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그 일은 아무런 전조도 없이 일어났다.
[System]: 미궁의 모든 모험가가 사망하였습니다.
미궁 커뮤니티에 시스템의 메시지가 올라온 건 그날 오후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모든… 모험가?
김민수가 죽었나?
나를 모험가 취급도 안 해 주는 거야 별 충격은 아니었다.
7층에서의 삶은 모험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안정적이었으니까.
이게 모험은 아니지.
맞다, 난 모험가가 아니다.
진짜 충격적인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System]: 미궁을 최초 상태로 되돌립니다.
“최초… 뭐?”
내 혼잣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하늘에 멀뚱히 떠 있던 해가 갑자기 동쪽으로 가라앉았다.
그리고 눈 깜박할 새도 없이 서쪽에서 쑥 솟아오르더니, 다시 동쪽으로 가라앉는 것을 반복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움직임은 더욱 빨라졌다.
뜨고 지는 해와 달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이제는 빛나는 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와야 할 겨울은 안 오고, 갑자기 날씨가 더워지더니, 또 순식간에 식었다. 드디어 날씨가 추워졌나 싶더니만, 그조차도 잠시였다.
봄이 왔다가, 겨울이 오고, 가을이 오고, 여름이 다시 왔다.
아니, 이제는 뭐가 봄이고 뭐가 가을인지조차 모르겠다.
그리고 곧 여름과 겨울조차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빨라져 더위나 추위를 느낄 겨를조차 없어진 탓이다.
그래, 시간의 흐름.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그것도 고속으로.
미궁을 최초 상태로 돌린다는 게 이런 거였나!
그런데 놀랄 일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50년 가까이 되는 세월이 순식간에 되감긴 후에는 분명 죽었을 터인 7층의 모험가들이 무덤에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
나는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50년 내내 밟고 섰던 단단한 땅이 갑자기 사라진 탓이다.
아니다, 땅이 사라진 게 아니다.
내가 움직이고 있는 거였다.
더 정확히는 움직여지고 있다!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마치 누군가에 의해 집어 던져진 듯 어딘가로 휘날려 가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것은 오직 나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은 정신을 잃은 채인 건지 소리는커녕 눈조차 뜨지 않았다.
지나가는 시야에 미궁 6층의 모습이 흘깃 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6층의 풍경이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시야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5층, 4층, 3층, 2층.
그리고 1층.
나는 미궁 1층에 서 있었다.
[System]: 미궁의 초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System]: 모든 모험가를 초기화시킵니다.
“초기… 화라고?”
내가 시스템 메시지를 제대로 곱씹기도 전의 일이었다.
-[불변의 정신]이 상태 이상 [초기화]에 저항합니다.
-저항 성공!
이런 상태 메시지가 시야에 떠올랐다.
***
[불변의 정신]이 지금 작용했다고?
초기화에… 저항?
“이게 무슨…….”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고 있던 내게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커뮤니티에 나타났다.
[System]: 모든 모험가의 초기화가 완료되었습니다.
[System]: 각 모험가에게 고유 능력이 무작위로 배포됩니다.
“어…….”
나는 다시 한번 혼란에 휩싸였다.
능력? 무작위? 배포?
다 아는 단어인데 하나도 모르겠다.
분명 [불변의 정신]은 정신적 상태 이상에 저항하는 능력인데, 왜 내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거지?
설마 [불변의 정신]이 없어졌나?!
[System]: 무작위 고유 능력 배포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는 급히 상태창을 켜 보았다.
“고유 능력, 고유 능력 칸이……. 응?”
[이철호]
레벨: 35
그런데 여기서 고유 능력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레벨이… 35?
“레벨이 그대로라고?!”
나는 비명처럼 외쳤다.
그리고 서둘러 입을 닫았다.
“…상태 이상 초기화에 저항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레벨이 그대로인 것도 이해가 된다.
아니, 그보다 고유 능력이다.
나는 상태창의 고유 능력을 찾아 읽었다.
고유 능력: [불변의 정신], [비밀 교환]
있다! [불변의 정신]!
그런데… 뭐가 하나 더 있다?
[비밀 교환]?
어디서 본…….
아!
나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전율했다. 그리고 급히 능력의 상세 열람을 시도했다.
[불변의 정신]: 외부로부터 가해진 정신적 상태 이상 발생 시도에 대해 저항할 수 있다. 이 능력은 모험가가 살아 있을 때만 유효하다.
[불변의 정신]은 여전했다.
아, 능력 설명을 읽다 보니 내가 좀처럼 혼란을 수습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이제 알았다.
[불변의 정신]은 어디까지나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상태 이상에 저항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내게 혼란을 건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수습이 안 되는 거였다.
하도 오랜만이라 이것도 까먹고 있었네.
“스읍… 후…….”
생각난 김에 나는 심호흡을 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 짓도 예전엔 자주 했었는데, 안온한 7층 생활이 너무 길었나 보다.
자, 그럼 [비밀 교환]을 확인하자.
[비밀 교환]: 모험가의 비밀을 하나 밝힌다. 밝힌 비밀을 들은 대상의 원하는 비밀을 알아낼 수 있다.
방금 전에 심호흡을 했음에도, 나는 다시금 전율하고 말았다.
왜냐하면 이 능력은 다름 아닌 김민수의 고유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49층에서 죽어 버렸다지만, 최고이자 최강의 모험가였던 그 김민수의 능력 말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