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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미래를 세탁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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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미래를 세탁해드립니다

정욱 | 북다 | 2023년 11월 2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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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272쪽 | 330g | 133*200*20mm
ISBN13 9791170610502
ISBN10 11706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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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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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문득 태오의 얼굴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한겨울에 눈도 아니고 비라니. 게다가 이런 미지근한 감촉이라니. 태오는 이런 날씨마저 세상에서 엇나가버린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아 쓰게 웃었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제 곧 새해를 맞이하는 카운트다운을 시작할 모양이었다. 태오는 사람들이 세는 숫자를 들으며 다리에 힘을 줬다. 온몸이 떨려와 이를 악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5! 4! 3! 2! 1!
--- p.11~12

‘리셋’,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 세계 사람들이 5년 전 과거로 돌아와버린 그날을 그렇게 불렀다. 초기화 버튼을 누른 것처럼 어느 순간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왔으니 퍽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전 세계 정부와 과학자들이 리셋의 원인을 찾기 위해 달라붙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2018년 1월 1일로부터 벌써 1년 하고도 수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다들 바뀐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 p.25

힘없는 중소 기획사의 아이돌들이 그렇듯 처음에는 방송 출연도 쉽지 않은 처지여서 트윙클파티는 데뷔 후 바로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여러 예능 출연과 꾸준한 음원 발매로 조금씩 인지도를 늘려갔다. 걸그룹 홍수 시대라고 할 수 있었던 2020년대에 트윙클파티는 나름의 팬덤을 구축하며 성장해나갔다. 그렇게 3년, 트윙클파티가 조금씩 아이돌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을 무렵, 그녀들에게도 어김없이 리셋이 찾아왔다. 2023년 1월 1일 0시, 제야의 종이 울림과 동시에 그동안 그녀들이 간신히 만들어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 p.55

꼭 유림이 아니라도 이번 건은 신경 쓰였다. 아까부터 태오의 명치께에 한 가지 생각이 가시처럼 걸려 쿡쿡 찌르고 있었다. 태오가 리셋 전 저질렀던 횡령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대표적인 피해자 중 하나는 찬신이 아닐까? 그가 횡령한 건 찬신의 ABC트레이더스 투자금이었으니까. 물론 찬신이 그에 대해 추궁하거나 책임을 물었던 적은 없지만. 어찌 됐건 지금 태오에겐 미래세탁소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찬신에게 마땅히 보상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 조금이나마 빚을 갚는다고 생각하면……. 거기까지 생각한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한번 해보죠.”
--- p.102

사람들은 기뻐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건강하게 살아 돌아왔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반드시 함께 있는 법, 죽었던 사람이 돌아온 것과 정반대의 케이스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었다. 태어났던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다. 2018년 1월 1일 이후에 임신해 태어난 아이들, 그러니까 2018년 말 이후부터 태어난 아이들에게 나타난 문제였다.
--- p.127

“저도 리셋 전의 정보를 알고 싶어서요.”
“내가 정해진 의뢰인 외에는 일을 안 받는다고 이 소장이 이야기 안 합디까?”
역시나 불퉁거리는 말투였다. 동수 씨는 태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려 가려고 했다. 태오는 반쯤 돌아선 그를 붙잡듯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찬신 소장과 알배추마켓. 리셋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걸 알고 싶습니다.”
그 말에 동수 씨의 움직임이 멈췄다. 태오를 돌아본 그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 p.186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눈앞의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미래가 어떻게 되더라도 후회가 없을 순 없겠지만, 그나마 적어지도록.”
지금은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려고 하고 있어요. 당장 내년에 죽은 몸이 되더라도 후회가 없도록. 민서의 말에 몇 달 전 유림에게 들었던 말이 겹쳐서 들렸다. 태오는 속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부끄러웠다. 모두가 같은 처지인데 혼자만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24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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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아는 맛이지만 뻔하지 않은 맛이다. 독자가 긴장을 풀려는 순간마다 솜씨 좋게 경로를 이탈해 색다른 재미를 향해 간다. 서사의 중심을 떠받치는 큰 줄기의 이야기와 그로부터 가지 뻗은 하나하나의 사건들 모두에서 절묘한 균형 감각이 느껴진다. 뜻하지 않은 후진으로 시작되었으나 멈춰 서거나 주저앉지 않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전진과 긍정의 에너지가 미덥다. 과거의 오해와 실책을 바로잡고 잃었던 성취를 되찾으려 하는 한편, 잘못한 이들을 죄인으로 남겨두기보다 새로운 기회를 나누어주려는 태도가 귀하다. 그렇지, 세탁이라는 말은 본래 그런 뜻이었다. 더러워졌다면 버릴 게 아니라 세탁하면 된다. 흠씬 젖어 무거워진 삶을 벗어버릴까 고민하는 이에게 미래세탁소로 가는 길을 알려주고 싶다. 우리 모두에게 딱 한 벌뿐인 삶이라는 옷, 세탁기 없는 세탁소에 한번 맡겨보시라고.
- 박서련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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