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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꼭 알아야 할 일본 시인

인문독회-0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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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40*210*20mm
ISBN13 9791193509074
ISBN10 1193509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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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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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통적인 7, 5조의 시적 형식을 지키면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서양에서 수입된 새로운 시 정신을 담아 신체시를 창작하여 주목을 받은 시인이 있었다. 그는 서양의 시, 특히 영시에서 배우고 한편으로는 일본의 전통시 와카(和歌)와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 이후의 하이카이(俳諧), 두보·이태백의 한시 등 동양의 서정에서 생명을 받아들였다. 서양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하나로 융합해 새로운 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 것이다. 바로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이하, ‘도손’이라 함)이다. 이것이 일본 문학사나 일본 문학 관련 평자들이 도손을 가리켜 서술하는 일반적인 평가다. 그야말로 그는 일본 근대시의 여명을 알리는 존재였고, 근대시의 일인자였다.
이 글에서 한국인에게 번역하여 알리는 도손의 시는 「첫사랑(初戀)」, 「치쿠마강 여정의 노래(千曲江旅情の歌)」, 「야자 열매(椰子の?)」의 3편이다. 이들을 선별한 것은 작품의 성격상 일본 근대시의 태동과 함께 동양사상이나 일본의 전통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불어 일본인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였다.
--- 「일본 근대시의 개척자 시마자키 도손의 시」 중에서

일본인들에게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에 태어난 시인 중에서 ‘국민 시인’으로 불릴 만큼 가장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한 명 꼽으라고 하면, 기타하라 하큐슈(北原白秋, 1885-1942, 이하 ‘하쿠슈’라고 함)가 가장 많이 언급될 것이다. 즉, 그는 일본의 근대 이후의 시단에 시인으로서의 천재적 재능을 펼친 인물이었다.
일본 문학사에 나타난 하쿠슈는 우에다 빈(上田敏, 1874-1916)의 『해조음(海潮音)』(1905), 나가이 가후(永井荷風, 1879-1959)의 『산호집(珊瑚集)』(1913)과 같은 번역 시집의 영향을 받아, 1910년대를 전후로 탐미적 경향을 띤 상징시를 쓴 시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1910년대는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1868-1912) 말기와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2-1926) 초기에 해당한다. 언급된 이들 번역 시집은 유럽의 상징시 풍의 작품들을 수록한 것으로, 당시 일본이 받아들인 서구 상징시의 본격적인 수입물이다.

