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한 덩어리라고 주장하는 금강경은 왜 최고의 지혜인가? 인간의 가장 큰 병을 치료하기 위해 제조한 강력한 약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모든 반대되는 것들이 왜 반대되는 것으로 인식되게 됐는지 그 경계를 살펴본 적이 있는가? 석가모니가 시종일관 ‘애매한 말’을 하는 것은 그대의 생각을 헷갈리게 해서 그대도 ‘경계’를 살펴보게 하려는 의도다. 그렇다면 금강경의 글자들을 줄줄 외우는 게 나을까, 사랑과 미움이 왜 다른 것인지 왜 같은 것인지를 직접 따져보는 게 나을까? 석가모니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그대도 석가모니가 한 것과 똑같이 모든 경계를 조사해보는 것이다.
- p23,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
예수는 왜 빵을 만들지 않았는가? 빵을 많이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한테 나눠주면 배고픔도 구제하고 이름도 날리고 두루두루 좋을 텐데 왜 하지 않았을까? 빵만 나눠줬어도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빛나지 않았겠는가? 숨겨진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빵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것이 감춰져 있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다. 사탄은 곧 이어서 ‘왕국’으로 예수를 유혹한다. 하지만 예수는 역시 거절한다. 예수는 왕국도 거절했는데 왜 목사들은 교회 건물조차 거절하지 못하는 것일까? 사탄의 꾐에 넘어갔기 때문이다.
- p34, 사람의 아들, 사랑의 신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알고 싶어 한다. ‘존재는 무엇인가?’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고 싶어 한다. 그리하여 이 모든 것들을 있게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하고 거침없이 묻는다. 그랬을 때 나오는 최후의 답이 기독교의 하나님이고, 플라톤의 이데아고, 석가모니의 공空이고, 힌두교의 브라만이다. 인간은 존재가 움직이던 중에 우연히 만들어낸 ‘일시적인 작은 모양’일 뿐이라는 것이 이 모든 답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혹시 그대도 끝까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모든 모양들과 움직임들을 가능케 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끝까지 파고들어가라. 그러면 그 작업의 끝에서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61, 영혼에 깃든 신을 찾아서
이 부분을 수행에서는 ‘마음을 따라가면 영원히 고통(일체개고 一切皆苦 )’이라고 설명한다. 수행에서 ‘마음’이 바로 기독교의 ‘죄’인 것이다. 마음은 파이프와 같다. 그래서 채워질 수가 없다. 하지만 그대는 마음을 채울 수 있다고 믿으면서 계속 마음을 사용한다. 그게 바로 ‘죄를 고백하지 않고 스스로 의롭다 칭하는’ 행위이다. 수행자가 마음을 의심하면서 마음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 곧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나’를 의심하면서 조사하기 시작하고, 다른 쪽에서는 ‘나’를 통째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양쪽의 작업이 전혀 다른 듯이 보이지만, ‘나’를 약화시키는 쪽으로 진행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불교와 기독교의 작업이 결국에는 무아無我에서 만남을 알 수 있다. 불교라는 종교와 기독교라는 종교는 ‘무아’를 위해서 만들어진 두 개의 방법인 것이다.
- p108 신앙의 중심은 신앙!
마음에 관한 문제의 핵심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현혹된다’는 것이다. 그대가 마음을 볼 때마다 무작정 마음과 유착되기 때문에 마음을 조심하라는 것이지, 마음 자체가 문제라서 마음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음에서 떨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대도 문제가 없고, 마음도 문제가 없다. 그대에게 인지되는 마음이 곧 그대의 마음이라고 믿는 그대의 습관만이 문제다. 그대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마음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마라. 그대와 마음은 단지 겹쳐져 보일 뿐, 사실은 완전히 떨어져 있다. 간단한 마음보기를 몇 번만 해보면 그 사실을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다.
- p182, 승천하는 뱀 한 마리
그대도 언젠가는 제대로 찾아보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가 오면 그대도 목숨 걸고 찾아보라. 그러면 그대 역시 똑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완전하고도 영원한 행복은, 돈이나 건강이나 지식이나 명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무상함과 죽음의 필연성을 확실하게 인식함에 있음을 명확하게 알게 된다.
존재는 장난꾸러기라서 항상 가장 좋은 것을 그대가 가장 예상하기 힘든 곳에 숨겨둔다. 그래서 치열한 수행자들만이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삶이 끝없이 변한다는 사실과 이 몸이 머지않아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능한 많이 가능한 깊이 생각해라. 그래야 마음의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다.
--- p220,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