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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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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152*225*20mm
ISBN13 9791192828268
ISBN10 1192828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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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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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으니 웨이터가 4인분을 더 가지고 와서 불판을 갈고 다시 구워서 가위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놓고 갔다. 진우는 여전히 잘 먹었다. 갈비를 다 먹고 냉면을 먹고 후식까지 먹었다. 진우는 처음으로 맛본 경험이어서 모든 게 신기하고 마음속은 즐거움으로 충만했다. 식사가 끝나고 식당을 나와 정원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집에 와서 모두 누워서 낮잠을 잤다. 진우는 잠은 오지 않고, 지금 자기가 누리는 이 평화롭고 따뜻한 가족애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 보는데도 친부모는 양부모와 분명히 다른 점이 있었다. 피를 나눈 가족들이 주는 감정은 뭐라 한마디로 말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것이었다. 이렇게 혈육의 정을 처음 느껴보는 진우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늘이 청명하고 눈이 부셨다.
---「특별한 여행」중에서

두 달 반 만에 세 나라에 흩어져있는 작품 삼십 점의 그림 소재를 파악하게 되어 일본, 중국, 프랑스 세 나라에 가서 바로 아버지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사진을 찍어올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찾은 장은수 화백이 남긴 그림은 총 백 이십 점이었다. 물론 어디에 더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것만으로 정리해야 했다. 그림의 대부분은 풍경화였고 나머지는 한옥도 있고, 궁궐도 있고 풍속화도 있고 인물화도 있었다. 아직 세상에 내놓지 않았던 작품이 사십오 점이나 있어 우선 장은수 화백 유작전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잊혀진 화가지만, 오늘에 살려내야 했다. 일제 말 조선국전에서 특선을 한 화가로서 국제적으로도 이름을 알린 화가로서의 장은수를 제대로 알려야 했다. 현대 한국화의 초기 화가로서 충분히 다시 살려낼 만했다. 예진이 세 번이나 이용했던 창조화랑에서 6개월 뒤에 전시회를 하기로 예약을 했다.
---「화가의 딸」중에서

아버지는 오늘도 족보 만드는 일에 매달리신다. 각 문중에서 받아 온 자료를 정리하여 넣어야 할 자리를 찾아 조심스럽게 넣으신다. 가로세로 어느 것 하나만 잘못되어도 낭패이므로 매우 신중하게 작업을 하신다. 지금처럼 컴퓨터로 하는 시대가 아니었으므로 족보를 만드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고 까다로운 일이다. 연세가 일흔둘,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족보의 파보라도 당신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듯하다. 박 씨는 워낙 대성이고 역사도 길므로 대동보는 아예 엄두도 못 내고, 중시조인 밀성대군 파보조차 내기 어렵다.
---「운명」중에서

오랜만에 사우나에 갔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잠이 쏟아져서 깜빡 졸고 났더니 머리도 맑아지고, 눈도 더 밝아진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사우나를 하고 집에 오니 마치 새집에 오게 된 것 같이 가슴이 설렜다. 참으로 오랜만에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영혼이 푸르러지는 것 같았다. ‘그렇지, 푸른 영혼’ 친정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대학에 합격한 걸 자랑할 요량이었다.
---「푸른 영혼」중에서

‘고진감래’라 했던가?’드디어 학생 생활이 끝나게 되었다. 세희 준호 부부가 나란히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니 이제야 어깨가 활짝 펴졌다. 이제 시어머니도 더 이상 손자 타령을 하시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독립하고 모든 면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니 감개무량했다. 천지가 시커멓던 태백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살았던 자신이 서울에 와서 좋은 사람 만나 결혼도 하고 딸도 둘이나 낳고 자기와 남편이 모두 박사 되고 교수 됐으니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었다. 그사이 큰딸이 S대학에서 석사를 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거기 가서도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하는데, 별로 돈 보내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중에서

사실 인혜는 수제비를 매우 싫어했다. 우선 밀가루 음식이 체질에 안 맞았고, 수제비는 입에 안 맞았다. 그럼에도 수제비를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제비는 한끼에 10센트면 먹을 수 있었다. 쥐꼬리만한 장학금으로 미국 올 때 빌렸던 비행기표값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고, 유학 첫달부터 임신을 하는 바람에 할부로 중고자동차를 사고 매달 갚아야 하니 절대 생활비가 부족했다. 인혜는 아기를 낳고 산후 3주일만에 대학 기숙사 식당에서 일을 해야 했다. 인혜는 자기 머리와 남편 머리도 잘라야 했고, 유학 5년간 햄버거도 한 번 못 사 먹었다. 당시 햄버거는 95센트였는데, 그걸 사 먹을 돈이 없었다. 무조건 한끼에 1,20센트로 살아야 했다.
---「어느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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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박영순 교수를 분꽃 이미지로 수용하는 데는 나 나름의 연유가 있다. 잘들 아는 것처럼 박영순 교수는 국어학과 한국어교육에 매진하다가, 정년과 함께 소설의 길로 들어서서 장편 소설 4권과 단편집 3권을 낸 짱짱한 소설가다. 그 나름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특징적 스타일이란 인간에 대해 애정 어린 시각으로 소설을 전개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삶을 사랑하는 방법 모색과 실천이 박영순 교수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소설가 박영순의 실제 삶과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을 듯하다. 물론 생애와 작품을 일대일 대응하는 것은 무리를 수반한다. 작품에는 소재가 다양하지만 삶을 사랑하는 자세가 일관되게 배어들어 있다.
- 우한용 (서울대 명예교수)
소설가 박영순의 문학세계는 단편마다 개별적 서사로 이뤄져 있지만 가족사의 희로애락을 다룬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돌격대’로 대변되는 북한 인민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통일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정화수 떠놓고 기도해주시던 어머니,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기도와 고백은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이런 어머니를 갖지 못한 입양아의 문제도 함께 짚었다. 자식들을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이민을 갔지만 세상사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도 돌아보게 한다. 작품마다 죽음이 나오는데, 이건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한계, 신의 영역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운명을 통하여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자각해야 함을 보여준다. 소설가 박영순은 노력파이고 학구파다. 폭넓은 취재로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소설을 쓰므로 읽는 재미와 함께 세상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기도 한다. 이 소설집에서는 ‘고진감래’나 ‘진인사대천명’처럼 일심으로 노력하는 인간상을 만날 수 있게도 해준다. 박영순의 소설에서는 작은 우연이 모여 기적을 만드는 짜릿한 재미도 선사한다. 이 소설집의 매력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 신승민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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