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로동혈이란 부부의 사이가 좋아,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구멍을 같이 하여 묻히려고 맹세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해면동물의 한 종류에 이런 이름의 동물이 있다. 모양은 수세미오이 비슷하고, 넓은 위강(胃腔)을 가졌으며, 아래쪽 끝머리는 긴 근모(根毛)를 이루고 심해 바닥에 서 있는 동물이다. 위강 속에 자웅 한 쌍의 두 마리 새우가 들어 있다. 자웅이 같이 들어 있다 해서 처음에는 이 새우를 가리켜 해로동혈이라 했다.
누가 맨 먼저 이 동물에게 해로동혈이라 이름을 붙였는지는 몰라도 원래는 부부의 화합을 표현하는 말이요, 출전은 〈시경〉의 ‘패풍·격고’, ‘용풍·군자해로’, ‘위풍·맹’, ‘왕풍·대차’ 등의 장이다. 모두 하남성 황하 유역에 있던 나라들의 민요이다.
‘격고(擊鼓)’는 출정한 병사가 고향에 돌아갈 날짜도 모르고 애마와도 죽음의 이별을 한 후 전장에서 방황하며 고향에 있는 여인을 생각하며 부르는 노래로, 제4장에,
죽어도 살아도 함께 하자고 너와 함께 맹세하였지.
너의 손을 꼭 쥐고
백발 머리 될 때까지라도 하고 서로 맹세하였지.
이 노래는 ‘아, 그것도 바로 그대였거니!’ 하고 끝맺고 있다. 슬픈 병사의 노래다. ‘군자해로’의 시는 좀 색다른 노래로 귀부인을 비꼬는 내용이다. 그 제1장에,
그대와 함께라면 백 년 같이 살겠다면서
머리에는 옥비녀,
부드러운 자태로 산과 같이 물과 같이
화려한 의복도 보기 좋다만,
그대 하는 짓이 좋지 못하면 그때 나는 어이할꼬.
입으로는 해로동혈을 원하고 남편에게 정순(貞順)과 애정을 보이면서도 실제 행실이 흔들린다면 어찌할 것인가 하는 노래다. ‘맹(氓)’은 해마다 찾아오는 실 장수의 꾐에 빠져 실 장수의 아내가 된 여자의 슬픈 이야기를 노래한 것.
사나이는 여자가 시집올 때까지는 상냥한 태도로 속삭이다가 한 번 시집오자 한결같은 여자의 마음을 짓밟고 난폭한 행동을 예사로이 하며, 다른 여자와의 사랑을 꿈꾼다. 아내로서 집안일에 몸을 바쳐 일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사나이의 그 마음만은 슬프다.
그리하여, ‘그대와 함께 늙으려 했는데 늙어서는 나에게 원망케 하네’ 하고 여심의 애처로움을 노래한다. 이 노래는 지치고 상처 난 마음을 토로해 마을 처녀들에게 주의하라는 노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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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기의 중평 6년, 장군 동탁은 갓 즉위한 황제 변(辯)을 폐하고 진유왕 협(協; 헌제)을 세우고 스스로 재상이 되어 포악한 정치를 했다. 이로 말미암아 천하는 어지러워지고 한동안 군웅할거의 시대가 계속되었으나, 차츰 천하의 추세는 조조, 손권, 유비에게 삼분되어 소위 삼국 정립의 시대로 옮아갔다.
이 가운데서 가장 뒤떨어진 것은 유비였다. 손권이 강동을 얻고 있을 때 유비는 아직 이렇다 할 지반을 굳히지 못했었다. 그에게는 관우, 장비, 조운 등의 용장은 있었지만, 함께 일을 꾀할 책략의 인물이 없었다. 이를 통감한 유비가 이 사람이라면 하고 생각한 것이 제갈공명이었다.