또한, 하쿠슈는 관능(官能)의 해방을 추구한, 이단적인 상징시 풍의 작품들을 발표하여 시단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주었다. 이는 그가 일본 문단을 화려하게 장식한 근대 시사의 대시인으로 평가받는 계기가 된다, ‘탐미파’, ‘상징시’, ‘이국정취와 도회 문명에 대한 동경’, ‘언어의 마술사’ 등이 그의 시를 대변하는 핵심어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그의 문학적 업적이 탁월하여 널리 알려져 있으나, 한국인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여, 시인의 문학적 이력과 연보를 살펴 그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하쿠슈는 1885년 후쿠오카현(福岡?) 야나가와시(柳川市) 출생으로,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중퇴하였다. 19세 때인 1904년 잡지 《문고(文庫)》에 기고하였으며, 《명성(明星)》에 시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2세 때인 1909년, 미키 로후(三木露風, 1889-1964), 기노시타 모쿠타로(木下?太?, 1885-1945) 등과 문예 잡지 《스바루(スバル)》를 창간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사종문(邪宗門)』(1909), 『추억(思ひ出)』(1911), 『도쿄 경물시 및 그 외(東京景物詩及其他)』(1913), 『수묵집(水墨集)』(1923) 등이 그의 대표 시집들이다.
그는 시집 외에도 가집(歌集)인 『동백꽃(梧桐の花)』(1913), 『참새 알(雀卵)』(1921)을 출간하는 등, 가인으로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시인이 생전에 간행한 시집은 26권, 가집은 15권, 동요집은 32권, 가요집은 20권, 산문집은 29권이다. 이렇게 다작에 이를 정도로, 그는 메이지 이후 일본 시단에 국민 시인으로서의 명성에 걸맞은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1941년 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으며, 57세 때인 1942년, 당뇨와 간장병 악화로 영면하였다.
--- 「일본의 국민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의 시」 중에서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 1883 -1956, 이하 ‘고타로’라고 함)는 일본 근대 시단에서 그 명성이 매우 높은 시인이다. 그를 국민 시인의 반열에까지 올려놓는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우선, 그가 시인이며 조각가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에 주목한다. 메이지, 다이쇼, 쇼와에 걸친 일본 근대사의 격변기에 시 726편을 포함한 7권의 시집과, 단가(短歌), 하이쿠(俳句), 번역, 평론 등, 문학 전반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조각가로서도 조각 140점, 회화 188점을 완성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고타로가 일본 근대 시사에서 극히 이례적인 예술인으로 평가받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본 문학사는 시인으로서의 고타로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크게 보면, ‘이상주의 경향의 시작(詩作)’, ‘인도주의적 정열을 강하게 노래함,’ ‘알기 쉽고 명료한 구어 자유시의 추진에 힘을 쏟은 시인’ 등으로 요약된다. 더하여, 그의 부인 나가누마 치에코(長沼智?子, 1886-1938)와의 연애와 결혼 생활을 시나 글로 발표했다는 사실도 고타로의 이미지에 크게 기여한다. 40여 년간에 걸친 사랑의 노래를 치에코 사후 『치에코초(智?子抄)』(1941)라는 시집으로 출간하여, 지금까지도 독자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 「이상주의적 시 세계와 독특한 개성 다카무라 고타로의 시」 중에서

일본 문학사에 기여한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 1886-1942, 이하 ‘사쿠타로’라 함)의 문학적 업적은 어떤 것일까. 자주 거론되고 으뜸으로 평가받는 것은 그가 일본 시단에 구어 자유시를 예술적으로 완성한 시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에게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0-1926)에 근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여 ‘일본 근대시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붙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일본 문학사에서 말하는 구어 자유시란 문어체로 쓰인 시가 아닌 시, 즉, 고전적인 말을 사용하여 지은 시를 가리키는 문어시에 대한 대립 개념이다. 다카무라 고타로(高村光太郞, 1883-1956)에 의해 추진된 구어 자유시는 사쿠타로에 의해 그 완성을 보게 된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그의 시를 읽을 때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단순히 구어 자유시의 영역을 넘어 ‘언어가 가진 음악성을 살렸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출간한 시집마다 새로운 시 형태에 자신만의 ‘독자적인 시론을 담아내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문학적 업적으로 사쿠타로의 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시인인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 1900-1964)를 비롯해, 미야자와 겐지(宮?賢治, 1896-1933),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 1894-1982)와 같은 후대의 여러 시인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 「일본 구어 자유시의 완성자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 중에서

일본 시단에서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 1894-1982, 이하 ‘준자부로’라고 함)를 둘러싸고, ‘일본에 주지주의 시를 도입하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인물’, ‘근대시를 현대시로 변용시킨 최대의 시인’, ‘현대시의 대종(大宗)’과 같은 수식어가 주류를 이루는 것은 그의 문학사적 평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에게 특히, ‘대종’이란 호칭이 붙게 된 것은 일본 문학사에 큰 바탕이 된 인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郞, 1886-1942)가 구어시의 완성자로 평가받으며 일본에 근대시의 뿌리를 내렸다면, 준자부로는 기존의 독자적인 쉬르레알리슴(surrealism) 이론을 전개하며 모더니즘 문학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준 인물이다.

