, 논쟁 상대방과 관련하면 참이 되는 명제를 내세워라. 그런 후 상대방이 사용하는 사고방식으로 반박해 수긍하게 하라. 왜냐하면 거짓된 전제들에서도 참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참인 전제들에서 거짓이라는 결과는 결코 나올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대방이 참이라고 여기는 또 다른 거짓된 명제들로 상대방의 거짓 명제들을 반박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논쟁할 때 상대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즉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연히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용해야 한다.
--- p.44
실제로 시인을 받아내려는 내용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면 상대방에게 한꺼번에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질문하라. 또한 상대방이 실제로 시인한다면 그걸 근거로 재빨리 반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해가 느린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제대로 쫓아오지 못하고, 또한 논증 과정 중에서 우리가 범할 수 있는 오류나 허점을 미처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다.
--- p.50
우리가 의도하는 결론에 유리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사실상 상대방의 대답으로는 절대 원하는 결론을 끌어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마치 상대방의 대답으로 결정적인 명제가 증명된 듯 말하고, 오히려 기세등등하고 뻔뻔하게 굴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 특히 상대방이 소심하거나 학식이 떨어질 경우, 또 당사자의 성격이 매우 뻔뻔스럽고 목소리가 클 경우, 이 방법은 아주 잘 먹혀들어갈 수 있다.
--- p.69
상대방이 전에 말하거나 시인한 것, 혹은 그가 칭송하고 인정하는 학파나 종파의 규정들, 또는 이 종파 신봉자들의 행동, 심지어 이 종파를 겉으로만 신봉하는 자들의 행동, 아울러 상대방 자신이 행동하거나 용인했던 것 등과 모순되지 않는지를 찾아내야만 한다.
--- p.74
어떤 논거가 언급되었을 때 상대방이 느닷없이 화를 내면, 우리는 이 논거를 집요하게 몰아붙여야 한다. 단순히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었다고 해서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방이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낸다는 것은 바로 그 논거가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렸다고 추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의 화를 불러일으킨 논거로 상대를 더 몰아세운다면 우리는 기대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훨씬 더 심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 p.99
이때 청중들은 대부분 순수하게 자력으로 확신했기에 우리의 견해에 동조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이성의 눈을 통해서도 대부분 부조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기름 없이 탈 수 있는 빛이 아니다. 오히려 이성은 열정을 먹고 자란다. 따라서 우리는 이 요령을 “나무를 뿌리째 뽑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은 이를 ‘유용성을 통한 논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p.136
홉스는 『시민론』의 제1장에서 이렇게 밝힌다. “큰 기쁨과 기분 좋은 유쾌함의 원천은 모두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그 실체보다 더욱 높게 생각한다는 데서 비롯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또 허영심에 상처를 입었을 때보다 더 쓰라린 상처도 없다(바로 여기서 “명예가 생명보다 중요하다”라는 것과 같은 어법이 나온 것이다). 이러한 허영심의 만족은 주로 어떤 면에서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교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대개는 정신력, 즉 이성의 힘과 관련해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한다.
--- p.150
“아무나와 논쟁하지 마라.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고, 결코 불합리한 것을 내세우지 않으며 불합리함을 부끄럽게 여길 줄 알 만큼 충분히 분별력 있는 사람과만 논쟁하라. 권위자의 절대적인 명령을 내세우지 않고 근거로 논쟁하고, 또 우리가 내세우는 근거에 귀를 기울이고 동의할 수 있을 만큼 분별력을 지닌 사람과 논쟁하라. 끝으로 진리를 높이 평가할 줄 아는 사람, 논쟁 상대방의 입에서 나왔더라도 정당한 근거라면 기꺼이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사람, 또 진실이 상대방 측에 있으면 자기 의견의 부당함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과 논쟁하라.”
--- p.152
논쟁은 각 개인의 머리, 즉 생각들이 충돌하는 것으로 서로에게 유익한 경우가 많다. 즉 우리는 논쟁을 통해 제 생각을 바로잡기도 하고, 또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려면 두 논쟁 당사자의 학식이나 이성의 능력이 상당히 엇비슷해야 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에게 학식이 없으면, 그는 논쟁을 다 이해하지 못해 대화의 수준을 맞추지 못할 것이다. 혹은 이성의 능력, 즉 지력이 없으면 논쟁으로 생긴 분노가 자칫 그를 부정직한 방법과 속임수를 쓰게 하거나, 또는 야만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들 우려가 있다.
--- p.153
이렇듯 한 명제의 객관적인 진실, 그리고 논쟁자와 청중들의 승인을 받은 해당 명제의 타당성, 이 두 가지는 서로 별개다(토론술은 후자를 지향한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날까? 그것은 ‘인간이란 존재가 선천적으로 사악하다’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만약 인간의 본성이 사악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정직하다면, 우리는 어떤 토론에서건 오로지 진실만을 밝히려 할 것이다. 그리고 토론에서 밝혀진 ‘진실’이라는 결론이 자신이 처음에 내세운 주장이나 상대방의 주장, 즉 그 어느 쪽의 주장과 부합하든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애초에 ‘누구의 주장이 옳은 것이냐’라는 문제는 아무래도 상관없거나, 적어도 매우 부차적인 일에 불과할 것이다.
--- p.161
토론술 자체는 본래 모든 종류의 공격, 특히 부정적인 공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데 있고, 또 스스로 모순되거나 상대방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주장을 직접 공격할 방법을 가르치는 데 있다. 우리는 객관적인 진리를 찾는 것, 그리고 자신의 명제를 진리로 관철하는 기술을 명확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완전히 다른 하나를 증명하는 것이 과제이고, 판단력과 숙고, 경험을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후자는 토론술의 목적에 해당한다.
--- p.171
상대방이 구사하는 부정직한 요령들에 맞서려면 우리도 부정직한 요령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이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무기로 상대방을 물리치려면, 우리에게도 당연히 그러한 무기들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토론술에서는 객관적인 진리를 쉽게 도외시하 거나 우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토론술을 자신의 주장을 방어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방법이라고 봐야 한다. 아울러 논쟁할 때는 대부분 객관적인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서, 토론술의 규칙에서 객관적인 진리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없다.
--- p.1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