제갈공명은 전란을 피해 양양의 서쪽 융중산 와룡강이라는 언덕에 초가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유비는 예를 갖추어 찾아갔으나, 공명은 집에 없다고 하여 만나 주지 않았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갔으나 역시 만나지 못했다. 관우와 장비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허리 굽혀 찾아가느냐고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유비는 세 번째 공명을 찾아가서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
“이미 한실(漢室)은 기울어져 간신들이 천하를 도둑질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의 힘도 돌아보지 않고 천하에 대의를 펴려고 뜻하나, 아는 것이 없고 이렇다 할 일도 못 한 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아직 뜻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아무쪼록 힘을 빌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소위 삼고의 예[三顧의 禮]를 다하여 유비는 공명이 세상에 나와 주기를 간절히 청한 것이다. 공명도 자기를 알아주고 대우함을 고맙게 생각하여 유비를 위해 일할 결심을 했다. 비록 초가집에 들어 있기는 했지만, 공명의 세상에 대한 바른 눈은 유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예리했다. 유비의 물음에 답하여 공명은 한실 부흥의 계책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주와 익주의 요해(要害)를 눌러 이곳을 근거지로 하고, 서쪽과 남쪽의 만족을 어루만져 뒤돌아볼 우려가 없게 한 다음, 안으로 정치를 잘하여 부국강병을 꾀하고 밖으로는 손권과 손을 잡아 조조를 고립시켜 때를 보아 조조를 치는 일, 이것이 나의 한실 부흥의 계책이오.”
유비의 신하가 된 공명은 이 기본 정책에 따라 착착 한실 부흥의 걸음을 계속해 나아갔다. 유비는 공명을 스승으로 받들고 침식을 항상 같이했다. 공명도 자기의 재능을 다 기울여 유비를 위해 힘을 썼다.
처음에는 관우와 장비가 젊은 공명에 대한 유비의 대우가 지나치다고 하여 공명을 비난했었다.
그때 유비는 이렇게 말했다.
“공명을 얻은 것을 나는 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도 같다고 하고 싶다.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하지 말라.”
임금과 신하 사이가 친밀한 것을 가리켜 ‘수어의 교’라고 하게 된 것은 여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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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조나라가 연나라의 기근 등의 불행을 기회로 침략하려 했는데, 소왕으로서는 많은 병사들을 제나라에 보낸 때이기도 하고, 또 조나라와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소대를 불러 조왕을 달래어 납득시켜 달라고 했다.-중략-
소왕의 부탁으로 조나라의 혜문왕을 찾아간 소대는 득의만만하게 말했다.
“저는 오늘 귀국에 올 때 역수(易水; 산서에서 하북으로 흘러 연과 조의 국경을 이루는 강)를 지나왔사온데, 얼핏 보니 방합(蚌蛤; 조개 이름)이 입을 벌리고 햇볕을 쬐고 있었사옵니다. 거기 황새가 날아와서 그 조개 속을 먹으려고 주둥이를 넣었다가 이에 놀란 방합이 입을 꼭 다무는 바람에 황새는 주둥이를 물려 빼내지를 못하게 되었사옵니다. 이제 어떻게 되나 하고 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었더니, 황새가 하는 말이 ‘이대로 오늘도 비가 오지 않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너는 말라 죽을 거야’ 합니다. 방합도 지지 않고 ‘내가 오늘도 놓아주지 않고, 내일도 놓아주지 않으면 너야말로 죽을걸’ 하고 버텼습니다. 두 쪽이 모두 고집을 세우고 다툴 뿐 서로 화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마침 어부가 왔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방합과 황새는 함께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사옵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지금 연을 치려 하고 있사오나, 연이 방합이라면 조는 황새라 할 수 있습니다. 연과 조가 부질없이 다투어 백성들을 피폐하게 하면, 저 강대한 진이 어부가 되어 이(利)를 보게 될 것이 아니옵니까.”-중략-
여기서 ‘어부지리’라는 말이 생겼다. 그리고 ‘방휼지세(蚌鷸之勢)’ 또한 두 편이 다투고 있을 때 제삼자에게 이익을 빼앗기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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