1928년(쇼와 3년)을 전후로 일본 시단에 일어난 중요한 변화의 하나로 꼽을 만한 것은 모더니즘 시의 출현이다. 모더니즘 시의 순기능은 당시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구(舊) 시단과 프롤레타리아 시파에 대항해 새로운 시의 형성과 방법론을 제시하고 추구했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하루야마 유키오(春山行夫, 1902-1994)가 편집한 시 계간지 《시와 시론(詩と詩論)》 창간이다. 신 산문시·단시, 쉬르레알리슴 시, 주지주의적인 시 등, 새로운 시의 형태가 생겨난 것은 이 무렵. 이 《시와 시론》의 중심적 존재이며 이론적 지도자가 된 사람이 바로 준자부로였다. 그는 독자적인 쉬르레알리슴 이론을 전개해서 모더니즘 문학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쉬르레알리슴은 흔히 말하는 초현실주의를 가리키는 용어, 이 쉬르레알리슴 시는 꿈·이미지의 세계가 시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이미지의 예술적 재구성에 의한 감각적인 세계의 표현을 추구했다. 초현실적인 자유로운 상상을 중시하였고, 극히 주관적 경향이 강하였다. 당시 발간된 이러한 경향을 띠는 모더니즘 시집의 대표적인 것이 준자부로의 『Ambarvalia』(1933)이다. 기타카와 후유히코(北川冬彦, 1900-1990)의 『전쟁(戰爭)』(1929), 안자이 후유에(安西冬衛, 1898-1965)의 『군함말리(軍艦茉利)』(1929),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 1900-1964)의 『측량선(測量船)』(1930)도 그러한 시적 경향에 부합하는 업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일본 시단에 주지주의 시를 도입한 니시와키 준자부로의 시」 중에서

다나카 후유지(田中冬二, 1894-1980, 이하 ‘후유지’라 함)는 지금까지 필자가 다루었거나 앞으로 다룰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5-1942), 하기와라 사쿠타로(萩原朔太?, 1886-1942), 니시와키 준자부로(西脇順三?, 1894-1982),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 1900-1964)와 같은 일본 근현대를 대표하는 시인들과 비교해서 ‘문학사적 의미 부여’라는 시각에서 보면, 그 무게감이 다소 떨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만약 일본인을 대상으로 ‘어느 시인을 좋아하는가’라는 설문조사가 있다면, 단연 선두권 순위에 자리 잡을 것이다.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인기 있는 시인이라는 뜻이다.

그럼, 후유지가 일본인으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그는 ‘향수’를 주제로 하거나 그와 관련된 것을 소재로 하여, ‘자연이나 생활에 바탕을 둔 시작(試作)’에 천착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시편들을 양산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가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 여러 시인이 현대적 감각의 시를 써왔던 것에 비해, 후유지는 시대의 변화라는 거친 파도에도 휩쓸리지 않을 만큼의 소박하고 검소한 작품으로 일관했다. 물론 그러한 성격의 시에는 시인으로서의 섬세한 감각과 함께 영속적인 신선함과 견고함이 굳게 자리 잡고 있다.
--- 「한국의 백석 시인에게 영향을 준 일본 시인 다나카 후유지의 시」 중에서


미요시 다쓰지(三好達治, 1900-1964, 이하 ‘다쓰지’라고 함)는 일본 근현대 시단(詩壇)을 대표하는 국민 시인으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다. 일본 문학사는 그가 일본의 문화적 전통에 충실한 정서와 섬세한 감각을 바탕으로 풍부한 서정성을 펼쳐 보였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 근대 시의 영향을 받아 주지적 경향의 작품을 보여 준 시인이라는 사실에 시적 위상을 부여한다.
필자는 “미요시 다쓰지는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5-1942) 사후, 시단적(詩壇的) 평가와는 별도로 문학 일반의 독자로부터 국민 시인적 감정을 갖게 했다”(小川和佑(1976), 『三好達治硏究』, 敎育出版センタ?, p.183)는 평가와, “국민 시인이라는 말이 있다. 일찍이 기타하라 하쿠슈가 그렇게 불렸다. 그가 죽은 후에 국민 시인으로는 미요시 다쓰지를 꼽을 수 있다.”(安西均(1978), ?三好達治と『四季』? 『現代詩物語』, 有斐閣, p.110)는 발언에 주목하고 공감한다. 이러한 평가는 다쓰지가 일본 시단에서 차지하는 문학사적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를 가리켜 ‘메이지(明治)·다이쇼(大正)·쇼와(昭和) 3대의 제1의 시종(詩宗)’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그럼, 한국인의 입장에서 이 시인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쓰지는 한국인의 정서와도 잘 어울리는 서정성과 주지적 경향의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 및 한국인’과 관련된 작품을 다수 남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다쓰지와 한국과의 인연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 「기타하라 하쿠슈 이후의 일본 국민 시인 미요시 다쓰지의 시」 중에서

