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
쇠똥으로 거름 더미를 만드는 나절이었다. 바지주머니 속에서 전화가 울린다.
“나여 나, 집에 안 붙어 있고 어델 그라고 싸돌아댕기신가? 전화도 꺼놓고 말이여.”
“근디 대관절 누구시랍니까요. 이름을 대시쑈, 이름을.”
“얼랄랄라 인자는 목소리꺼정 잊어부렀는갑네? 누구긴 누구여. 나랑 말이시.”
“아 나한테 전화 거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이간디 목소리를 어뜨게 다 기억한답니까요? 이름을 대시랑게요, 이름을.”
속으로 킥킥거리며 모르는 척 시치미를 뚝 뗐더니만 끝내 으르렁 반으로 이름자를 대령하신다. 이 양반이 내가 집에 있는 줄 어떻게 아셨단 말인가. 사나흘 멀리 출타했다가 어제 밤늦게야 돌아온 몸인데 이거 집 안팎으로 몰래카메라를 숨겨놓았나 어쨌나.
“거시기 같이 꽃놀이나 갔으믄 싶은디 특별한 일 없으시믄 동상님도 동행하시드라고.”
“언제 어디로 가시는데요?”
“돈이라고는 각전(동전)뿐이 딸랑 거릴 일 없는 압씨들인디 어데 멀리나 나서겄어? 내일 만덕산이나 살살 넘어보자고. 봄농사 손대기 전에 언제 한 번 꽃놀이 같이 가자고 안 그랬는가. 내일로 날을 잡아부렀네. 만덕산 동백꽃이 사무치게 피어부렀닥 안 해? 주꾸미 조깐 사서 데치고 해설랑 짊어지고 갈 생각이네. 꽃 보고 오는 길에 한잔 걸침사 천당이 거시기 따로 있겄어?”
이런 뿔난 마귀 대장 허시는 말씀 보소. 하지만, 동백꽃이 ‘사무치게 피었다’는 시적 표현에 이르러서는 흐뭇한 심경을 베어 물지 않을 수 없었다. 글쟁이 동생을 두시더니 어느새 ‘고급’ 모국어까지 구사하게 되셨구나. 우리 이장 형님, 수렁에서 건진, 아니 무식에서 건진 우리 형님.
여름에는 입 못 대는 보신탕으로 몸보신하자며 부르고 가을에는 알밤 따러 가자고 부르고 겨울엔 눈구경, 봄에는 꽃구경 하자고 부르시는 분.
내가 성경책 높이 치켜들고 교회 다니라며 눈알을 부라리는 목사였다면 이런 초대는 가망 생신도 없는 일이리라. 한데 버무려져 이웃 대접을 받고 사는 게 시새움이 생겨 그러시는가 못마땅하게 여기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어떤 이들은 내가 이런 방식을 택하여 전도를 하려는 거라고, 해석을 해주기도 하시는데 사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전도네 전교네 포교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예수님을 믿자는 건 예수님처럼 이웃 간에 벽을 허물고, 관용하고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자는 뜻일 터. 고작 우리 교회 다녀라, 무조건 예수를 믿어라,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져라 따위가 아닌 것은 자명한 진리렷다. 아이고 그런데 시방 이 글이 어디로 새로 있는 것이다냐?
“갑시다. 우라질 것 놉시다요, 도동동 당동.”
대답은 그렇게 달랑 했지만 내일 당장 달리아 뿌리도 옮겨 심어야 하고 모레 아침에는 광주 문흥동 성당에서 젊은이들에게 이야기도 한 보따리 풀기로 약속이 되어 있는데 책상머리에 앉아 말 뼈대라도 준비해야 될 일이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웃사촌으로 살아가는 일도 못지않게 소중한 것을.
아! 이렇게 봄이 깊숙이 찾아왔구나. 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 백련사. 그 주변으로 캄캄한 동백 숲에 켜진 저기 저 눈부신 꽃등을 봐. 배운 것 없는 촌것들이라고 무시들 말더라고. 우리라고 아름다움을 왜 모른단 말인가. 동백꽃이 이토록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데. 동백꽃 등불이 이토록 눈이 멀도록 휘영청 밝은데.
“오래 조깐 붙어 있재마는 뭐가 그라고 바쁘다고 일찍 지는가 몰겄어, 동백은.”
흙길에 구르는 낙화들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승식 씨가 한마디 날렸다.
“누가 그라드라고. 서둘러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꽃이라든마, 이 동백꽃이.”
“일리가 있는 말이겄네. 동백꽃은 한창일 때 맥없이 져버리니 말이시.”
