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절(言語節)이다. 말이 모자라 설명할 수도, 묘사할 수도 없는 우리 현대사의 불편한 진실이 숨을 멎게 한다. 제주 섬의 정방폭포 굴비 두름이, 여순의 열세 살 순이가, 금남로의 오라비가 있다. 현장에서 숱한 증언채록을 하며 차마 시어로 담지 못하고 꾹꾹 눙쳐둔-연 가르고, 행 가르지 못한-사연은 얼마나 될까, 모르지 않는다. 어둡고 외진 곳에, 짓밟히고 서러운 사람들에게서 눈길을 거두지 않는 시인의 혼이 지치지 않기를.
- 강덕환 (시인)
오미옥의 시편들을 관류하는 정신은 사람과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그 관심과 애정은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삶에 대한 넉넉한 긍정으로 귀환하여 “당신이 앉은 둘레를 가만가만 돌며” 시인의 삶을 끌어간다. “배추밭 주인의 허락도 없이/만삭의 몸을” 푼 배추벌레를 바라보며 “누군가의 생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던” 시인은 작고한 어머니와 서울로 간 딸과 자신을 잇는 여인 삼대(三代)의 삶을 반추하고 직조한다. “신혼의 단꿈을 다시 꾸는 어머니를 위해/벌써부터 우리는 태몽을 꾸기 시작”하는 것은 어머니의 삶을 현재에 재생시키고자 하는 시인의 꿈이다. 또한 “아직도 풍겨오는 젖내 나는 너의 맨살”을 그리는 어미 된 자의 애틋한 마음들이 이 시집에 가득하다. 강인하면서도 애틋하게 이어지는 모계의 전통과 정신은 “한데서 끈끈한 점액질로 발효되어” 공동체를 향해 뻗어 나가 시인으로 하여금 역사와 현실의 문제로 향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오미옥의 시편들은 여염집 아낙의 살림집이며 역사와 현실의 훼절을 용납하지 않는 결기 어린 고백이자 다짐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송태웅 (시인)
오미옥의 시를 읽으면서 우리는 시가 생명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시는 모성의 감성을 바탕으로 끝없이 출렁대고 있다. 그녀의 시가 가족의 이야기로부터 사회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시적 변화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 변화는 시적 확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변화는 근본 바탕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출렁대는 생명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시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이 변화의 의미에 있다. 변한다는 것은 통한다는 것을 말한다. 막히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통하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녀의 변화는 첫 시집을 낸 후 여순 사건의 증언록을 채록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많은 사람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삶에 공감하게 되었을 터이고, 그 사람들의 한을 안으로 받아들이면서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고민했을 터이다. 그 고민이 그녀의 시가 가족의 이야기에서 사회적 이야기로 나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의 시가 그저 가족의 이야기에서 사회적 이야기로 자리를 옮겼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의 변화가 시적 변화와 확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족 서사에서 사회적 서사로의 변화는 작은 역사에서 큰 역사로 나아가는 것이고, 그것은 인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가족의 이야기에만 머무를 때는 그 이야기가 개인의 한과 슬픔으로 끝날 수 있지만, 그것이 사회적 이야기로 나아가서 공통의 문제로 떠오를 때는 역사 속의 개인의 문제라는 인식의 변화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개인의 문제는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문제의 궁극에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역사까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번 시집을 통해서 여순 사건의 역사가 개인의 문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나아가서는 국가의 문제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 황선열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