한국에 일본 시가 잘 소개되지 않는 탓에 우리에게는 아유카와 노부오(鮎川信夫, 1920-1986, 이하 ‘아유카와’라고 함)라는 시인이 다소 생소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 문학사에서 전후(戰後) 시단을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유카와 노부오’라고 답하는 독자들이 상당히 많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그는 일본의 전후 시단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시 잡지 《황지(荒地)》의 이론적 지도자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태평양 전쟁으로 한때 단절된 현대시의 전개를 이론과 창작을 통해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 헌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 문학사에 기여한 그의 문학사적 업적의 핵심이다.

언급한 《황지》는 전쟁 전의 모더니즘 시를 비판하고, 시에서 의미를 존중하자는 주장과 함께, 영국의 시인 겸 평론가인 T.S. 엘리엇(1888-1965)이 말하는 ‘현대는 황지(荒地, 거친 땅)다’라는 인식하에 현대문명의 위기를 날카롭게 지적한 시 잡지였다. 이런 까닭에 일본 시단에서는 전후 문학의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된다. 간행 시기인 1939년-1940년, 1947년-194년, 1953년-1958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잡지의 시대적 배경에는 전쟁과 그 체험이 내포되어 있다. 그로 인해, 현대에 있어서의 삶의 의미를 묻는 윤리적 시작 태도가 생겨난 탓에, 특히 《황지》는 당시 전쟁 전후라는 시기에 시적 암흑기를 겪었던 시인들에 의해 복간되고 창간된 시 잡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아유카와는 다무라 류이치(田村隆一, 1923-1998), 구로다 사부로(黑田三郞, 1919-1980)와 함께 이 그룹의 중심인물이었다. 시인의 전쟁 책임을 문제 삼은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 1924-2012) 등도 《황지》와 함께했다.
--- 「개인적 체험의 보편화 아유카와 노부오의 시」 중에서

일본의 여류 시인을 대표하는 한 사람인 시라이시 가즈코(白石かずこ, 1931- , 이하 ‘시라이시’라고 함)는 일본에서 그 인지도가 매우 높고 일본 시단과 대중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활동하고 있는 이 시인의 시 세계가 보여 주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유분방하다는 것이다. 다양하게 시의 스타일을 시도하여 음악성도 있고 감각적인 작품도 많다. 또한, 해외 시인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일본에만 정주하지 않는 활동 성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일본의 풍토로부터 초월한 신화적인 시적 세계는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자질을 개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리이시가 이러한 시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은 그의 삶의 이력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그는 1931년 캐나다 벵쿠버 태생으로 그곳에서 성장했다. 일본으로 들어와 살게 된 것은 일곱 살 때의 일. 일본의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나, 무미건조한 교과서나 군국주의 교육에 실망한다. 14세 때인 1945년 도쿄대공습 후, 아버지의 고향 마쓰야먀(松山)로 피신하여 살았는데. 그때 여학교에서 받은 집단 공격으로 이른바 ‘검은 양(?い羊)’ 경험을 하게 된다. ‘검은 양’이란 집단 안에서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보이거나, 결점을 가진 사람에 대해서 사용되는 말로, 집단 따돌림을 받는 것, 혹은 그런 사람을 가리킨다. 이러한 문화 환경과 이방인으로서의 체험이 이후의 시라이시의 시 세계에 영향으로 작용한다.