“아하 그래잉. 우리 각시 무덤에다 동백나무 한그루 심어줘야 쓰겄구만?”
이장 형님 말씀에 우리 모두는 그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한참 뒤에 귓속말로 동백나무 묘목이 요새 얼마 정도 가느냐고 가격까지 물어보신다. 지성으로 보살피는 마누라 무덤에다 동백나무도 심어줄 작정이신가?
한 바퀴 비잉 돈 연후에 골짜기를 다시 타고 올라 평평한 자리를 하나 잡았다. 살짝 데친 주꾸미에다 달착지근한 초장과 묵은 김치도 꺼내고 저마다 가져온 먹을거리들을 모았다. 봄소풍을 온 아이들 같구나. 나는 진달래 참꽃 잎을 띄운 화전을 꺼냈다. 어머니랑 아침에 부친 것이다. 병남 씨가 선수를 치며 한입에 우겨 넣는다. 젓가락이 민망하게시리 맨손으로 쓱싹 말이다. 으이그 이 원시인아, 하면서 승식 씨가 나무라는 듯싶더니 자기도 뒤따라 흙묻은 손으로 볼때기가 찢어져라 한입거리다.
올해 농사는 어찌 지을지 한마디씩 나누는 시간. 다른 나라와 무슨 농산물 무역협정을 맺는다는데, 그 여파에 대해 심각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니미럴 여기까정 와서 뭔노므 해골 복잡하게시리 잡소리여 잡소리가. 술이나 들자고.”
이장 형님이 말을 끊는다. 그러기를 잘 하셨지. 농업이 무너진 것이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이제는 논밭에다 주한미군 미사일 훈련만 하지 않으면 고맙게 여겨야 할 판국이다.
정치며 경제며 어렵다 싶은 이야기가 나오면 나보고 한마디 하라는 눈치를 주는데, 그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딴청이다. 이쯤이면 화살이 하나 날아와 박힐 법한데? 그럼 그렇지, 한 대가 날아오는구나.
“목사님은 도대체 솔로다요, 따블이다요? 만날 외톨이로 그게 뭔 사는 재미다요.”
승식 씨가 뜬금없이 빌미를 잡고 쑤석거린다.
“임 목사 저 인간은 가족이고 나발이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요상한 인간이여. 아니면 만날 우리 같은 놈들이랑 술이나 묵고 댕기고. 차라리 머리 깎고 출가를 해불재 그래.”
대뜸 이장 형님이 쏘아붙인다.
나를 향해 사정없이 엑스 자를 그리시며 말이다. 나에게 시비조로 나오면 취기가 살풋 올라왔다는 신호다.
“인자 우리는 진짜 꽃놀이 하러 집으로 가는디 불쌍한 사람 여기 몇 사람 있구만.”
재롱덩어리 딸들이 반길 마을 첫 집 언저리를 내려다보며 병남 씨가 그런다.
“연설하네. 누군 집에 꽃 없다냐?”
승식 씨가 쩝쩝거리면서 자기보다 몸무게가 배는 더 나갈 송산댁 아짐을 꽃이라고 부른다. 나하고 생각이 같았는지 병남 씨가 짚고 넘어간다.
“그라고 넓적한 꽃도 시상에 있다냐?”
“우리 집에도 꽃 피었어. 목련도 이상 피었고.”
아직 우리 말뜻을 이해 못한 이장 형님이 딴소리다. 으그그 쯧쯧 그러면 그렇지. ‘사무치게’ 어쩌고 한 말에 속을 일이 아니었지.
옥련암으로 넘어오는 길, 우리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보고 싶은 사람들 생각에 꽃구경이 순간 재미없어졌다. 가파른 천수답엔 노란 풀꽃들이, 언 강 풀리고 천지사방 황홀한 진달래 꽃사태런만…….
군불 때고 드러누워 일찍 잠이나 청할밖에. 이장 형님이 그렇게 혼자 누울 것이고, 아버지 먼저 떠나보낸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살고 계시고, 동네 절반은 넘을 혼자 사시는 할매 할배들이 또 그러실 게고. 어디 혼자 드러누운 쓸쓸한 방이 내 방뿐이겠는가.
갈림길에서 헤어져 참꽃이 하늘거리는 예배당 가는 들길로 접어들었다. 동박새 한 마리가 울어대는 소리에 두리번거렸다. 너도 꽃놀이 다녀오는 길이니? 늦었다. 어여 가서 쉬거라. 그런데, 가만 보니 너도 혼잣몸이로구나. 그래서 그렇게 울어댄 거니?
어떤 때는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지만, 이런 밤에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게 느껴진다. 사람이 소중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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