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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흔 1

우여흔 1

윤홍아 | 동아 | 2014년 04월 24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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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4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408쪽 | 376g | 128*188*30mm
ISBN13 9791155111741
ISBN10 115511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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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질 무렵 시작된 예식은 달이 뜰 때쯤 끝이 났다. 예식이 치러졌던 마루에서는 밤늦도록 피로연이 열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하객들의 웃음소리로 떠들썩한 연회장과는 대조적으로 신방에선 적적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무아는 창백한 안색으로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방 한가운데에는 금사로 짠 보를 씌운 이부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는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긴장한 탓인지 아까는 그렇게 욱신거리던 어깨의 통증마저 사라졌다. 목이 바싹 타올라 무아는 몇 번이나 입술을 축여야 했다. 마침내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무아가 마음을 채 가다듬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혼례복 대신 흰색 자리옷으로 갈아입은 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이부자리 정리를 마친 정금이 두 사람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럼 두 분, 부디 편히 침수 드십시오.”
탁. 방 안에는 두 사람만 남겨졌다. 숨 막힐 듯 어색한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 맴돌았다.
류는 고개를 들어 무아의 얼굴을 가만히 훑어보았다. 검고 맑은, 오롯한 눈동자가 불안한 기색을 띠며 류를 비췄다. 꿈에서 본 여자와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외모는 같았지만 눈빛은 달랐다. 슬픈 눈으로 자신을 응시했던 꿈속의 여자와는 달리, 눈앞에 있는 이 여자에게선 그런 물 그늘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사람 속을 뒤집어 놓던 그런 눈망울이 아니었다.
기분이 묘했다. 악몽같이 반복되던 꿈속의 여자가 지금은 그의 아내가 되어 눈앞에 앉아 있었다. 그 슬픈 눈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에 이는 까닭 모를 환통이 싫어, 이 여자를 미워도 하고 증오한 적도 있었다. 한데 꿈속의 여자가 실체가 되어 현실에 나타나 버렸다. 그녀에게서 긴장의 기색이 느껴졌지만 정말로 당혹해하는 쪽은 바로 자신일지도 몰랐다.
오래도록 그가 한마디도 하지 않자, 무아는 점점 이 침묵이 버거워졌다. 온몸의 신경이 일일이 바늘이 되어 골수를 찌르는 것만 같았다. 무아는 조심스럽게 그의 윤곽을 훑어 내렸다. 조금 날카로웠지만 단정하면서도 강렬한 얼굴선이었다. 최고의 서예가가 일필휘지, 힘차게 써내려간 글씨처럼 기품 있으면서도 강인했다. 완우와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류에게선 그보다 훨씬 침착하고 정적인 느낌이 묻어났다.
자신을 바라보는 류의 눈빛은 처음 만난 이에 대한 호기심이나 낯섦 같은 것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를 확인하는 것에 가까웠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그는 이미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왜일까. 만난 기억 따윈 없는데.
“안색이 좋지 않군. 상처는 어떻지?”
암벽에 새겨진 부조처럼 침묵을 지키던 그가 불쑥 말을 꺼내자 깜짝 놀란 무아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아프지가 않았다. 이렇게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에서 한가하게 통증 따윌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괜찮다니 다행이군.”
의외였다. 볼모에 불과한 자신을 걱정했다니. 망설임 끝에 무아는 어색하게 입술을 뗐다. 예의상 하는 말이라도 고맙다는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고마워요……, 걱정해 줘서.”
“……이미 알고 있겠지만. 정식으로 인사하지. 류다.”
순간적으로 무아라고 말할 뻔했던 무아는 급히 말을 삼키며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헛기침을 삼켰다.
“무……. 유우예요.”
“유우라면 버드나무 유(柳)인가.”
류는 꿈에서 수십 번 보았던 얼굴과 눈앞에 있는 무아의 얼굴을 겹쳐 보았다.
“별로 어울리는 이름은 아니군.”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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