학력은 와세다대학 문학부 졸업이다. 본명은 시라이시 가즈코(白石嘉壽子)이나, 일본여자대학부속고교 시절이던 1948년에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1909-1948)의 『사양(斜陽)』의 여주인공 이름과 연관 지어 히라가나 표기인 ‘시라이시 가즈코(白石かずこ)’를 자신의 팬네임으로 한다. 18세에 와세다대학 문학부에 입학(1949)하였으며, 재학 중에 시인 기타조노 가쓰에(北園克衛), 1902-1978)의 시 잡지 《VOU》 클럽에 참가(1951)하여 그의 지도로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는다. 더불어, 재학 중에 모더니즘 성향이 강한 첫 번째 시집 『달걀이 내리는 거리(卵のふる街)』(脇立書店, 1951)를 간행하였다. 그러나 22세가 되기 직전 《VOU》와 결별하고 결혼을 하였으며, 9년간에 이르는 시적 침묵기를 보낸다.

이후 뚜렷한 시적 활동을 전개하여, 『범의 유희(虎の遊?)』(1960), 『이제 더 이상 늦게 와서는 안 돼(もうそれ以上おそくやってきてはいけない)』(1963), 『오늘밤은 거친 모양(今晩は荒模?)』(1965), 『시라이시 가즈코 시집(白石かずこ詩集)』(1968), 『성스런 음자의 계절(聖なる淫者の季節)』(1970), 『한 척의 카누, 미래로 돌아오다(一?のカヌ?,未?へ?る)』(1978) 등의 시집으로 이어진다. 그 외에 많은 시집과 번역가로서도 활동하여 적지 않은 번역서도 출간하였다. 특히, 남녀의 성(性)을 다루며 인간 생명의 근원을 찾는 작품들은 일본인에게 널리 읽혀, 지금도 일본을 대표하는 여류 시인으로 그 이름이 높다. 요미우리 문학상(讀賣文學賞) 등을 수상하였다.
--- 「여성으로서의 자기 성찰 시라이시 가즈코의 시」 중에서

만약, 현존하는 일본 시인 중에서 한국인에게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 1931- , 이하 ‘다니카와’라고 함)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그는 한국인의 가슴 속에 작은 물결처럼 서서히 파고들고 있는 시인이다. 더불어, 다니카와의 시는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슬로바키아어, 덴마크어, 중국어, 몽골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일본 시인 중에서는 높은 지명도를 자랑한다. 전후 시(戰後詩)의 거성으로 손꼽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다니카와 시는 어떤 성격을 가질까. 저명한 평론가이며 시인인 오오카 마코토(大岡信, 1931- 2017)는 그의 시적 특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감수성 자체의 가장 엄밀한 자기표현’, ‘감수성 자체를 수단으로 하며 동시에 목적으로 하는 시’, 그 전형적인 시인으로 다니카와를 들 수 있다. 이러한 ‘감수성 그 자체를 축제로 하는 시’는 그 이전의 세대인 아유가와 노부오(鮎川信夫, 1920-1986)·다무라 류이치(田村隆一, 1923-1998)등과 대비되며, 다니카와와 같은 시인들의 세대는 ‘무엇보다 주제(主題)의 시대였던 《황지(荒地)》파나 《열도(列島)》파에 대한 안티테제(Antithese)로써 출현했다.(「戰後詩 槪說」, 『現代詩 大系』 解說, 思潮社, 1966-67)고 말하고 있다.”

이 문장은 사토 요이치(佐藤洋一)의 논문(「谷川俊太郞の詩法」, 『愛知敎育大學硏究報告 48』(人文·社會科學編), 1999, p.228)에서 빌린 것인데, 여기서 안티테제는 ’정반대, 대립 명제(對立命題)‘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바꿔 말한다면, 말(언어)의 세계로 한층 더 깊이 잠입하는 것이 시의 목적 그 자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그러한 성향의 시를 쓴 시인들은 다니키와를 비롯해 가와사키 히로시(川崎洋, 1930-2004),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1926-2006) 등을 들 수 있다. 그런 성향을 나타내기에 그의 시는 아이가 읽고 즐길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실험적인 시풍까지 폭넓은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 「전후 시(戰後詩)의 큰 별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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